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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이정배의 내 인생의 책] ④ 다석강의 | 다석학회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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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뜻 버려 하늘 뜻 찾다

경향신문

이정배 전 감신대 교수


함석헌의 스승으로 알려진 다석 유영모 선생의 생각이 점차 널리 회자되고 있다. 몇 년 전 세계 철학자 대회에서 제자 함석헌과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기독교 사상가로 자리매김되었으니 그럴 만도 할 것이다. 필자가 다석 사상을 접한 것은 40대 초반쯤이었다. 명예교수로 오신 김흥호 선생과 독대하는 호사를 누리며 그의 생각을 배웠다. 유불선을 통섭한 독창적인 기독교 사상가를 늦게 만난 것이 억울하여(?) 열심히 연구했던 기억이 아련하다.

다석이 남긴 유고를 풀어 만든 <다석강의>는 800쪽이 넘는 큰 책이다. 우리말 한글을 훈민(訓民)을 넘어 하늘이 준 천문(天文)이라 여겼던 선생은 여기서 무수한 뜻을 찾았다. 소리글자인 한글을 하늘 뜻을 담은 뜻글자로 재탄생시킨 것이다. 얼굴을 ‘얼’의 골짜기라 했고 ‘이마’를 임(하늘)을 마중하는 곳으로 풀었다. 인간은 누구나 하늘로부터 ‘받아 할 것’을 지녔기에 그 본성을 ‘바탈(받할)’이라 했으며 그것을 이루기 위해 이름이 있는 것이라 하였다. 이름을 이룸으로 본 것이다. 천지인 삼재(三才)를 세상을 뚫고 하늘(본성)로 오르는 고통(십자가)으로 상형화한 적도 있었다.

어디 그뿐이던가? 꽁무니와 꼭대기에 대한 풀이도 예사롭지 않다. 형이하학적 욕망을 항문을 죄듯 꼭 물어서 형이상학적인 세계에 꼭 닿아야 인간이라 한 것이다. 이를 못하면 인간은 실성, 곧 자신의 본성을 잃은 존재가 될 뿐이라 했다.

이런 다석의 독창적 사유는 기독교에 대한 동양적 이해에서 비롯했다. 그는 기독교의 고유한 대속(代贖)을 일상화시켰다. 남의 생명을 먹고사는 한 우리들 일상적 삶 자체가 대속이란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대속 이상으로 자속(自贖)에 방점을 찍었다. 제 뜻 버려 하늘 뜻 찾고자 자기 생명을 던지라 한 것이다. 다석 스스로도 일식, 일좌 등의 방식으로 예수의 길을 가고자 힘을 다했다. 그에게 종교란 믿는 것 이상이었다.

<이정배 전 감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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