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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중국은 20조, 한국은 겨우 5천억…미술시장 `우물안 개구리` 벗어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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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 세워진 로댕의 `칼레의 시민` 앞에 선 이호재 회장. [사진 제공 = 서울옥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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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살아가는데 좌우명 하나만 써주세요."

"생각해 둔 게 있나?"

"저는 제 자신을 이기는 게 큰 문제예요."

서예가 일중 김충현 선생이 그 자리에서 붓을 들었다. 먹에 붓을 찍고 호흡을 가다듬은 뒤 종이에 써 내려간 두 글자는 '극기(克己)'. 인사동에서 막 화랑을 차린 스물아홉의 청년은 그 휘호를 평생 가슴에 품었다. 스물네 살에 맨발로 미술계에 뛰어들어 불도저 같은 추진력으로 미술계에서 손꼽히는 화상이 된 이호재 가나아트·서울옥션 회장(63) 얘기다.

그의 이름 앞에는 유독 '최초'라는 수식어가 자주 등장한다. 가나아트갤러리를 1990년 처음으로 법인화했고, 1998년에는 첫 미술품 경매 회사 서울옥션을 세웠다. 2008년 서울옥션을 코스닥에 등록시켰고 그해 홍콩에 처음 진출했다. 2012년 디지털 판화 프린트베이커리도 시작해 미술계 저변을 넓혔다.

최근에는 서울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그가 2011년 무상 기증한 고려 시대 금석문(돌이나 금속에 새긴 글씨나 그림) 탁본 유물 74점과 조선 묵적 54점이 전시돼 주목을 끌고 있다. 미술계 판을 바꾸는 대한민국 대표 화상이 작품을 기증한 것도, 그 전시가 열리는 것도 상당히 이례적이다.

― 화상(畵商)이 기증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 명예욕이라기보다는 미흡한 부분을 보충해주고 싶은 마음이 크다. 사실 기증을 하고자 컬렉션을 한 적은 없다. 시장에서 소외된 것들을 모았고 훗날 그것들의 가치를 제대로 알리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 여겼을 뿐이다.

― 전시에는 서예 작품이 상당한데, 서예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 고암 이응노 선생 덕분이다. 이응노 선생을 1986년에 파리에서 만났는데 본인은 근현대 추상 화가이지만, 서예에서 영감을 받는다고 했다. 그 뒤 1990년 우연히 조선총독부 후손 집을 가게 되었는데 거기에서 우리 탁본을 보고 문화재 환수 차원에서 가져올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또 경매를 하다 보면 옛 글씨가 나오는데 가격이 형편없이 낮았다. 중국에서는 왕희지 글씨가 2010년 523억원에 팔리지 않았나. 글씨에 대한 관심이 우리도 커지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싼 것들을 하나하나 모으다가 기증하게 됐다.

― 서울시립미술관에도 200점에 달하는 민중미술 대표작을 기증해 화제가 됐는데.

▷ 2000년 서울시립미술관 설립 당시 유준상 관장이 민중 작가 작품을 사고 싶다며 연락을 해왔다. 기존 미술관과는 달리 차별화된 미술관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민중미술을 아예 무상 기증할 테니 우리 자생미술인 민중미술에 대해 보다 심도 있는 연구를 부탁드렸다.

― 실제로 민중 작가 작품도 올랐고 재조명도 활발하다.

▷ 기증 당시 오윤 판화는 30만원이었는데, 지금 5000만원으로 올랐다. 임옥상 '릴리프'나 황재형 작품은 해외에서 1억원이 넘게 거래된다.

― 제주 이중섭미술관에도 기증하지 않았나.

▷ 제주신라호텔 설립자인 이인희 고문이 1990년대 제주에서 여름마다 작가를 초대해 학술 심포지엄과 전시회를 열게 후원해주셨다. 마침 이중섭에 대해 학술 심포지엄이 열렸고 당시 서귀포시장이 이중섭 거리를 만들고자 제안했는데 제주 사람들이 이중섭이 제주도 토박이도 아니고 작품도 없다며 반대했다. 그래서 갖고 있던 작품을 기증하게 됐고 이후 미술관이 만들어졌다. 연간 28만명이 다녀간다고 하던데, 쑥스럽기도 하면서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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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색화를 비롯한 한국미술이 해외에서 조명을 받는 배경은.

