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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매거진M] 최민식, '특별시민' 속 정치가에게 "참, 애~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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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대 대통령선거(5월 9일)를 앞두고 대한민국 선거의 민낯을 까발리는 정치영화가 찾아온다. 박인제 감독의 ‘특별시민’( 26일 개봉)이다. 전작 ‘모비딕’(2011)에서 실제 정보기관의 민간인 사찰 사건을 다뤘던 박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 “인간의 끈질긴 권력욕이 가장 잘 드러나는 이벤트, 선거”를 집중적으로 파헤친다. 주무대는 서울특별시 시장 선거다.

중앙일보

사진=전소윤(STUDIO 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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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들이 믿게끔 만드는 거 그게 바로 선거야.”


“선거는 똥물에서 진주 꺼내기야. 손에 똥 안 묻히고 진주 꺼낼 수 있겠어?”


선거에 대한 주옥같은(?) 정의가 난무하는 이 정치 쇼를 쥐락펴락하는 건 3선에 도전하는 현역 서울시장 변종구다. 그 어느 때보다 속을 들여다보기 힘든 정치 9단의 얼굴로 돌아온 최민식에게 물었다. 때론 마약처럼 사람을 미치게 중독시키는 그것, 권력이란 대체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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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전소윤(STUDIO 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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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특별시민’ 예고편 보고 놀랐다. 의상까지 완벽히 갖추고, 랩 공연하는 장면이 있더라.

A) 예, 브롸더. 껄껄. 같이 출연한 ‘다이나믹 듀오’ 최자, 개코씨가 랩 지도를 해줬는데 즐거웠다. 변종구 캐릭터를 살려서 랩 마지막에 일부러 트로트풍을 가미했다.

Q) 변종구는 어떤 사람인가.

A) 뼛속까지 욕망이 충천한 자다. 서울시장 3선에 성공하겠다는 목표가 워낙 분명하고, 그것을 발판으로 대권까지 넘본다. 창작자들은 바른 생활 사나이보다, 뭔가 인간이기 때문에 굴절되고 비뚤어진 캐릭터에 끌린다. 무지몽매 욕망을 좇은 후에 찾아오는 허망감, 자괴감에 더 많이 공감한다. 그런 모습들이 아주 선명하게 드러나는 직업군이 정치인 아닌가. 지금까지 봐 온 정치가들의 총체적 속성들을 종합적으로 발췌해서 변종구란 인물에 최대한 밀착하고 싶었다.

Q) 한국에 본격적으로 정치·선거를 다룬 영화가 부족하다고 느껴서, ‘특별시민’ 출연을 결심했다고.

A) 외국에서야 정치영화가 흔하지만, 한국은 드물다. 강제규 감독이 각본을 쓴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1991, 강우석 감독) 정도다. 아무래도 군사정권을 거치면서 (영화에 정치를) 다루기가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상업영화는 막대한 자금을 투자받아 사회적인 시스템 속에서 만들어지지 않나. ‘특별시민’도 아예 부담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그런데 만드는 사람들은 그런 부담감을 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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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전소윤(STUDIO 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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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정치인 역이 처음은 아니다.

A) TV 드라마 ‘제4공화국’(1995~1996, MBC)에서 어린 나이에 주제넘게 김대중 전 대통령 역을 맡았다. 방송국 보도국에서 자료 화면을 받아 열심히 공부했던 기억이 난다. 이청준 소설 원작의 한국전쟁 특집극 ‘뜨거운 강’(1993, MBC)에선 정치 깡패로 시작해 정치인이 되는 역할을 했다.

Q)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1992, 박종원 감독)에서 연기한 김 선생도 떠오른다. 강직한 교사였던 그는 영화 말미 번지르르한 국회의원이 돼서 상갓집에 금배지를 달고 나타난다.

A) 맞다. 사실 원작 소설에선 김선생이 상갓집에 안 나타나고, 학생들의 기억 속에 아련하게 남는다. 원작자 이문열 작가 댁에 박종원 감독과 함께 찾아가 나눈 대화가 지금도 기억난다. 새로운 결말에 대해 허락을 구하자, 이 작가가 ‘그렇게 되면 너무 희망 없이 끝나는 게 아니냐’고 했다. 그때 박 감독 말씀이 인상적이었다. ‘다 그렇지 않냐. 4.19 혁명을 이끌었던 사람이 군부 세력이 주도한 정권의 나팔수가 되기도 한다.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자.’ 결국 지금의 영화 결말을 관철시켰다.

