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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강유정의 영화로 세상읽기]정치와 사업의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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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3선 서울시장을 발판으로 대권을 노리기 위해 선거에 뛰어든 정치인 ‘변종구’를 그린 영화 <특별시민>(위)과 사업가 ‘레이 크록’의 햄버거 프랜차이즈 맥도널드 성공신화와 이면을 다룬 영화 <파운더>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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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도저히 할 수 없는 것, 하면 정치와 사업이 떠오른다. 아무나 정치를 할 수는 없다. 또 해서도 안된다. 그리고 누구나 사업을 하긴 어렵다. 시작이야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실패할 확률이 더 높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런 말도 간혹 듣는다. 정말 정치를 하면 좋을 사람들은 대개 엄두를 내지 않는다. 오히려, 정치를 해서는 안될 사람들이 정치판 근처에 얼씬거린다. 그래서인지 어떤 사람을 평가할 때, 정치적이라는 말은 칭찬이라기보다는 비판이 되고, 수완이 좋다는 말도 그 사람이 얼마나 철두철미하게 계산을 따지는지에 대한 다른 표현이 된다. 여기 두 명의 성공한 남자가 있다. 한 사람은 정치적으로 성공한 사람이고 다른 한 사람은 사업으로 성공한 사람이다(아래엔 영화의 내용이 암시되어 있다).

경향신문

영화 <특별시민>은 3선을 노리는 서울시장 변종구(최민식)에 대한 이야기다. 이미 재선인 변종구의 최종 목표는 사실 시장에 거듭 재선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시장실 창문 너머 보이는 청와대를 보며 그 푸른 기와가 오늘따라 더 아름다워 보인다며 욕심을 갖는다. 어느새 사람들 사이에 공공연한 공식으로 여겨지는 서울시장, 대선 입문이라는 절차를 그 역시 마음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서울시장 선거 과정에서 이러저러한 악재가 자꾸 발생한다. 자연재해도 있고, 스스로 자초한 인재도 있고, 또 해서는 안될 심각한 실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일들이 일어났다는 게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처리하는가이다. 서울시장 변종구는 이러한 악재들을 해결하기 위해 매우 정치적인 선택들을 해 나간다. 그런데, 영화 속에 그려진 그 정치적 선택들은 비인간적 선택, 비윤리적 행동, 비도덕적 판단으로 실행된다. 그는 재선을 위해 가족을 버리고, 친구를 버리고, 동료를 버리고 마침내 최소한의 도덕과 윤리도 버린다. 시장에 재선되기 위해서 그에게는 해선 안될 일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변종구가 보여주는 행위들은 지금 우리가 합의하고 있는 정치인에 대한 짐작과 유추 그대로라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유권자들에게 정치인은 썩은 입냄새가 나는 거짓말쟁이다. 아니 그보다도 못하다. 정치인은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범죄라도 저지를 수 있는 파렴치한이며 몰염치배이다. 자기 스스로를 존중하는 사람이라면, 최소한 인간적으로 스스로 믿는 사람이라면 정치는 해서는 안되는 일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특별시민>에 그려진 정치판은 흥미롭게도 영화 <파운더>에 그려진 사업의 세계와 닮아 보인다. <파운더>는 누구나 한번쯤 맛봤을 법한, 세계적인 프랜차이즈 기업 ‘맥도널드’에 대한 이야기다. 햄버거 맥도널드는 진짜 맥 도널드에 의해 발명되고 개발되었다. 하지만 기업 맥도널드의 사장은 맥 도널드가 아니라 레이 크록(마이클 키튼)이다. 나이 오십줄에 방문판매원으로 살아가던 레이 크록은 어느 시골 궁벽진 곳에 문을 연 맥도널드 햄버거 가게를 보고 단박에 그 가치를 알아본다. 그는 거의 사정하다시피 애원해 맥도널드 프랜차이즈화를 시작하고, 이내 미국 내 굴지의 기업으로 성장시키게 된다.

이렇게만 이야기하면, <파운더>는 레이 크록이라는 인물의 아름다운 아메리칸드림 성공기처럼 보인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그렇게 간단치 않다. 레이 크록은 말하자면 맥 도널드 가족에게서 맥도널드를 뺏은 인물이다. 일례로, 지금 맥 도널드 가문은 맥도널드 프랜차이즈로부터 단 1%의 이익도 받지 못하고 있다. 구두계약으로 지불을 약속했기 때문이다. 짐작하다시피 서류로 남지 않은 계약은 아무 효력이 없다. 믿음, 신의, 고집으로 시작된 맥도널드는 이제 전 세계적 부동산 기업의 이름으로 남아 있다. 레이 크록은 성공하자마자 맥 도널드 가족을 버리고, 자신의 조강지처와 이혼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승장구하고 있다. 배은망덕이 그의 성공의 지름길이다.

<특별시민>의 변종구와 <파운더>의 레이 크록은, 이를테면 성공한 악당이다. 성공이라는 게 정치적 승리, 이익의 창출에 있다면 그들은 분명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어쩐지 그 성공이라는 게 무척이나 씁쓸하다. 영화 속에 그려진 성공한 사람, 출세한 사람들은 남을 믿지 않고, 남의 선한 구석을 파고들어 그 안에 자기 승리의 씨앗을 심는 자들로 그려진다. 모든 것이 다 연기이고 계산이다. 갱스터 영화나 누아르 영화에서 보았던 조직폭력배의 세계보다 훨씬 정교하고, 세심하며 그래서 더 공포스럽다.

모든 정치인이나 사업가가 영화 속 악당처럼 비열하고, 비윤리적이라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문장의 속내처럼 그것은 바람이지 판단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5월 장미 대선을 앞두고 선거전이 한창이다. 각 캠프의 속사정이 정말 영화와 같을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적어도 중요한 핵심, 정치를 하는 이유와 명분에는 사람과 유권자가 있었으면 좋겠다. 아무리 순진한 바람이라고 할지언정 그런 게 없다면, 정치와 사업이라는 게 세상에 존재해야 할 이유가 없을 터이다. 지난 대선의 문구였지만, 모든 일엔 사람이 먼저다. 그걸 잊지 않는 선거이고, 그래서 사람이 우선이 되는 정치였으면 한다.

<강유정 | 강남대 교수·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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