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18 (월)

[인터뷰] 클라우스 슈밥 "모든 혁명엔 승자와 패자가 있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모든 혁명에는 승자와 패자가 있다. 승자는 힘겨운 이들을 배려하고 불운한 이들에 연대감을 보여줘야 할 의무가 있다.”

클라우스 슈밥(78) 세계경제포럼(WEF) 의장은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사회적 긴장이 높아질 것으로 전망하며, “실효성 있는 최저임금을 도입하거나, 기본소득 구조를 마련하는 등의 정책을 통해 사회 전체의 성장을 이끌어 낼 수 있다”고 조언했다.

중앙일보

클라우스 슈밥 세계경제포럼(WEF) 의장 [중앙포토]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슈밥 의장은 4차 산업혁명이라는 개념을 처음 주창했다. 그는 지난해 1월 열린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에서 4차 산업혁명을 글로벌 의제로 삼았다.

그로부터 두 달 후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에서 이세돌이 4대 1로 패하면서 4차 산업혁명은 한국 사회에서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다.

같은 해 4월 출간된 슈밥 의장의 책 『4차 산업혁명』은 국내에서 17만 부 이상 판매되며,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4차 산업혁명에 대한 관심은 더욱 커지고 있다. 정부는 연일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대응책을 내놓고 있으며, 기업들도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대선 후보들은 저마다 자신이야말로 4차 산업혁명을 이끌 적임자라고 주장하고 있다.

코리아중앙데일리는 최근 슈밥 의장을 e메일로 인터뷰했다.

슈밥 의장은 인터뷰에서 “기술은 가치중립적이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기술이 돈 버는 데나, 무의미한 시간 낭비에만 쓰여선 안 된다”며 “기술은 우리의 진정한 화합을 위해 사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4차 산업혁명을 통해 새로운 문화 르네상스를 이룰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인간 중심의 미래”를 만들기 위해 인문학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새로운 기술을 둘러싼 윤리와 조직 구조를 수립하는 데 철학과 정치학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했다.

최근 한국의 코딩 열풍에 대해서는 “과학을 어렵게 생각해선 안 되겠지만, 모든 사람이 코딩 전문가가 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인들이 보여주는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높은 관심에 “기쁘고 영광스럽다”며 “한국의 변화를 돕는 것을 나의 사명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다음은 슈밥 의장과의 일문일답.

Q. 당신의 책 『4차 산업혁명』이 한국에서 베스트셀러다. 이렇게 주목받을 거라고 예상했나. 왜 그렇다고 보나.


A. 한국이 4차 산업혁명이라는 메시지의 진가를 알아봐준 것이 매우 놀랍고, 기쁘고, 영광스럽다. 한국인들이 4차 산업혁명이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걸 확신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은 지난 50년 동안 경제적 사회적으로 큰 변화를 겪었으며, 3차 산업혁명(디지털 혁명)의 리더로 자리매김했다. 나는 한국이 신기술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으며, 4차 산업혁명을 사회 시스템을 바꿀 중요한 전환점으로 받아들일 나라라고 생각했다.

Q. 2016년 스위스금융그룹 UBS는 한국의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준비 정도를 41.5위로 분석했다. 노동 유연성 부문에서는 83위에 그쳤다.


A. 사회 전 부문이 기술 발전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정보를 얻는 방식부터 시민·소비자로서 의사결정 하는 방식, 일하는 방식, 배우고 공부하는 방식에까지 혁명적인 변화가 있을 것이다.

변화의 시기에 앞서 나가려는 기업이라면 덜 위계적이고, 더 유연해야 한다. 평생 학습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Q. 당신은 산업혁명으로 인해 사회적 긴장이 높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기술 수준이 낮고 적은 임금을 받는 사람들과 높은 기술을 갖고 높은 임금을 받는 사람들 사이에 사회적 긴장이 강화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 긴장을 예방하거나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나.


A. 모든 혁명에는 승자와 패자가 있다. 승자는 힘겨운 이들을 배려하고 불운한 이들에 연대감을 보여줘야 할 의무가 있다.

사회적 격차를 단번에 치유할 묘책은 없다. 하지만 경영진에 대한 과도한 급여을 제한하는 것부터, 실효성 있는 최저임금을 도입하거나, 기본소득 구조를 마련하는 등 실질적인 조치를 통해 전체적인 성장은 가능하다.

