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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5 (화)

“김기춘 오더가 왔군요” 다음달 '직을 면함' 전자결재...문체부 최규학 전 실장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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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최규학 전 문화체육관광부 기획조정실장. 사진 문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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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벌써 2년이 지났네요. 어떻게 세월이 지나니까 다 살게 되네요.”

1급 공무원이었던 최규학 전 문화체육관광부 기획조정실장은 직장을 잃은 2년 6개월 전의 기억을 무심한듯 말했다. 국정농단 사건을 수사한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그의 실직 이유를 ‘블랙리스트’에 소극적이었기 때문이라는 조사 결과를 내놨다. 최 전 실장은 태연한 웃음을 짓기도 했지만 한국 최고의 권력인 대통령과 그의 비서실장 앞에서 무기력했던 자신의 경험이 다시는 되풀이되어서는 안되는 일이라고 말했다. 간간이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그로부터 문체부 안에서는 ‘인사 학살’이라고 불렀던 박근혜 정부 인사 농단의 실상을 들어봤다. 인터뷰는 최 전 실장이 지난 2일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뒤 이뤄졌다.

#"김기춘 실장에게 '오더'가 왔군요."


2014년 9월 18일은 추석 연휴가 끝나고 일 주일 뒤였다. 김희범 당시 1차관이 1급 공무원 6명에게 소집 통보를 했고 최규학 당시 기조실장에게는 조금 일찍 오라고 했다. '올 것이 왔구나.' 최 실장은 김 차관이 사직을 통보할 것을 알았다. "나부터 보자고 부를 때 딱 느꼈다. 제일 먼저 가족들 얼굴이 떠올랐다. 가슴이 멍멍해지고 미어졌다. 도대체 어떻게 얘기해야 하나…" 올 것이 왔지만 막상 오니 가슴이 미어졌다.

김 차관은 사무관 시절부터 알고 지낸 선배였고 해외문화홍보원 원장·부원장으로 함께 일하기도 한 막역한 사이였다. 두 달 전 문체부 1차관으로 부임해 온 김 차관은 자신의 걱정과 고민들을 최 실장에게 털어놓기도 했다. '김기춘 실장의 지시를 계속 받아 힘들다. 유진룡 장관 때문에 문체부가 큰일났고 당신도 큰일났다'는 이야기였다.

오전 8시 50분, 김 차관이 최 실장에게 사직 얘기를 꺼냈다. "누구 지시인가요" 물었지만 김 차관은 "최 실장도 알면서 그러냐. 위에서 시켜서 하는 일인데 나도 고통스럽다"며 답하지 않아 최 실장이 "김기춘 실장으로부터 '오더'가 왔군요"라고 자답했다. 최 실장도 차관 자리에서 막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그를 많이 원망할 수 없었다.

9시가 되자 굳은 표정을 한 세 명과 어리둥절한 세 명이 우물쭈물하는 김 차관 앞에 모였다. 나중에 스스로를 '잘린 3총사'라고 칭하게 되는 최 실장·김용삼 당시 종무실장·신용언 당시 문화콘텐츠산업실장은 전부터 청와대 '살생부'에 '성분불량자'로 자신의 이름이 올랐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마음의 준비를 해왔다. 김성일 당시 아시아문화중심도시추진단장·임원선 국립중앙도서관장·원용기 해외문화홍보원장 3명은 왜 불려 나왔는지도 모른 채 놀란 표정이었다.

"용퇴를 생각해보라는 게 아니고 모두 사표를 제출하라는 뜻"이라는 김 차관의 말에 이날 모인 6명의 1급 공무원 중 5명이 사직서를 냈다. 그 중 세 실장의 사직서만 수리됐다. "실제로는 3명을 그만두는 게 목적인데 6명을 불러 분위기를 쇄신하기 위한 것처럼 모양새를 취했다"는 게 최 전 실장의 설명이다. 3명만 나가라고 하면 '표적 학살'처럼 보이지만 6명이 사직서를 내면 '분위기 쇄신'처럼 보이니 '사직 들러리'로 3명을 더 불렀다는 것이다. ‘잘린 3총사’는 들러리로 온 후배들에게 “너희들 사직서는 수리 안되니까 걱정할 것 없이 내라”고 말했다.



#'원에 의해서 그 직을 면함. 대통령 박근혜'
2014년 10월 8일은 문체부 국정감사가 끝난 다음날이었다. 새벽 1시에 퇴근했다 아침에 출근한 최 실장을 맞이한 것은 자신의 사직서였다.

'대통령 박근혜'라는 서명으로 최종 결재가 된 전자문서를 출력했다. '원에 의해서 그 직을 면함.' 한 줄로 32년의 공직생활이 정리됐다. 보름 전 제출한 '명예퇴직원'에 대한 응답이었다.

사직 처리가 되고 나자 최 전 실장은 청사 컴퓨터에서 파일들을 열어볼 수 없게 됐다. 그는 "국가를 위해 30년을 봉사해온 사람들을 절차도 없이 무작정 사표를 쓰게 하더니, 국정감사가 끝나자마자 처리돼 다 써먹고 야멸차게 버려진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우리는 사실 허탈해서 움직일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잘린 3총사' 중 김용삼 전 종무실장과 종무실에서 함께 일했던 직원이 운전을 해 두 사람을 태워다 주겠다고 했다. 세종시에서 얻어 지냈던 아파트 방 한 칸에서 나온 짐은 간소했다. 서울로 올라가는 차에서 할 말이 별로 없었다. "그냥 '허허' 웃고, '우리끼리 돕고 살아갑시다','즐겁게 살아갑시다' 뭐 그런 얘기를 했던 것 같다"는 것이 최 전 실장의 기억이다.

