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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프랑스 ‘구체제 청산’ 여론에 거대 양당 나란히 1차 탈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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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랑드 대통령, 마크롱 지지 공식 선언

예측된 패배여도 막상 닥치면 더없이 고통스럽다. 50여년 동안 정권을 주고 받은 프랑스 거대 양당이 23일(현지시간) 대선 1차 투표에서 나란히 탈락하면서 비참한 처지로 내몰렸다.

이날 투표에서 프랑수아 피용 공화당 후보와 브누아 아몽 사회당 후보는 둘이 합쳐 약 26.3% 득표에 머물렀다. 공화당이 계승해 온 중도 우파 진영이 대선 결선에 후보를 올리지 못한 것은 1958년 제5공화국 출범 이후 처음이다. 외신들은 일제히 “현대 프랑스 정당의 치욕(영국 가디언)” ”프랑스 엘리트의 굴욕(더타임스)”이라며 변화를 주목하고 있다.

더타임스는 특히 프랑스 유권자들이 새로운 정치 지형을 만들어가고 있다며 24일 ‘데가지즘(Degagisme)’이라는 말을 꺼내 들었다. ‘철수하다(disengage)’를 어원으로 한 데가지즘은 구체제의 청산을 뜻하는 신조어다. 2011년 ‘아랍의 봄’ 당시 튀니지 시위대가 독재자 벤 알리의 축출을 요구하며 사용하기 시작해 이후 이집트에서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는 구호로도 동원됐다. 1차 투표서 19.6%의 득표율을 올린 극좌 장뤽 멜랑숑 후보도 프랑스가 구체제 청산 필요성의 고통에 처해있다면서 데가지즘을 언급했다.

적폐 청산이 거론될 만큼 이번 투표 전 기성 정치권에 대한 유권자들의 실망은 극에 달했다. 30여년간 지속된 고실업과 저성장, 프랑스의 대외 영향력 약화 속에 대선이 시작됐으나 공화당 피용 후보의 세비횡령 의혹 등 스캔들로 얼룩지면서 유권자들의 정치적 냉소가 극심해졌다. 결국 좌파 유권자는 유럽연합(EU) 재협상을 제외하곤 유사 공약을 내세운 멜랑숑 후보에게로 쏠렸고, 우파 표도 역시 중도 에마뉘엘 마크롱 후보와 극우 마린 르펜 후보로 빠져 나갔다.

양당은 극우 집권을 막는 것으로 만회에 나섰다. 집권 사회당 소속인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24일 TV연설을 통해 “극우세력은 일부 시민에게 낙인을 찍고 국가를 분열시킬 것”이라며 마크롱 지지를 공식 선언했다. 일찍이 마크롱 후보에 사회당 유력 인물들의 지지를 빼앗겨 공세를 퍼부었던 아몽 전 장관도 결과 발표 후 “정적(마크롱 지칭)과 공화국의 적(르펜)은 확실히 구분해야 한다. 지금은 매우 심각한 상황”이라며 지지자들에게 마크롱 지원을 독려했다. 피용 전 총리 역시 출구조사 발표 직후 마크롱을 지지하겠다고 밝혔다.

김정원 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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