Q. 한국이 다른 선진국들보다 먼저 차세대 네트워크로 불리는 5G 네트워크를 도입한다면 다른 선진국들과의 격차를 줄이고 앞서 나갈 수 있을까. 네트워크를 통해 모든 사물이 연결된다는 점에서 뛰어난 5G 네트워크는 4차 산업혁명을 추동하는 훌륭한 인프라가 될 수 있다. 한국 정부와 일부 전문가들은 5G 네트워크가 큰 차이를 만들어 낼 것이라고 말한다.


A. 엔지니어의 한 사람으로서 5G에 대한 기대에 공감한다. 하지만 경제 성장에 대한 희망을 어느 한 기술에만 거는 것은 조심스럽다.

나는 기술과 사용자 행동과 한 나라의 기업 문화가 밀접하게 연관돼 복잡한 시스템을 구성한다고 생각한다. 그 복잡한 시스템을 살펴야 한다.

더불어 모든 한국인이 영토와 시장의 한계를 넘어 생각함으로써 글로벌화된 세계에서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말기 바란다.

Q. 당신이 개인적으로 2030년에 가장 기대하는 변화는 무엇인가.


A. 우리가 당면한 사회적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변화들을 가장 기대한다.

신소재와 에너지 시스템의 발전은 전기를 사용하지 못하는 12억 명의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것이다. 기계 학습을 이용한 발전된 바이오테크놀로지와 뉴로테크놀로지는 질병을 예상하고 치료함으로써 인간 삶의 질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것이다.

오늘의 기술이 의미하는 것이 바로 2030년 미래의 모습이다. 인간은 그 시스템의 중심에 있게 될 것이다.

나는 이 점을 알리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한국인들이 어떤 2030년을 만들어 나갈 지 결정하고 다 함께 노력하기를 바란다.

Q. 미래를 긍정적으로 보는 유토피아적 전망과 암울하게 보는 디스토피아적인 전망이 있다. 당신은 어느 쪽인가. 그 이유는.


A. 나는 언제나 낙관론자였다. 기술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기회에 매혹된다.

하지만 질병을 물리치려 투쟁하고, 가난과 싸우며, 경제 성장을 이뤄내는 인류 문명을 접할 때면 겸손해진다.

세계경제포럼은 불안한 경제 상황, 증가하는 사회적 불만이 야기하는 각종 위협 등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Q. 당신은 책에서 기술을 물리적, 생물학적, 디지털 기술로 분류했다. 그중에 어떤 기술이 4차 산업혁명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할까.


A. 각각 다른 역할이 있으며 각각은 모두 독립적이다. 사실 4차 산업혁명의 수혜를 누리기위해서는 세 기술이 융합해야 한다.

디지털 영역이 중요한 이유는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디지털 기술은 4차 산업혁명의 기술적 인프라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컴퓨팅과 기계학습(머신러닝) 분야의 발전은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을 높이기 때문이다.

물리적, 물질적 기술이 자주 평가 절하되지만, 소재 과학 분야의 배터리 기술 발전은 전 세계 에너지 시스템을 혁신할 수 있다. 무어의 법칙(18개월마다 반도체 성능이 2배가 된다는 법칙)을 현실로 만들고, 퀀텀 컴퓨팅 같은 미래 컴퓨팅 기술은 이끄는 것이 신소재다.

마지막으로 바이오 기술은 가장 파괴적인 기술이다. 신경과학적 기술(뉴로 테크놀로지)은 우리의 인지 시스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반면 유전자를 포함한 생물학적 기술(바이오 테크놀로지)은 우리의 육체 뿐 아니라 미래 세대의 특징까지 바꿀 수 있다. 두 가지 모두 인류 진화의 커다란 발걸음이 될 것이다.

Q. 당신은 지난해 방한 당시 한 강연에서 좋은 리더란 두뇌와 영혼, 심장, 그리고 용기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에선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됐고, 오는 5월에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다. 한국은 저출산, 저성장, 청년 실업 등으로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 있다. 새로 선출되는 한국의 새 대통령에게 어떤 조언을 줄 수 있을까.


A. 주권국가의 선출된 지도자에게 뭔가를 해야 한다고 말하는 건 내 역할도 아니고 그럴 입장도 못된다.

하지만 이 말 만은 하고 싶다. 한국이 마주하고 있는 도전은 세계 다른 여러 나라들이 겪고 있는 도전이다.

