허정연 경제기획부 기자 |
아내가 다니는 회사에서 직장어린이집을 운영하지만 신청 자격이 없었다. 비정규직이기 때문이다. 그는 “정규직 직원도 1~2년씩 대기하는 게 예사인데 비정규직 자녀에까지 기회를 줄 수 없다는 말을 들으니 부모 자격마저 비정규직이 된 기분”이라고 말했다.
경기도의회 이재준 의원이 23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경기도내 14개 시·군에서 운영하거나 관리하는 직장어린이집에 다니는 비정규직 직원의 자녀는 한 명도 없었다.
이중 8개 시(안양·광명·광주·이천·하남·양주·남양주·의정부) 직장어린이집은 입소자격 자체에 비정규직 자녀는 수용하지 않도록 정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뿐 아니라 관공서 어린이집과 같은 공공부문에서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에 따르면 ‘기간제 근로자임을 이유로 같은 사업장 내 정규직 근로자에 비해 차별적 처우를 하여서는 아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재준 의원은 “근로자라면 누구나 소속 직장어린이집에 자녀를 보낼 수 있어야 한다”며 “운영규정에서 어린이집 입소대상을 정규직 자녀로만 한정하고 비정규직 자녀를 제한하는 것은 명백한 차별”이라고 비판했다.
직장어린이집 이용을 제한하면 직장에 복직하는 비율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한국고용정보원의 ‘한국 여성의 고용과 경력단절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여성근로자의 육아휴직 복귀율은 사업체 규모가 크고, 통상임금이 많을수록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 규모가 클수록 복지제도와 직장어린이집 역시 잘 갖춰진 점을 미뤄볼 때 중소기업 비정규직 근로자는 직장어린이집 자체가 없거나 있더라도 이용이 제한될 가능성이 크다. 결국 자녀를 맡길 곳을 찾지 못한 비정규직 근로자가 직장을 그만두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새 정부의 ‘비정규직 제로’ 논의가 활발하다. 공공부문을 시작으로 민간기업으로 확산되는 분위기다. 비정규직과 정규직 간 격차를 줄이고, 근무 환경을 개선하고자 하는 움직임은 바람직하다. 다만 큰 틀을 바꾸려 하기 전에 보이지 않는 차별부터 하나씩 걷어내야 한다. 직장어린이집을 곁에 두고도 자녀를 맡길 수 없는 비정규직, 그들의 하소연에 귀 기울여야 한다.
허정연 경제기획부 기자 jypow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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