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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9 (일)

[조강수의 직격 인터뷰] 켈리 교수 “한국의 제왕적 대통령 폐해 줄이려면 입법부 파워 키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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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 방송 사고’ 로버트 켈리 부산대 교수의 제언
중앙일보

로버트 켈리 교수가 딸 메리언을, 아내 김정아씨가 아들 제임스를 안고 부산대 교정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생방송 도중 글로벌 방송 사고를 쳤던 개구쟁이답게 메리언의 표정이 익살맞다. [부산=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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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건으로 나라의 향배는 물론 수많은 단체와 인간 군상의 명암도 엇갈렸다. 어떤 이는 웃고 어떤 이는 울었다. 그중에 방송 사고 해프닝으로 유명해진 외국인을 기억하시는지?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이 있던 3월 10일 미국 CNN, 영국 BBC 등 세계 유수의 방송사와 릴레이 인터뷰를 했던 로버트 켈리(45) 부산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다. 네 살배기 딸과 9개월 아들이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생방송 인터뷰가 진행되던 서재에 난입(?)하는 동영상이 BBC방송 페이스북 등을 통해 퍼지면서 무려 1억 회 이상의 조회 수를 기록했다. 특히 한국인 아내 김정아(41)씨가 급히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는 장면을 두고는 아시아계 보모의 학대 장면 아니냐는 논란까지 불러일으켰다. 미국인 교수와 한국인 전업주부 가족을 최근 부산대 연구실에서 만나 애환을 들어봤다. 막상 질문을 던져보니 켈리 교수의 정치적 식견은 국내 유명 정치학자 뺨을 여러 번 치고도 남음이 있었다.



Q : 사고(?) 발생 이후 50일 가까이 지났지만 여전히 유튜브 등에서 동영상이 소비되고 있다. 인터뷰 동영상 확산 이전과 이후 달라진 점은 뭔가.

A : “(웃음) 일단 방송·신문 등 여러 미디어에서 연락이 뻔질나게 왔다. 우리 가족을 알아보는 시민도 많아졌다. 식당에 가면 삼삼오오 자리를 차지한 손님들이 우리를 알아보고 씩~ 웃거나 손짓하며 반가워하더라.”




Q : 어쩌다 그런 방송 사고가 벌어졌나.

A : “그날은 한국에서 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을 파면한다는 헌재 결정이 나온 날이다. 한국 국민들은 물론이고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결정 선고가 나자마자 브레이킹 뉴스가 전 세계로 퍼졌다. 나는 그날 오전 9시30분부터 하루 종일 인터뷰만 계속했다. CNN과 두 번 등 다섯 번의 방송 인터뷰를 했고 화제가 된 BBC 인터뷰가 마지막이었다. 다소 긴장이 풀리기도 했고 부산의 집 서재에서 인터뷰를 하다 보니깐 그런 일이 생겼다.”




Q : 상황을 간략히 정리하면.

A : “오후 8시쯤 영국 BBC방송과 화상 인터뷰를 시작했다. 탄핵이 외교 관계에 미치는 영향이 주제였다. 갑자기 딸 메리언(한국명 예나)이 어깨를 으쓱으쓱거리며 춤추듯 방 안으로 들어왔다. 어린이집에서 생일파티를 해 기분이 좋았던 것 같다. 잠시 뒤 보행기를 탄 아들 제임스가 나타났다. 나는 ‘미안하다’고 말하고 인터뷰를 이어 갔는데 조금 뒤 아내가 황급히 아이들을 데리고 나갔다. 방문 잠그는 것을 깜빡한 내 잘못 때문에 그런 방송 사고가 났다.”




Q : 방송 사고 이후 더 유명해졌다.

A : “(웃음) 그렇다. 방송국에 사과 e메일까지 보냈는데 ‘동영상을 자사 홈페이지에 올려도 되겠느냐’고 묻더라. 좋다고 했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이 공감을 많이 한 모양이다. 조회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5일 뒤 BBC에서 다시 인터뷰를 하자고 해서 가족이 모두 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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켈리 교수 가족을 페이스북 스타로 등극시킨 지난 3월 10일 방송 사고 당시 현장 모습. [페이스북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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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는 그게 끝이 아니었다. 지난 24일 YTN 플러스에서 켈리 교수가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와 정책 관련 화상통화를 할 때 매들린이 갑자기 "(아빠) 뭐 하세요?”라고 끼어들었다. 이에 문 후보가 몇 살이냐고 묻자 "다섯 살”이라고 했다가 곧 천연덕스럽게 "나 20살이에요”라고 말을 바꿔 스튜디오를 초토화시켰다.