세계경제포럼은 여러 이해 관계자들과의 건설적인 대화를 통해 이 같은 도전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나가는 장이다. 한국의 각 분야 리더들을 세계경제포럼에 초대한다.

나는 한국의 변화를 돕는 것을 나의 사명으로 삼았다. 그들과 함께 일하는 것을 나의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Q. 한국의 초중고등학교에서는 코딩 교육을 교육 과정에 포함시켰다. 많은 고등학생들은 대학에서 이공계에 진학한다. 대학에서는 인문학 전공이 줄어들고 있다. 인문학의 미래는 무엇일까.


A.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이 스템(STEM), 즉 과학, 기술, 엔지니어링, 수학으로 제한돼 있다는 생각은 잘못이다.

우선, 모두 코딩 전문가가 될 필요는 없다. 사실 기계가 점점 발달하면서 코딩 작업은 점차 쉬워질 것이다.

물론 과학과 기술을 어렵게 생각해선 안 될 것이다. 과학적 방법에 익숙해지는 게 좋다. 그러면 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스스로 디자인하거나 건설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엔지니어 부족 현상도 개선돼야 한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을 위한 핵심 기술은 우리를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것들이다. 인지 유연성, 창조적 사고력, 감정 지능 같은 것이다. 감정 지능 분야 전문가인 피터 살로베의 연구에 따르면 이런 능력을 발전시킬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좋은 책을 읽고 훌륭한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것이다.

인문학은 인간 중심의 미래를 위해 중요하다. 우리는 4차 산업혁명을 통해 새로운 문화 르네상스를 맞을 수 있다. 예술과 과학 두 분야 모두에 관심을 갖고 참여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기술을 둘러싼 윤리와 조직 구조를 이해하고 만들어 나가는데도 투자해야 한다. 철학과 정치학은 혁신적인 생각을 기술 세계에 적용하는 데 있어 중요한 학문이다.

Q. 공교육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교실은 미래에도 존재할까.


A. 교육은 그 어느 때보다 더 중요해 지고 있다. 교육은 여전히 가난을 구제하는 가장 강력한 방법이다. 관점을 제공하고, 사회를 강하게 만든다.

미래의 교실이 어떤 모습일까에 대해서라면 나는 다른 형태의 교실이 등장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기존의 전통적인 학교 교실부터 가상의 공간에서 소수가 모여 배우는 형태까지 가능할 것이다. 또 누구나 교육을 통해 혁신을 빠르게 흡수하고, 더 값싼 비용으로 쉽게 지식에 접근할 수 있게 될 것이다.

Q. 코리아중앙데일리는 최근 1000명에게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인식 조사를 했다. 80%의 응답자들은 미래의 삶이 더 편리해질 것이라고 답했지만 더 행복해질 것이라고 답한 사람은 40%에 불과하다. 이 차이는 어디서 오는 걸까. 미래를 어떤 마음 가짐으로 준비해야 할까.


A. 나는 책에서 4차 산업혁명은 우리에게 더 효율적이고 편리한 생활을 줄 것이라고 썼다. 일, 공동체, 가족, 정체성 같은 전통적으로 우리에게 의미 있는 것들을 희생하는 대신 말이다. 설문조사 결과는 한국인들도 이렇게 느끼고 있다는 것을 반영한다.

그리고 우리 주변의 많은 기술이 우리를 더 고립시키고 진정으로 더 행복하게 만드는데 실패했다는 것은 알 수 있다. 세계경제포럼의 중심 철학 중 하나는 새로 등장하는 기술들은 버그(bug)가 아닌 기능(feature)으로서의 가치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기술은 가치중립적이지 않다. 기술이 강력해 질수록 우리는 기술의 영향을 더 많이 받고 있다.

기술은 돈 버는 데나, 무의미한 시간 낭비에만 쓰여선 안 된다. 소외되고, 불안하고, 정신적으로 파편화된 세상이 되지 않도록 기술이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려면 대화해야 한다. 기업가들은 기술을 가진 회사와 대화해야 한다. 우리는 가족과 더 많이 교류해야 한다.

기술은 진정한 화합을 위해(truly bring us together) 사용되어야 한다.

인터뷰 원문 보기

코리아중앙데일리 서지은 기자 seo.jieun@joongang.co.kr

▶SNS에서 만나는 중앙일보 [페이스북] [트위터] [네이버포스트]

ⓒ중앙일보(http://joongang.co.kr) and JTBC Content Hub Co., Lt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