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무혐의, 현행법 ‘유명무실’
반려동물 1000만 시대를 맞아 대선 정국에서도 ‘반려동물’이 득표를 이끌 주요 슬로건이 되고 있다. 반려동물 진료비를 공개하고 동물을 물건으로 취급하는 법률을 개정하는 등 면면도 다양하다. 유력 후보들이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반려동물 관련 공약을 내놓은 건 이번 대선이 처음이다.
새로운 반려동물 공약이 쏟아지지만, 정작 기존의 동물보호법도 제 구실을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동물학대로 검거되는 인원은 해마다 늘지만, 처벌로 이어지는 건 절반에도 못 미친다는 것이다.
대검찰청이 집계한 ‘동물보호법 위반 사건 처리 결과’를 보면,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검찰에 접수된 사건은 지난 2013년 160건에서 2015년 287건으로 3년 새 179%로 늘었다. 이 중 재판에 넘겨진 건 2013년 70건(43%), 2014년 131건(48%), 2015년 115건(40%) 수준이었다. 절반이 넘는 사건은 ‘혐의 없음’으로 종결됐다.
법조계와 동물보호단체는 범행의 고의성을 입증하기 어려워 무혐의 처분이 많이 내려진다고 분석한다. 동물보호법에서는 과실이 아닌 고의로 동물을 학대한 경우만 처벌 대상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2년 사회적 공분을 불러일으킨 ‘악마 에쿠스’ 사건이다. 자신의 비글종 개를 에쿠스 트렁크에 매단 채 질주해 숨지게 한 견주에게 경찰은 학대의 고의가 있었는 지 불분명하다며 무혐의 처분했다.
동물보호법에 규정된 ‘학대’의 기준이 모호한 것도 무혐의 처분이 많은 이유로 꼽힌다. 동물보호법 8조 1항에서는 ‘목을 매다는 등 잔인한 방법으로 동물을 죽이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재판부의 해석은 갈린다.
자신의 진돗개를 공격하는 이웃집 맹견을 전기톱으로 내리쳐 죽인 ‘로트와일러’ 사건에서 원심은 이 조항을 ‘합리적이고 정당한 이유없이 잔인한 방법으로 동물을 죽이는 행위’라고 해석했다.
이에 따라 A씨는 자신의 개를 보호하기 위한 급박한 상황이었으므로 합리적이고 정당한 이유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A씨가 기계톱을 휘둘러 피해견을 쫓아버릴 수 있었음에도 장기 일부가 절단될 정도로 죽였다”며 A씨의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를 유죄로 판결했다.
동물학대 사범은 재판에 넘겨지더라도 가벼운 벌금형을 받는 경우가 대다수다.
<헤럴드경제>가 27일 대법원 판결 종합정보 시스템을 조회한 결과, 지난 2012년 1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5년 간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총 174건의 판결이 선고됐다. 벌금형이 111건(63.7%)으로 가장 많았고, 징역형의 집행유예가 55건(31.6%), 실형은 8건(4.5%)이었다. 실형을 받은 8건에서 피고인은 주거침입, 절도 등 다른 혐의도 받고 있는 ‘경합범’이었다. 동물학대 단독 범죄만으로 실형을 선고받은 피고인은 한 사람도 없었다.
일례로 대전지법 천안지원은 지난해 4월 자신의 자택에서 기르던 강아지 세 마리의 꼬리를 작두로 자른 혐의(동물보호법위반)로 재판에 넘겨진 A씨(59)씨에게 벌금 30만 원을 선고했다. A씨는 법정에서 동물을 학대한 적이 없고 성장을 돕기 위해 꼬리를 잘랐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성장을 돕기 위해 꼬리를 자른다는 주장에 수의학적 근거가 부족하다고 봤지만, 이후 A씨가 강아지를 건강하게 기른 점, 장애 3급을 가지고 있는 점을 두루 고려해 벌금형을 선고했다.
고도예ㆍ이유정 기자/ye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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