Q) 변종구는 맨손으로 정계에 입문한 입지전적 인물이다. ‘특별시민’이 처음 기획된 게 3년 전이라 들었는데, 그의 선거 기호(1번)와 소속 정당 로고 등이 여당이었던 새누리당을 연상시키더라.

A) 현실 정치의 특정 인물을 참고하진 않았다. 어떤 정치가의 표정이나 톤, 걸어온 궤적을 탐구하다 보면 결국 그 사람의 카피가 돼버린다. 그럼 재미없다. 영화 자체도 객관성을 잃고 쓸데없는 오해를 살 수 있다. 특정인을 지적하기보단, 우리나라의 개혁돼야 할 정치 풍토에 대해 말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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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시민' 스틸 영화사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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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공장 노동자 출신 변종구가 서울시장직을 연임하기까지의 전사만 해도, 영화 한 편 감이다. 이번 영화 속엔 아주 간략히만 등장한다고.

A) 지금에 이르기까지 변종구의 집요함과 집착을 한정된 상영 시간 안에 표현하는 게 고스란히 내 과제였다. 시장에서 어묵을 집어먹으며 시민들과 악수하는 제스처, 참모들을 대할 때의 눈빛만 봐도 ‘이 사람이 정치판에서 ‘짬밥’이 되는구나. 산전수전 공중전 다 겪어 봤구나’ 하는 게 느껴져야 했다. 변종구를 내 안에 속속들이 체화하는 수밖에 없었다. 잘 해내고 싶은 욕심만큼 부담도 컸다.

Q) 변종구는 유권자에게 인기 있는 시장이지만, 권력을 위해 암암리에 범죄도 불사한다. 두 얼굴을 오가며 연기 톤을 어떻게 조절했나.

A) 세월호 참사 때 유가족이 모인 강당에 주책없이 의전용 고급 소파를 갖다 놓고 앉아 있던 정치가가 있었다. 그런 것도 참 꼴불견이고 있어선 안 되는 일이지만, 변종구는 또 다른 타입이다. 그는 겉으로 유가족을 위로하는 척하지만, 참모에겐 ‘저기 징징거리는 애들 사탕 안 주면 침 뱉고 돌 던진다’고 말한다. 그런 이중성을 너무 작위적으로 부각하지 않되, 그때그때 시퀀스에 충실히 연기해, 두 얼굴이 자연스럽게 배어나도록 했다.

Q) 라이벌 후보들과 TV 토론회에 출연하는 장면을 거의 애드리브로 촬영했다고.

A) 극 중 연설문 일부도 내가 직접 썼다. 연설문을 읽는 5분 안에 변종구란 사람이 모두 녹아나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그가 불행한 사건에 자신의 가족을 이용하는 장면도 원래 시나리오에는 되게 심플하게 묘사돼 있었다. 박인제 감독에게 그 장면에서 변종구란 정치인이 가족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확실한 ‘자국’을 내자고 제안했다. 권력이 마약 같다고 하잖나. 그가 점점 더 권력에 중독돼 가는 모습이 이 장면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Q) 독종인 만큼, 그의 인간적인 약점이 드러나는 장면의 임팩트도 크겠.

A) 점쟁이를 찾아가는 대목이 아주 코미디다. 관록의 정치가가 감추고 있던 나약한 민낯을 아주 유머러스하게 비꽈서 보여준다. 점쟁이가 한마디 달래주자, 변종구는 그 말을 철썩 같이 믿고 눈물이 글썽글썽한다. 속으로 ‘아, 내가 신(神)에게 인정받았구나’ 하고 북받쳤을 것이다. 한 도시를 이끄는 시장이자, 입법 활동을 하는 국회의원, 정치가가 말이다. 이게 얼마나 코미디인가.

Q) 변종구가 실존 정치가라면, 그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나.

A) 참, 애~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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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시민' 스틸 영화사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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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남자 영화’에 주로 출연하다가 ‘특별시민’에서 오랜만에 많은 여성 후배 배우들과 호흡을 맞췄다.