▷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일례로 중국 화단에서 제일 비싼 작가는 구상 작가들인데 지금 연령대가 50·60대다. 시기도 1990년대 작품이다. 단색화 작가는 80대로 1세대가 앞서 있다. 지금 중국에서는 추상미술을 하는 사람이 50대다. 일본 추상미술도 이우환의 모노파로 시작됐다고 봐야 한다. 아시아에서 추상미술이 가장 앞선 나라가 우리나라다. 리얼리즘으로 봤을 때도 민중미술은 중국보다 앞서 있다.

― 김환기가 65억원을 돌파하며 또 최고가를 기록했다. 어디까지 갈까.

▷ 결국 100억대 작가가 될 것이라고 본다. 단색화나 김환기가 오래가는 것은 밖에서 인정받은 사례이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받쳐준다면 꺼지지 않을 것이다.

― 외국 화랑들이 안방 시장에 잇달아 진출하고 있다.

▷ 서울이 부산하고 경쟁하는 시대가 아니라 서울이 홍콩과 상하이 등 도시끼리 경쟁한다. 이제는 우물 안 개구리로 살 수 없다. 글로벌화되지 않으면 경쟁력이 없다. 국내 화랑과 경매의 대결이 아닌 한국과 세계 미술시장과의 대결을 위해 한국 미술시장이 국내총생산(GDP) 규모에 맞게 커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 세계 미술시장 규모가 64조원이고 중국 미술시장이 20조원이다. 반면 우리나라 미술시장 규모는 4000억~5000억원 수준에 불과하다. GDP 대비 세계 평균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적어도 2조원은 돼야 정상이다.

― 문화체육관광부에서 화랑업과 경매업을 규제하는 '미술시장 유통법'을 입법화하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는데.

▷ 미술시장에 대한 정부의 이해가 너무 단선적이란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시장 안에서 정리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데, 정부가 과도하게 나서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싱가포르와 홍콩을 봐라. 문화 쪽으로는 과감하게 개방하고 세금을 줄여 문화 강국이 되지 않았나. 미술품 양도세 부과 이후 고작 거둬들이는 세수가 20억원이라고 한다. 대신 우리가 잃은 건 수천억 원 규모의 시장이다.

―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직후 서울옥션을 세웠고, 금융위기 때인 2008년 홍콩에 진출했다. 위기에 오히려 사업을 확장하는 이유는.

▷ 우리 업에서 중요한 것은 고객과의 신용이다. 상대하는 고객은 늘 여유가 있다. 난 방향을 정할 때 필요하냐, 안 하냐를 따진다. 해야 할 필요가 있으면 일단 저지르고 본다. 갖고 있는 재산이 중요한 것도 아니고, 신용이나 브랜드 등 무형의 재산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화랑업이 쉬운 것 같아도 어렵고, 어려운 것 같아도 쉽다. 사업한 이후 항상 돈이 필요했고 망하기도 했다. 필요하면 가야 한다.

― 강남에 신사옥을 짓는 이유는.

▷ 평창동이 고객이 접근하는 데 문제가 있고, 강남에 '옥션블루'라는 디자인 매장을 운영하다 보니 강남 시장을 적극화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내년 하반기 완공하는데, 8층 건물로 캐릭터와 디자인 상품을 전시할 예정이다. 프리뷰도 현재 강북과 강남 비율이 8대2인데, 5대5로 강남 비중을 높일 생각이다. 홍콩에도 올해 하반기 상설 전시장을 갖출 예정이다.

― 화상이 지녀야 할 가장 큰 덕목은.

▷ 난 미술을 전공한 사람도 아니고, 이미 돼 있는 작가와 만날 수도 없었다. 40년 전 팔리는 작가는 몇몇 화랑이 다 가지고 있었다. 내가 택한 방법은 나와 살아갈 작가를 만나는 것이었다. 결국 좋은 화상은 고객에게 좋은 작품을 구해다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He is…

△1954년 서울 출생 △1983년 가나화랑 설립 △1998년 서울옥션 설립 △2008년 서울옥션 코스닥 등록·홍콩 진출 △2012년 프린트베이커리 론칭 △2014년 가나문화재단 설립

[이향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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