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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9 (일)

[녹색세상]4대강 ‘삽질’을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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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영산강 하굿둑을 다녀왔다. 4월 하순으로 막 접어든 그날 영산강은 벌써부터 녹조빛을 띠고 있었다. 사실 영산강만이 아니다. 강들이 제 빛을 잃은 지 오래, ‘4대강 살리기 사업’이란 이름이 무색하게 우리의 4대강은 ‘死대강’이 되어버렸다. ‘보’라 불리는 댐에 강물의 흐름이 막히면서 맑은 물빛이 사라지고 연례행사로 창궐하는 녹조 탓에 초록 페인트를 뒤집어쓴 듯하다.

경향신문

꼭 10년 전이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 4월23일부터 예비후보등록이 있었고 며칠 뒤인 4월27일에 당시 각종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던 이명박 한나라당 경선후보자의 ‘한반도 대운하 건설’ 구상에 대한 공약 검증 토론회가 MBC 100분 토론에서 열렸다. 류우익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와 정동양 한국교원대 기술교육학과 교수가 찬성 측 패널로, 홍종호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와 박진섭 생태지평연구소 부소장이 반대측 패널로 참가했다(당시 소속과 직책). 비용편익분석을 통해 한반도 대운하 사업의 경제성을 높이 평가해서 사업 추진 논리를 뒷받침했던 곽승준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출연을 고사했다고 한다. 어느 블로그(http://m.blog.naver.com/seyoungchoi/120040179443) 운영자는 그날의 토론을 이렇게 적고 있다. “100분이 짧게 느껴질 정도로 흥미로웠지만 찬성 쪽 패널들의 잦은 실수로 싱거운 시간이기도 했다.”

제대로 된 전문성과 논리로는 정당화하기 어려웠던 한반도 대운하 구상, 그 구상은 이명박 전 대통령 취임 이후 2008년 5월에 시작된 광우병 촛불 민심의 반대로 폐기되는 듯하다가 그해 12월 4대강 정비사업이란 이름으로, 2009년 6월에 ‘4대강 살리기 사업’이란 이름으로 되살아났다. 2500명 이상의 교수와 전문가, 그리고 다수 국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4대강이 22조2000억원의 공사비를 집어삼킨 대규모 토목공사의 먹잇감이 되고 강으로서의 기능을 잃어가는 데 채 4년이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박근혜 정부 내내 제대로 된 문제 해결 노력을 기울이기는커녕 4대강 주변 개발사업을 승인함으로써 4대강은 계속해서 썩어갔다. 방치하기에는 녹조문제가 너무 심각하기에, 정부는 마지못해 일부 보의 수문을 개방하는 시범단계를 거쳐 올 4월부터 1년 내내 모든 보의 수문을 상시 개방하기로 했다.

4대강 사업의 실패는 이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되었다. 안타깝게도 그 실패는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4대강 사업은 제대로 된 경제성 분석도, 사회적 토론도 없이, 그래서 폭넓은 사회적 합의와 공감대 없이, 당시 국회의장이었던 박희태 의원이 하고자 했던 대로, ‘전광석화’처럼 진행되었다. 4대강 사업의 씨앗이 되었던 한반도 대운하 사업이 논란이 되었던 때로부터 꼭 10년 만에 치러지는 이번 대선으로 4대강을 회복시킬 수 있는 창이 열리기를 기대한다. 4대강 사업이야말로 청산해야 할 적폐 중의 적폐요, 그것이 촛불민심이기에.

그런데 요즘 대선 토론회에서는 4대강 문제가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고 있다. 거론할 필요 없이 당연히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데 의견을 함께하기 때문일까? 하지만 후보들 중 1인은 4대강 사업을 앞장서 지지했을뿐더러 4대강 보에 확보된 하천수로 상습가뭄 농지에 용수를 공급한다는 명목의 또 다른 토목사업을 대선 공약으로 내걸고 있다. 다른 후보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수위 영향을 평가한 뒤 단계적 또는 선별적으로 보를 허물고 재자연화하겠다는 입장이다. 대선 이후, 바람직한 해결방안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와 사회적 논의가 이루어지고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대선 국면에서 우리 시민은 4대강 사업처럼 심각한 경제·사회·환경적 영향을 야기할 공약이 있지나 않은지 제대로 살펴볼 일이다. 또다시 우를 범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윤순진 | 서울대 교수·환경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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