Q : BBC 사고 당시 인터뷰 내용의 핵심은.

A : “요악하면 이렇다. 한국 정치의 가장 큰 문제는 부정부패다. 이번에는 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이 비리 혐의로 수사 대상이 됐다. 사실 대통령 탄핵이라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이 아니다. 가장 유명한 사건은 미국 닉슨 대통령 때 진행됐는데 중간에 사임하면서 완벽하게 탄핵으로 끝내진 못했다. 그런데 한국은 완벽하게 끝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흔한 일이 아니라서 한국의 탄핵 완결은 연구 대상이 아닐 수 없다.”


국회 약해 대통령 권력 견제 못해

사법부 힘 세지며 탄핵 결정 나와

조기 ‘장미 대선’도 정상은 아냐



Q : 정치학자로서 촛불시위를 통해 대통령 탄핵까지 견인한 한국 민주주의에 대해 평가한다면.

A : “대통령 탄핵을 요구한 촛불집회가 굉장했던 건 엄청난 인파가 참여했음에도 평화스럽게 진행됐다는 점이다. 경찰들이 최루탄을 쏘거나 제지하지 않고 시위대와 아무런 충돌 없이 끝낼 수 있다는 건 쉽지 않다. 정치적으로도 특이한 현상이다. 민주주의가 숙성했다는 의미다. 만약 미국에서 그런 시위가 일어났다면 평화적으로 끝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Q : 통치 시스템적 차원에서는 어떤가.

A : “ 한국 대통령제는 이상한 대통령제다. 대통령도 있고 국무총리도 있으니 대통령 탄핵 같은 국가적 비상 상황에서 총리가 전권을 행사하면 된다. 그런데 대통령 권한대행인 국무총리의 권한이 약하다.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야당이 이도 저도 하지 말라고 주장하니까 막 흔들린다. 대통령 역할을 대신하질 못한다. 이래 갖고는 대통령 부재 시 아무것도 못한다. 내 생각엔 총리에게 실질적 대행권을 주는 게 필요하다. 아니면 미국 같은 부통령제나 프랑스 같은 총리제 도입도 생각해 봄 직하다. 이번처럼 갑자기 대통령선거를 하는 것은 정상적인 시스템은 아니다.”




Q : 탄핵의 원인으로 제왕적 대통령제 폐해를 지적하는 시각도 있는데.

A : “원래 민주주의 사회에선 입법부와 사법부, 행정부가 서로 대등한 관계에서 견제해야 한다. 그런데 한국에선 국회가 너무 약하다. 아무도 국회를 안 믿고 서포트(지원)를 안 한다. 의원들이 국민을 위해 헌신하는 대신 소주 마시고 펀치 날리고 하니까 그렇다. 그 역작용으로 대통령이 강해져서 제왕적 대통령이 문제가 되고 있다. 반면 지난 25년간 사법부는 힘이 세졌다. 그래서 견제력이 있고 이번 같은 탄핵 결정도 나온 것이다. 따라서 4년 중임제를 하든, 5년 단임제를 하든 국회의 파워를 키워야 한다. 개헌이 문제가 아니라 정치하는 사람들의 능력을 키우고 제대로 일하게 채찍질해서 입법부의 위상을 올리는 게 중요하다.”




Q : 5·9 대통령선거 출마자 중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같은 대선주자가 있다고 보나.

A : “유명인 출신이라는 점에서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비슷하다. 하지만 안 후보는 트럼프처럼 예측 불가능하고 자극적인 사람은 아니다. 트럼프는 정치 경험도 없다. 안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돼 자기의 사업적 능력을 잘 연결하면 놀라운 일이 벌어질 수 있다. 미국에는 정치인으로 변신한 세 명의 유명인사가 있다. 영화배우 출신 아널드 슈워제네거(전 캘리포니아주 주지사), 프로레슬러 출신 제시 벤투라(전 미네소타주 주지사), 트럼프 대통령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유명세를 이용해 정치에 입문했다는 거다. 하지만 그게 성과로는 잘 연결이 안 됐다. 아널드를 뽑으면 캘리포니아의 문제가 다 해결될 줄 알았는데 지금 와서 보면 안 좋아졌다. 안 후보는 이들 세 명보다는 더 진지하고 책임감이 있어 보인다. 정치는 뚝딱 이뤄지는 게 아니다. 정치는 천천히 움직이며 변화를 가져오는 거다. 누가 되더라도 확 바꿀 수는 없다. 민주주의 정치는 혁명이 아니다.”




Q :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되면 안보가 불안해진다는 보수층의 우려가 있다.

