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이재용-최순실 뇌물고리에도 적용 가능성
“단지 막연히 사업상의 불이익을 피하려는 생각에 불과했으므로, 부정한 청탁에 관한 상호 양해가 아니다.”
“부정한 청탁을 한다는 점에 대한 상호 묵시적 인식과 양해 아래 제3자에 대한 후원금 지원의 형태로 부정한 이익을 주고받은 경우에 해당한다.”
정옥근(65) 전 해군참모총장의 방산비리 수뢰사건에서 피고인 쪽의 상고이유와 법원의 판단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전 삼성전자 부회장의 뇌물사건 재판에서도 비슷한 구도의 공방이 예상된다.
대법원 2부(주심 김창석 대법관)는 27일 제3자 뇌물제공 혐의로 법정 구속된 정 전 총장의 재상고심에서 원심의 판결을 그대로 받아들여 징역 4년형을 확정했다. 함께 기소된 정 전 총장의 아들 정아무개(39)씨도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이 확정됐다. 방산업체인 옛 에스티엑스 계열사로부터 장남의 요트회사를 통해 7억7천만원을 받아 단순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기소된 정 전 총장은 지난해 6월 대법원이 “요트회사가 후원금을 받은 것을 피고인들이 직접 받은 것과 동일하게 평가할 수는 없다”며 사건을 재심리하라고 판결함에 따라, 단순 뇌물수수에서 제3자 뇌물수수로 공소장이 변경돼 재판을 받아왔다.
사건 재심리를 맡은 서울고법은 파기환송심에서 “정 전 총장과 에스티엑스 그룹 사이에 후원계약 및 후원금 지급의 대가로 방위사업 진행에서 도움이나 특혜를 준다는 등에 관한 암묵적인 양해가 있어 제3자 뇌물제공죄에서의 부정한 청탁이 인정된다”며 징역 4년의 실형을 선고하고 정 전 총장을 법정구속했다.
재판부는 대법원 판례를 인용해 “제3자 뇌물제공죄의 구성 요건인 '부정한 청탁'은 명시적으로는 물론 묵시적으로도 행해질 수 있다”며 “대가에 관한 양해가 존재하는 한 구체적으로 누구에게 교부할 것인지 등이 청탁 당시에 명확하지 않더라도 부정한 청탁이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판결은 특히 “묵시적 의사표시에 의한 부정한 청탁이 인정되려면 대가 관계 등에 대한 당사자 사이의 공통의 인식이나 양해가 있어야 한다”며 이번 사건에선 그런 묵시적 인식이나 양해가 인정된다고 밝혔다.
정 전 총장 쪽은 “직무에 관하여 후원계약 및 후원금 지급을 한 것은 맞지만, 이는 단지 막연히 사업상의 불이익을 피하려는 생각에 불과했으므로 부정한 청탁에 관한 상호 양해가 있었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로 상고했으나, 대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 전 총장 사건과 박근혜-이재용-최순실 뇌물 사건은 ‘판박이’다. 청탁을 둘러싼 정황, 돈을 건넨 구도 등이 매우 비슷하다. 정 전 총장은 에스티엑스조선해양 쪽에 아들의 요트회사에 후원금을 지원해달라고 요구했고, 실제 정 전 총장 쪽 가족회사에 가까운 요트회사에 7억7천만원이 지원됐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정 전 총장은 박 전 대통령으로, 정 전 총장 아들은 최순실씨와 정유라씨로, 에스티엑스는 이재용 전 부회장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정 전 총장 아들의 요트회사도 최씨가 만든 코어스포츠나 미르·케이스포츠 재단과 같은 구실을 했다는 것이다. 정 전 총장 사건의 경우 에스티엑스 쪽이 ‘어떤 일을 도와달라’고 구체적으로 청탁한 사실은 드러나지 않았지만, 삼성 쪽은 경영권 승계 과정을 도와달라는 묵시적 청탁의 정황이 더 분명하다.
대법원 판례대로라면 박근혜-이재용 뇌물사건에서도 제3자 뇌물수수가 인정될 가능성이 큰 셈이다. 법정에서는 ‘묵시적 인식과 양해’가 있었는지를 놓고 치열한 공방이 벌어질 전망이다.
여현호 선임기자 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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