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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5 (화)

정책으로 밀어붙인 日 임금인상 ETF…거래 '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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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구로다 일본은행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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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행의 요구로 만들어진 '임금인상 ETF(상장지수펀드)'가 시장에서 외면 받고 있다. 일본은행 외에 매수자를 찾을 수 없다보니 일본은행의 매입마저 중단된 상태다. '임금인상 ETF'는 투자자의 수요 조사 없이 정책적으로 밀어붙인 금융상품은 흥행하기 어렵다는 점을 입증하는 반면교사의 사례가 되고 있다.

26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임금인상 ETF는 일본 증시에 현재 6개가 상장돼 있지만 거래가 거의 없는 상태다. 임금인상 ETF는 임금 인상과 설비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기업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상품으로, 2015년 말 일본은행의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제안됐다. 일본 정부가 아베노믹스를 통해 임금 인상→소비 활성화→디플레이션 탈피를 목표로 내걸면서 이에 기여하는 기업에 일본은행이 투자하겠다는 것이다. 2015년 말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정책위원들은 "(인금인상ETF가) 경제 선순환을 촉진하는 효과가 기대된다"고 밝혔다.

ETF 큰손을 자처한 일본은행이 매입 의사를 밝히자 대형 자산운용사들이 ETF 구성에 나섰다. 당시 일본은행의 ETF 전체 매입 목표액은 연간 3000억엔(약 3조원)이었다. 하루에 약 12억엔씩 매입하는 셈이다. 일본 국내외 자산운용사들은 일본은행의 기준에 맞춘 ETF를 개발해 지난해 5~6월에 6개를 상장시켰다. KDDI, 도요타자동차 등이 기초자산으로 편입돼 있다.

그러나 임금인상ETF의 순자산은 총 1700억엔으로 지난해 12월부터 답보하고 있다. 시장에서의 매입도 거의 없다. 에셋매니지먼트 원(ONE)이 상장한 임금인상ETF는 전날까지 22거래일 연속 거래시간 중 매입이 없었다. 일본은행의 매입도 끊인 상태다. 일본은행은 지난달 1일 다이와증권투자신탁위탁이 운영하는 임금인상ETF를 약 450만엔 구입한 뒤 매입 움직임이 없었다. 일본은행 동향을 살피는 도카이도쿄조사센터의 스즈키 세이이치 마켓 애널리스트는 "3월 이후 일본은행이 임금인상 ETF를 산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확히 하면 일본은행은 임금인상ETF를 매입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살 수 없는 것이다. 일본은행이 거래도 없는 ETF를 독식 매입하게 되면 주가에 왜곡이 생기게 된다. 반면 자산운용사는 위험없이 이익을 취하게 된다. 여기에 일본은행이 일반투자자와 같은 가격으로 거래하도록 한 규정이 마련되면서 일본은행의 매입 상한액이 일찍 도달했다.

자산운용사도 임금인상ETF를 포기할 수 없는 속사정이 있다. 일본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불과 반년만에 임금인상ETF를 상장시키게 된 배경에 대해 "일본은행의 매입에 맞추라는 사내 압력이 있었다"고 말했다. 일본은행은 전세계 유례없는 ETF 매입으로 일본 시장에서 유통되고 있는 ETF 총 자산 중 약 60%를 보유하고 있다. 금액으로 치면 15조엔에 달한다. ETF의 신탁보수를 0.1%로 단순계산하면 자산운용사들은 연간 150억엔을 받을 수 있다. 큰손인 일본은행을 잡으면 임금인상 ETF도 채산성이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반면 임금인상과 주가 상승은 관계가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 ETF 대형업체의 일본법인인 위즈덤트리재팬은 임금인상ETF를 만들지 않았다. 에스퍼 콜 위즈덤트리재팬 최고경영책임자(CEO)는 설비투자와 고용에 적극적인 기업은 주식이 오른다는 투자 이론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가장 먼저 상장된 임금인상ETF 2종목의 운용성과는 닛케이지수 수익률을 밑돌고 있다. 개별 기업의 인재 투자를 시계열로 나타내거나 타사와 비교하는 데이터도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콜 CEO는 "일본은행의 지시하면 개인투자자가 따라올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투자자들을 바보로 아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일본주식시장이 일본은행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진 점도 문제다. 지난해 일본은행은 ETF를 5조6870억엔 매수했다. 현재 일본주식시장에서 가장 큰손이다. 연간 닛케이지수를 약 1700포인트 올린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정인지 기자 injee@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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