A : “문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남북 관계가) 단기간은 좋아지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개성공단을 다시 오픈하거나 자금을 지원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북한이 핵 개발 등을 포기하도록 하는 데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다. 햇볕정책이 단기적으로 좋아 보였지만 장기적으로 좋은 결과를 가져온 건 아닌 것과 비슷하다.”


켈리 교수의 한국어 실력이 유창하지 않은 편이라 인터뷰 통역은 아내 김정아씨가 맡았다. 교내 어린이집에서 두 아이를 돌보다 헐레벌떡 뛰어 올라온 그녀에게 인터뷰 직전에 전호환 부산대 총장을 만난 소식부터 전했다.



Q : 전 총장이 ‘방송 사고 해프닝으로 인한 부수적 광고효과가 엄청나다’며 좋아하더라. 대충 100억원대를 추산하던데, 적게 잡아도 수십억대 효과는 된다는 게 중론이다. 학교 측 선물은 없었나.

A : “그러지 않아도 총장님이 우리를 불러 뭘 해 줄까 물어서 한국어 전문강사를 붙여달라고 했다. 지난해 남편이 안식년이었다. 하지만 외국인 교수들은 언어 문제 때문에 한국에서 공부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안식년을 포기하고 한국어학원을 다녔는데 일대일 수업이 아니라 중국인들과 같이 하는 수업이었다. 남편이 꼼꼼한 스타일이라 문법적으로 깊이 파고드는 반면 한국어를 곧잘 하는 중국인들 위주로 수업이 진행되다 보니 실력이 많이 늘지 않았다. 그래서 일대일 레슨을 붙여달라고 한 거다. 다음 학기부터 교습을 받으려 한다.”


박근혜 탄핵 날 BBC 생방송 도중

딸·아들 장난치며 난입 … 1억 조회

광고효과 본 대학, 한국어 교육 지원



Q : 인센티브를 달라고 하는 게 좋지 않은가.

A : “(웃음) 국립대라서 인센티브를 줄 수가 없다. 사정을 잘 안다.”




Q : 방송 사고 동영상 시청자 중 일부가 보모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는데.

A : “기분 나쁘다는 생각은 안 했다. 그렇게 볼 수 있겠구나 싶었다. 아이 둘을 가사도우미 없이 키운다. 집에서 꾸미고 앉아 있을 수 없다. 씻는 시간도 부족해 제 몰골이 그렇게 비쳤나 보다 했다. 내가 아시아 여자라고 해서 남편이 제 말을 안 듣거나 그런 것도 아니지 않나. 오히려 남편은 저보고 독재자라고 한다.(웃음) 한국 여자와 결혼하면 남편이 아무 권한이 없다고 친구들에게 맨날 투덜거린다.”




Q : 인종차별을 직접 경험한 적이 있나.

A : “연애할 때 대중교통을 많이 이용했다. 나이 든 분들은 탈 때부터 내릴 때까지 우리를 쳐다본다. 대화를 하는데 시끄럽다고 그만 이야기하라는 사람들도 있었다. 주상복합아파트에 살 때 남편이 실내 체육관을 매일 갔는데 불도 못 켜게 했다. 한국의 젊은 사람들이 불을 켜고 에어컨을 켜면 아무 소리를 안 하는데 남편이 켜면 뭐라고 했다. 주민들이 외국인들을 편하게 대해 주질 않는다.”




Q : 애들 언어 교육은.

A : “집에서 엄마는 한국어로만, 아빠는 영어로만 아이들과 대화한다. 전에는 남편도 한국어와 영어를 섞어 썼다. 메리언은 엄마 마미, 아빠 대디…이렇게 같이 시작했다. 그러면 언어 발달에 안 좋으니 절대 쓰지 말라는 말을 듣고 각기 모국어를 쓰고 있다. 쉬운 게 없다.”


로버트 켈리는 …
2005년 미국 오하이오주립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국제관계 전공)를 받았다. 거기 유학 온 한국인 친구의 권유로 지원해 2008년 9월 부산대 교수로 임용됐다. 그 무렵 서울 코엑스에서 요가 강사로 일하던 아내를 만나 2010년 결혼한 뒤 부산에 정착했다. 현재 부산대에서 9년째 미국정치론과 미국외교정책론 등을 강의한다. 박근혜 정권 2년 차 때인 2015년 쓴 ‘표류하는 박근혜 대통령’이라는 글에서 "인사 실패와 스캔들은 박 대통령의 상징이 되고 있다. 박 대통령의 이상한 나태함, 큰 변화를 추진할 수 없는 무능함, 스캔들의 여파는 점점 명확해지고 있다. 대담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대통령은 단순한 관리인이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조강수 논설위원

조강수 기자 cho.kangs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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