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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정동칼럼]TV 토론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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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선거가 불과 열흘 앞으로 다가왔다. 수십년 묵은 적폐를 해소하고 절박한 촛불 민심을 대변해줄 후보가 당선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앞으로는 ‘이게 나라냐?’라는 탄식 대신 ‘이런 게 나라구나’라는 감탄이 사람들 입에서 흘러나오는 새 시대가 열리기를 바란다.

경향신문

지금까지 네 차례의 TV 토론은 후보 검증에 어느 정도 도움을 주긴 했지만 대체로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항상 시간에 쫓겨 논쟁다운 논쟁이 되지 못했다. 후보 간 공격 빈도에서 편차가 너무 심해 공정한 토론이라고 보기 어렵다. 수준 이하의 발언이나 태도로 실망을 준 것도 한 두번이 아니었다. 네 차례 토론에서 틀린 주장이 난무하는데, 시간에 쫓겨 검증받지 않고 지나간 것이 많아 중요한 몇 가지 사실을 확인하고자 한다.

토론에 자주 등장한 단골 경제 주제는 북한 퍼주기, 그리스 경제위기, 그리고 공공의 역할 문제였다. 유승민·홍준표 후보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간 북한에 퍼주기를 해서 그 돈으로 북한이 핵개발을 했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틀린 주장이다. 그런데도 견제받지 않고 회를 거듭할수록 점점 도를 더해 가고 있다. 홍 후보는 10년간 북한에 퍼준 액수가 처음 토론에서는 40억달러라고 말하더니 그 뒤에는 60억달러, 70억달러로 자꾸 올렸다. 실제 액수는 약 40억달러다. 지원 내용은 대부분 현물이고 현금은 극히 소액이라 핵개발과는 거리가 멀다. 그리고 총액도 우리나라의 10년간 국민소득의 1만분의 5에 불과하다. 잘사는 형이 못 사는 동생에게 1만원 중 5원을 주고는 퍼주었다고 말하면 여러분은 동의하겠는가? 교회는 소득의 10분의 1 헌금을 권장하는데, 1만분의 5를 주고 퍼주기 했다고 떠든다면 외국에서 우리를 어떻게 보겠는가. 독일 통일 이전 서독은 동독에 우리나라의 16배를 지원했지만 퍼주기란 말은 쓰지 않았다. 또 장차 통일 후 남북한의 소득 격차를 줄여나가야 할 것을 생각하면 퍼주기란 표현보다는 통일 비용을 미리 아주 약소하게 지불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이런 작은 금액을 놓고 퍼주기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구두쇠이거나 허풍선이이다.

둘째, 문재인 후보가 공공부문 일자리 81만개를 만들겠다고 하자 그렇게 하면 한국이 제2의 그리스가 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실제 우리 주변에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꽤 많다. 이들은 그리스 위기가 공공부문의 비대와 과잉복지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생각하는데, 천만의 말씀. 몇 년 전 있었던 그리스를 비롯한 남유럽 재정위기는 그 원인이 연고주의와 부패, 부자들의 탈세와 해외 자본도피, 부동산 투기가 원인이었다.

유럽이 다른 대륙에 비해 복지가 발달한 것은 사실이지만 남유럽은 상대적으로 복지가 덜 발달된 나라들이다. 남유럽보다는 중부 유럽, 북유럽으로 갈수록 세금을 많이 거두고 복지가 더 발달되어 있다. 남유럽의 복지 과잉, 공공 비대가 위기의 원인이라면 남유럽보다는 중부 유럽에 먼저 위기가 왔을 것이고, 북유럽은 벌써 쓰러졌어야 할 것 아닌가. 그리스 부자들의 탈세와 자본도피는 악명 높다. 몇 년 전 그리스 기자가 부자들의 해외 자본도피 실태를 폭로해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바 있다. 그리스의 부패와 연고주의도 악명 높다. 그리스 병원에는 의사에게 돈을 얹어줘야 진료를 해주는 악습이 있을 정도다. 그리스가 2004년 올림픽 탄생 100주년 기념 올림픽 주최국이 되어 경기장과 선수촌 건설에 국가 예산의 2배나 되는 큰돈을 쏟아부어 그 자체 재정위기를 일으켰을 뿐 아니라 부동산 투기를 촉발해 경제위기를 가져온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

경제에서 공공의 역할을 늘리고, 공공부문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심상정·문재인 후보의 공약은 공공이 열악하기 그지없는 정글자본주의 한국에 꼭 필요한 처방이다. 이를 비판하는 안철수·유승민·홍준표 후보는 시장 과잉, 공공 결핍이라는 한국자본주의 특이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 보인다. 홍준표 후보는 경남도립병원을 폐쇄한 것을 본인의 업적이라고 태연히 자랑한다. 한국의 의료는 공공이 빈약하고 시장이 과잉인 미국식 체제이면서 그 정도가 미국을 능가하는데, 늘려나가도 시원찮을 공공병원을 폐쇄하여 의료 불평등, 서민들의 치료 기회 박탈을 악화시킨 데 대한 일말의 책임감도 보이지 않는다. 그는 또 강성 노조가 일자리를 없앤다는 근거 없는 과격한 주장을 반복한다. 노조에 대한 편향된 극우파적 인식은 한국 보수의 심각한 문제다. 일자리를 마련하는 중소기업에 임금보조금을 지급하겠다는 문 후보의 공약도 반복적으로 공격 대상이 되고 있는데, 실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에드먼드 펠프스가 적극 권장하는 좋은 정책이다.

억지가 통하면 진실이 죽는다. 토론은 목소리 큰 사람이 아니라 논리와 사실로 말하는 사람이 승자다. 남은 TV 토론은 좀 더 격조 있고 수준 높은 토론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이정우 | 경북대 명예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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