잊을 수 없는 것은 그 날의 하늘 색이라고 했다. "문체부를 나오면서 하늘을 봤는데 그렇게 파란 하늘을 본 적 없다. 그런 하늘을 보면 가끔 돌아갈 수 없는 그 때 생각이 난다." 가슴이 미어졌지만 하늘은 노랗지도 캄캄하지도 않았다. 최 전 실장은 "휴게소에서도 하늘 보면서 김 전 실장과 '참 파랗구나' 하고 웃고서 집에 전화를 했다"면서 "아내는 수화기 너머로 '당당하게 해라'고 했지만 마음이 좋진 않았을 거다. 마침 그 날 예전에 약속한 부부동반 자리에 갔는데 참 곤혹스러웠다"고 말했다.





Q : 현재는 어떤 일을 하고 있나

A : “출근할 곳이 없어진 뒤엔 매일 ‘점심 저녁 약속이 있다’고 집을 나와 청계천을 걸었다. 지금은 광주대학교와 한국외대에서 초빙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문체부 공무원으로서 현장에서 보던 것과 또 다른 것을 볼 수 있어 좋다. 정기적으로 일할 수 있는 직장이 있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초빙교수다 보니 자문 등 아르바이트도 종종 하는데 오늘 같은 ‘이색’ 아르바이트는 처음 해 본다. (※그는 법정 증인을 아르바이트로 표현했다. 법원은 증인에게 일당과 여비로 6만원을 준다.)”




Q : 학생들과 ‘블랙리스트’ 관련 이야기도 하나

A : “제자들은 이번 국정농단 사태가 언론에 보도되면서 나에 대해 알게 됐다. 내가 이런저런 일이 있었다고 설명해 주지는 않지만 제자들이 먼저 격려를 많이 해 준다. 지난 3월 10일 헌법재판소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이 인용되던 날 ‘교수님 얼굴이 떠올랐다’고 연락해 온 제자도 있다.”




Q : 전 문체부 공무원으로서 국정농단 사태에 대한 생각은

A : “지난해 가을 촛불집회에 여러차례 가 페이스북에 인증샷을 올리기도 했다. 블랙리스트로 피해와 상처를 입은 문화예술인들이 농성하는 ‘블랙 텐트’에도 가 봤다. 문체부에 몸담았던 공무원으로서 죄송스러웠다. 문화예술인들로부터 이해를 받아야 문체부도 살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새 시대가 오면 서로 생각을 공유하고 이해하면서 함께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Q : ‘잘린 3총사’라고 부르는 분들과는 어떻게 지내나

A : “우리끼리 종종 식사나 술자리를 함께 하고 등산도 한다. 특히 나는 그 형님들이 내 걱정을 많이 해 줘 고맙게 생각하고 깍듯이 모시고 있다. 사직 당시 그분들은 정년에서 3년 정도 남아 있었는데 나는 7년 정도 남아 있었다. 그 형님들이 “우리야 공무원 할 만큼 했는데 최 실장은 참 안타깝다”면서 나를 구제해 보려고 여기저기 얘기를 많이 했었다.”




Q : 문체부에 있는 후배들과도 만나나

A : “우리가 나갈 때 안타까워 하면서 페이스북에 글을 올린 후배가 있었는데 피해를 많이 본 것 같더라. 좌천됐다가 최근에 복귀했다고 들었다. 지금도 혹시 우리들 때문에 불이익을 받을까봐 후배들 만나는 것을 일부러 자제하기도 한다. 특검 조사가 끝나고 감사원에서 감사를 세게 했다는데 문체부를 정말 두 번 죽이는 일이 아닌가. 문체부는 국정농단 사태에서 중심을 잡으려 노력하고 부당한 지시에 대해서는 안 된다고 말해 온 부처다. 새 정부에서는 양심을 가지고 버텨온 실무자들에 대한 배려가 있었으면 좋겠다.”




Q : 공직생활 30년 동안 블랙리스트와 유사한 지시가 있었나

A : “이명박 정부에서도 ‘여기를 지원해 줘라’는 식으로 선별 지원 지시가 내려오긴 했지만 ‘여기를 지원하지 말아라’는 배제는 아니었다. 이렇게 명단을 내려보내고 안 따르면 나가라는 식으로 대놓고 압력을 넣는 일은 없었다. 문체부와 문화예술위원회라는 국가기관과 공공기관을 이용해 이런 배제를 한 것은 헌법과 법률 위반이라고 생각한다.”




Q : 사직과 관련해 후회한 적은

A : “당당하게 생각한다. 직업공무원이 당연히 시키는 일 해야겠지만 국민들의 재산·생명·안전·사회적 약자 배려에 대한 철학과 관심이 없다면 국가가 제대로 운영될 수 없다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장인 생각을 하면 마음이 묵직하다. 고교 때 담임이셨던 장인은 내게 정말 각별했는데 50대 초반 새파란 나이에 실직자가 되니 장인께서 걱정이 컸고 건강이 많이 나빠지셨다. 좀 더 노력해 자랑스러운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지난주에 타계하셨다. 검정 넥타이를 하고 온 게 그 때문이다. 조금만 더 살아 계셨다면 좋았을텐데….”
문현경 기자

moon.hk@joongang.co.kr

문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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