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전화’ 상담 23년 김수현 컨설턴트
스트레스로 심장 이상 생겨 그만둘 생각도
"얘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 그들에겐 희망"
최근엔 경제적 어려움 호소하는 전화 늘어
1994년 어느 날, 생명의전화에서 상담 봉사를 하던 아내 우현숙(66) 씨가 갑자기 상담실에서 나와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김수현(67) 씨에게 부탁했다. 마침 그곳엔 남자가 김 씨 한명 뿐이었다. 얼결에 전화를 넘겨받아 상담을 했다. 전화를 끊자 아내가 그를 보며 감탄했다. “전화 아주 잘 받네요.”
“그때 이상하게 뭐가 씐 듯한 기분이었어요. 그래서 전문교육을 받고 상담 봉사를 시작했지요.”
김수현 씨가 26일 서울 성북구 생명의전화 상담실에서 전화사담을 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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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자녀·대인관계·직장·질병·정신병·성. 생명의전화 상담에선 모든 문제들이 다 나오고 사회의 어두운 분야를 속속들이 다 알게 됩니다. 모르고 살면 편한데 너무 힘들더라고요.”
상대방을 야단칠 수도, 먼저 전화를 끊어버릴 수도 없이 하루 10통 넘는 상담을 진행해야 한다는 점이 스트레스였다. 가장 괴로운 건 “이 전화하고서 죽겠다”고 말하는 자살 위기자의 전화였다. 자칫 상담을 잘못하면 이 사람이 정말 죽으러 갈 수 있다는 부담감이 온몸을 짓눌렀다.
상담 내용은 절대 외부에 발설할 수 없다. 상담실을 나오는 동시에 싹 잊어버리려고 하지만 스트레스가 가시지 않았다. 4년 먼저 봉사를 시작했던 아내는 힘들어서 그만둔 지 오래였다. 그와 같은 시기에 봉사에 입문했던 40명 중 남은 사람은 그 포함 2명뿐이었다. 2014년 생명의전화로부터 20년 장기봉사상을 받았지만 ‘정말 힘들다. 내가 이걸 왜 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2015년 어느 날, 문제가 터지고 말았다. 심장의 이상이었다.
2015년 4월 스탠트를 5개 삽입하는 시술을 했다. 의사는 그가 술·담배 안 하고 매일 운동하는 이야기를 듣고 “혹시 스트레스 많이 받으시나요”라고 물었다. 그의 머릿속에 한가지가 떠올랐다. 아, 생명의전화 봉사.
김수현 씨가 26일 서울 성북구 생명의전화 상담실에서 전화상담을 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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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아프니 다 관두고 싶었다. 봉사도 보험도 모두 정리하고 공기 좋은 시골에 내려가 살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아내는 기왕 마음먹은 일이니 포기하지 말고 좀더 해보자고 그를 독려했다. 삼성생명의 젊은 컨설턴트들도 “계속 나오셔서 어른 역할을 해달라”고 붙잡았다. 결국 마음을 고쳐 먹었다. “생명의전화 봉사는 할 수 있는 데까지 가기로 했습니다. 보험도 회사가 나가라고 할 때까지 가보려고요.”
최근엔 한 달에 한번 생명의전화 상담을 한다. 과거엔 가족·대인관계 고민이 주를 이뤘다면 최근엔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전화가 많아졌다. 상당수 고민은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해결되기도 한다. 하루 10통 중 1~2통은 상대편의 “고맙다”는 말로 상담이 끝난다. 힘이 드는 만큼 얻는 보람도 크다. “전화해서 ‘자살하겠다’고 말한다는 건 곧 ‘나를 살려달라’는 의미잖아요. 주위 누구에게도 말 못하는 고민, 들어줄 사람이 있다는 건 그들에게 큰 힘이 되지요.”.
그는 장기 봉사의 공을 인정 받아 지난 20일 삼성생명으로부터 ‘컨설턴트 사회공헌상’을 받았다. 그는 봉사에 관심 있는 반퇴·은퇴자들에게 현실적인 조언을 했다. “봉사나 한번 해볼까 정도의 생각으로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단단한 마음가짐을 가진 뒤에 시작하세요.”
한애란 기자 aeyan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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