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 장군 묘 |
원균 장군 묘 |
【수원=뉴시스】김지호 기자 = '충무공 이순신 탄신일'이 28일로 472주년을 맞는다.
전국 곳곳에는 이순신 장군과 그와 함께했던 장병들, 그리고 왜군으로부터 한반도를 지켜낸 모든 이들을 기리는 장소가 마련돼 있다.
경기 지역에도 역시 이순신 장군과 함께 싸웠던 장군들의 묘가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돼 보존 중이다.
경기 고양시 덕양구 행신동에 있는 행신1호공원 한편에는 이순신 장군의 총애를 받으며 왜적을 물리치는데 큰 공을 세운 유형 장군의 묘소가 있다.
묘역에는 묘비와 함께 조선 중기 시대 문신이자 학자인 이정구가 짓고, 조선 시대 서화가인 정학교가 쓴 신도비(神道碑·신왕이나 고관 등의 평생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가 세워져 있다.
유형 장군은 임진왜란 노량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이 전사하자 대신 전장을 지휘하는 등 최일선에서 활약했다.
임진왜란을 거친 유형 장군은 충청·전라·경상 3도의 수군을 통제하는 관직에 올랐다가, 이후에는 황해도 병마절도사를 지내다가 1615년 사망했다.
유형 장군의 묘는 1978년 10월10일 경기도 기념물 제50호로 지정돼 고양시에서 관리하고 있다. 유형 장군의 후손들도 매년 찾아와 장군을 기리고 있다.
고양시 관계자는 27일 "정기적으로 묘소를 방문해 노후 안내판 교체하는 등 보존사업을 하고 있다"면서 "아파트 단지와 가까운 공원에 위치해 있어 주민들도 자주 찾고 있다"고 설명했다.
유형 장군과 달리 이순신 장군의 직접적인 지휘를 받지 않았지만, 같은 시기 같은 마음으로 왜적의 침입에 맞서 싸운 원균 장군의 묘도 경기 평택시에 소재했다.
평택시 도일동 내리저수지를 바라보는 위치에 있는 원균 장군 묘소는 1980년 6월 2일 경기도 기념물 제57호로 지정됐다.
원균 장군은 임진왜란이 벌어지자 이순신 장군과 함께 왜군을 물리치는 등 합포해전, 적진포해전에서 큰 승리를 거뒀다.
원균 장군과 이순신 장군은 후세에 와서 둘 사이에 불화가 있었다고 알려졌지만, 전쟁 초기 옥포해전을 이겨내며 임진왜란 최초의 해전을 승리로 이끌기도 했다.
원균 장군은 전쟁 중이던 1597년 이순신 장군에 이어 제2대 삼도수군통제사로 전장에 나섰다가 칠천량해전에서 전사했다.
전쟁이 끝난 뒤 선무공신(임진왜란에서 왜군 정벌에 공을 세운 장수 등에게 지급된 훈공)에서는 이순신 장군, 권율 장군과 함께 1등으로 이름을 올렸다.
평택시 내리저수지 인근에 보존되고 있는 원균 장군 묘소에는 돌로 만든 등과 망주석, 무인석 등이 마련돼 있다. 비문에는 왕이 내린 교서와 장군의 행적이 기록돼 있다. 묘역 바로 인근에는 사당도 보전되고 있다.
용인시 수지구 죽전동 단국대학교 죽전캠퍼스에 있는 석주선기념박물관에는 이순신 장군 밑에서 왜군과 싸우다가 1598년 한산도에서 장렬히 전사한 김함의 유물이 보관 중이다.
유물은 장옷 3점과 저고리 2점, 바지 2점, 모자 1점 등 모두 17점으로 국가민속문화재 제209호로 1987년 2월12일 지정됐다.
1985년 4월 12일 전남 영암군 학산면 학계리에서 김해 김씨 문중이 선산의 묘역을 재정리하기 위해 이장하던 중 출토된 유물은 해전에서 전사해 시신을 찾지 못한 김함의 시신을 대신한 나무 형상을 염습해 장례를 치른 특수한 형태로 발견됐다.
충무공 이순신의 충의를 길이 빛내자는 의미에서 지정된 충무공 이순신 탄신일, 이순신 장군과 함께 나라를 지켜냈던 선조들도 기억하는 하루가 되면 어떨까.
kjh1@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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