A) 방송기자 역의 문소리는 내가 연극 공연까지 찾아가서 출연하자고 꼬셨다. 분량이 많지 않지만 좀 중량감 있는 믿음직스러운 배우가 해주길 바랐다. 변종구 캠프 청년혁신위원장 박경 역의 심은경과 또 다른 시장 후보 양진주(라미란) 측 선거 전문가 임민선 역의 류혜영은 촬영하며 좀 힘들어했다. 참모가 후보와 어떤 뉘앙스로 대화해야 하는지, 이런 정치판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몰랐던 세상을 갑자기 이해하려고 하니 부대끼는 게 당연하다. 그래도 이 친구들이 나뿐 아니라 박 감독, 제작진과 이야기를 많이 나누면서 끝까지 해내려고 하는 모습이 아주 기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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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시민' 스틸 영화사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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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지금껏 어떤 조직의 장(長)을 맡아본 적이 있나.

A) 초등학교 때 반장 많이 했다.

Q) 갑자기 허리가 쭉 펴졌다(웃음).

A) 내가 초등학교 때는 괜찮았다. 껄껄. 애들하고 재미있게 잘 놀았다. 장난이 심해서 여자애들은 나를 별로 안 좋아했다. 근데 공부도 제법 하고, 운동도 잘했거든. 1970년대에는 담임 선생님이 반장을 보통 지명하는 분위기여서 내가 자주 했던 것 같다. 5학년 때 담임선생님 덕에 처음 반장 선거를 해봤다. 내가 뽑히긴 했지만 아주 강력한 라이벌이 있어서 위기감을 느꼈던 게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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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전소윤(STUDIO 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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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가장 인상적인 선거의 기억은.

A) 김대중 대통령이 선출된 제15대 대선(1997)은 지금도 생생하다. 누가 알아주건 말건 내 권리를 행사한다는 뿌듯함이 있었다. 아침에 투표소 앞에 쫙 줄을 서잖나. ‘이 사람들의 표 한 장, 한 장이 모여 민주주의가 이뤄지는구나’ 싶어 뭉클했다.

Q) 조기 대선을 앞두고 ‘특별시민’이 개봉하게 됐다. 투표하기 전 꼭 생각해 보라고, 관객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A) 대의 민주주의의 첫째는 선거다. 요즘 특히 절실히 느낀다. 이 영화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각자 추구하는 가치관, 이념이 다르지만 선거에서 잊지 말아야 할 교과서적인 룰은 좋은 지도자, 일꾼을 뽑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이 건강하려면 혈액 순환이 잘돼야 하듯이, 정치도 서로 말이 잘 통해야 한다. 개인 사이에도 약속을 안 지키면 간혹 상대에게 상처가 되거나 경우에 따라 심각해지기도 한다. 정치인의 말은 더 중요하다. 나는 선거 때 후보들이 과거 얼마나 진실하게 의정 활동을 했는지, 동료나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려 노력했는지를 본다. 그것을 전제로 눈을 본다. 배우는 직업적으로 관찰을 많이 하잖나. TV 토론이나 인터뷰할 때 그들의 눈빛을 보면 받는 느낌이 있다.

Q) 정당보다 사람을 본다는 말인가.

A) 그렇다. 차라리 국회의원이 봉사직이면 어떨까, 생각도 해봤다. 따로 자기 직업을 가지면서, 정치인으로서 별다른 이권 없이 진짜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다. 그러면 권력에 도취된 사람들과 권력 남용을 허용하는 우리 사회 시스템도 달라지지 않을까. 선거도 지금처럼 과열되지 않을 것이다. 지금껏 우리는 동맥 경화처럼 꽉 막혀서 서로 소통하지 못하고 싸움질만 하는 정치계의 비생산적인 에너지 소모를 너무 많이 봐 왔잖나. 물론 최근 우리나라는 큰 변화를 이뤘다. 그래도 이번 대선은 신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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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전소윤(STUDIO 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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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차기작은 정지우 감독과 ‘해피엔드’(1999) 이후 18년 만에 뭉친 영화 ‘침묵’(가제)이다. 지난 2월 태국에서 촬영을 마쳤다고.

A) 어느덧 정 감독이 50대더라. ‘해피엔드’ 때도 자기 논리가 아주 정확한 친구였는데, 그것이 더 견고해지고, 포용력과 이해의 폭이 더 깊고 넓어진 걸 느꼈다. 영화 하는 사람에겐 그게 참 중요하다. 사람에 대한 이해, 세상에 대한 이해 말이다. 얼마 전 둘이 소주 한 잔 하면서 ‘너랑 나랑 오래간만에 몸 좀 풀었는데, 한 작품 더 하면 진짜 제대로 할 것 같다’는 얘길 했다. 뭐 하나 모사를 꾸며봐야지(웃음).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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