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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이희용의 글로벌시대] 동포언론인단체 통합에 거는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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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외동포 신문의 효시로 꼽히는 공립신보. 창간 이듬해인 1906년 4월 14일 도산 안창호 공립협회 총회장의 활동과 연설 내용을 보도한 지면이다. [연합뉴스 자료 사진]



(서울=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 1577년 조선시대 조보(朝報)로 추정되는 문서가 최근 발견돼 화제를 모았다. 현존 최고(最古)의 신문인 독일의 라이프치거 자이퉁보다 83년 앞서는 '세계 최초의 신문'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우리나라 근대신문의 효시는 1883년 창간된 한성순보이고, 최초의 민간신문은 1896년 선보인 독립신문이다. 국내외 통틀어 가장 먼저 발간된 우리나라 근대잡지는 1896년 일본 도쿄에서 간행된 대조선인일본유학생친목회의 '친목회회보'다.

이 잡지는 우리나라 최초의 재외동포 매체이기도 하다. 일본에서는 동인지 형태의 동포언론이 다양하게 발행되다가 1930년대 들어 민족운동과 계급운동을 표방한 민중시보, 조선신문 등이 창간됐으나 일제의 탄압으로 오래가지 못했다. 현재 재일동포 신문 가운데서는 민단 계열의 동양경제일보·민단신문·통일일보와 총련 계열의 조선신보가 대표적이다.

동포신문 가운데서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동포단체 공립협회가 1905년 11월 22일 창간한 공립신보가 최초다. 안창호 초대 사장은 창간호 논설에서 국권 회복과 자주독립이라는 발행 목적을 분명히 했다. 1907년 모국의 민족지 제국신문이 재정난에 빠졌을 때 의연금을 모았고, 1908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장인환·전명운 의사가 친일 미국인 스티븐스를 저격하자 이를 대서특필했다. 1909년 2월 공립협회와 대동보국회가 국민회로 통합됨에 따라 대동공보와 합쳐져 신한민보로 개칭됐다. 신한민보는 미주와 함께 러시아 연해주와 국내에도 배포됐으나 1910년 합방 이후 일제의 탄압과 경영난 등으로 휴간을 거듭하다가 지금까지도 명맥을 잇고 있다. 미국에서는 1970년대 이후 한국일보·중앙일보·동아일보·조선일보·세계일보 등이 잇따라 미국판을 발행했고 지금도 가장 많은 동포신문이 발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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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 독립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했으며 지금까지도 미국에서 명맥을 잇고 있는 신한민보의 만평. 1905년 을사조약이 일제의 강압으로 체결됐음을 폭로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 사진]



러시아에서는 1908년 2월 26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창간된 해조신문이 최초의 한글신문이다. 최봉준이 재원을 마련하고 황성신문 사설 '시일야방성대곡'의 장지연이 참여했다. 주필 정순만은 창간호 사설에서 국권 회복과 동포 구제를 사시로 내세웠다. 그해 11월 최재형 등이 주도해 만든 대동공보에는 안중근이 기자로 활약하기도 했다. 일제강점기 연해주를 대표하는 동포신문은 선봉이었다. 1923년 3·1운동 4주년에 '三月一日'(3월1일)이라는 제호로 창간됐다가 4호부터 선봉으로 바뀌었다. 1937년 중앙아시아 강제이주 뒤에는 1938년부터 카자흐스탄에서 레닌기치라는 이름으로 발행되다가 1990년 폐간됐고 1991년부터 고려일보가 한글신문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중국에서는 1909년 9월 북간도 옌지(延吉)에서 선보인 월보가 동포언론의 원조로 꼽힌다. 이에 앞서 상하이(上海)에서 태동신보가 발간됐다는 기록이 있으나 발간 시기와 발행인에 관한 분명한 기록이 없다. 3·1운동 이후에는 룽징(龍井)의 조선독립신문 등 90여 종의 동포 매체가 중국 전역에서 발간됐다. 해방 후에도 동북 3성에서는 한인(조선족)의 공동체가 유지돼 연변일보·흑룡강신문·료녕신문·길림신문 등의 한글신문이 운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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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스탄에서 한글신문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는 고려일보(레닌기치)의 1938∼2002년 기사를 담은 CD. [연합뉴스 자료 사진]



우리나라의 재외 언론은 피와 땀으로 얼룩진 독립운동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고, 해방 후에는 대한민국의 발전사와 함께해왔다. 구한 말부터 한인촌을 형성한 중국·러시아·미국·일본은 물론이고 1960년대에 대규모로 농업 이민을 떠난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광부와 간호사들이 파견됐다가 자리 잡은 독일(서독), 이밖에 동남아·아프리카·대양주에 이르기까지 한국 동포가 모여 사는 곳마다 언론이 생겨나 한인사회 성장에 일익을 담당하고 모국 발전을 응원해왔다.

재외동포 언론인들은 2002년 11월 한국기자협회 주최 제1회 재외동포기자대회에 참석해 재외동포언론인협의회 결성에 뜻을 모은 뒤 이듬해 창립총회를 개최했다. 2005년에는 금강산에서 회의를 열어 한반도공동체 평화선언문을 채택하는가 하면 2008년에는 충남 태안의 원유 유출 사고 현장에서 기름띠 제거에 나서기도 했다. 그러다 회원 간 반목으로 세계한인언론인연합회(세계한언)와 재외동포언론인협의회(재언협)로 갈라져 2009년부터 따로 대회를 개최했다. 한인사회의 분열을 비판하고 화합을 도모해야 할 동포언론인들이 손가락질 대상이 된 것이다. 더욱이 이들 단체에서도 내홍이 불거져 법정 공방 등을 벌이다가 최근 통합에 합의하고 지난주 첫 대회를 치렀다.

두 단체는 19일 충남 천안 국학원에서 총회를 열어 통합안을 추인하고 전용창 세계한언 회장과 김소영 재언협 회장을 새로 출범하는 세계한인언론인협회(세언협)의 공동대표로 추대했다. 세언협에는 전 세계 60여 개 도시에서 발행되는 100여 개 동포매체의 언론인이 소속돼 있다. 17일에는 서울 코리아나호텔에서 개막식을 연 데 이어 18일 한국프레센터에서 각 정당의 재외동포 정책을 돋고 토론을 펼쳤으며, 20∼21일에는 강원도 강릉과 평창으로 자리를 옮겨 평창 동계올림픽 준비 상황을 취재·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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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한인론인연합회와 재외동포언론인협의회 소속 회원들이 19일 충남 천안 국학원에서 임시총회를 열어 세계한인언론인협회로 통합할 것을 결의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 사진]



동포언론은 정보 전달, 여론 형성, 환경 감시 등 언론 본연의 기능을 맡는 것 말고도 우리말 교육·보급, 동포 인권 대변, 모국과의 유대 강화, 동포 간 소통 등의 역할을 해내고 있다. 그러나 민족정체성 약화, 세대교체, 국경의 장벽 완화, 언론 환경 변화 등에 따라 경영 환경은 날로 악화하는 상황이다. 동포 2세와 3세는 동포언론보다 현지 매체에 더 익숙하며, 한국 소식이 궁금하더라도 인터넷 포털이나 SNS 등에 직접 접속하는 것이 보통이다. 시대적 추세를 되돌리기는 어렵지만 이 추세가 가속할수록 동포언론의 역할이 소중하다. 세언협 출범을 맞아 한인언론들이 환경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데 전기를 마련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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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ey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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