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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30 (일)

우리가 못 박은 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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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권여선의 인간발견] <맨체스터 바이 더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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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맨체스터 바이 더 씨>. 홀리가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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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체스터 바이 더 씨>는 비극적인 일을 당한 남자의 상처에 관한 영화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마음의 상처를 입은 사람이 회복되었는지 여부는 지금 그가 어떤 삶을 사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회복되지 못한 사람은 현재를 살지 못한다. 현재는 그에게 아무 의미도 없다. 그는 상처가 발생한 과거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하고 그 시간, 그 장소에 머물러 있다. 누군가 거기서 그를 꺼내주지 않는 한 영원히.

보스턴에서 건물 관리인으로 일하는 리 챈들러는 형이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 고향인 바닷가 맨체스터로 돌아온다. 타지에 살던 주인공이 가족의 병이나 사망으로 고향에 돌아와 겪는 크고 작은 사건들, 그와 나란히 진행되는 과거 회상의 형식은 소설에서도 빈번하게 활용되는데, 이때 핵심 포인트는 그가 왜 고향을 떠났는가이다. 과거에 리는 실수로 참혹한 사고를 냈고 그로 인해 가족들은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그러나 가장 치명상을 입은 피해자는 바로 그 자신이다. 가해자인 그는 용서를 받아야 하고, 피해자인 그는 위로를 받아야 한다. 그래야 괜찮아지는데, 그는 결코 괜찮아지고 싶지가 않다. 괜찮음을 용납할 수가 없다. 그는 삶을 원하지 않는다. 가해자인 자신을 총으로 쏴 죽이려 하고, 피해자인 자신을 세 개의 액자 속에 봉인해 버린다. 고향을 떠난 그는 보스턴에서 아무와도 관계를 맺지 않고 홀로 세 개의 액자와 함께 허깨비처럼 산다. 그의 말투엔 억양이 없고 그의 얼굴엔 표정이 없다. 그의 내면은 완전히 불타버린 폐허이다.

고향인 맨체스터에 돌아온 리를 맞은 것은 형의 죽음이다. 그는 한시바삐 형의 장례를 마치고 고향을 떠나려 하지만 뜻밖의 일들에 발목이 잡힌다. 땅이 얼어붙어 묘지를 팔 수 없어 봄까지 장례를 미뤄야 하고, 무엇보다 형이 유언장에 자기 아들의 후견인으로 그를 지정해 놓았기 때문이다. 리는 경악하여 후견인이 되기를 거부한다. 영화는 리가 조카의 후견인이 될 수 있는지를 묻는 시험의 과정이다. 그런 의미에서 리가 회상하는 첫 장면이 조카와의 바다낚시 장면이고 마지막 장면도 그러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그것은 죽은 형의 깊은 뜻을 암시하고 있다. 형은 리를 참혹한 사고가 발생하기 이전의 상태로 돌려보내고 싶어 했다. 자기 아들인 패트릭이 리를 이전의 관계, 이전의 삶으로 이어주는 고리가 되리라고 생각했다. 형은 알고 있었다. 치유의 완성은 끊어진 삶의 연속성을 회복하는 일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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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우리가 한 짓은 정반대였다. 세월호 유족들이 그날의 참사의 시간, 그 장소에서 빠져나와 예전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기는커녕, 생업을 전폐하고 밥을 굶고 거리를 헤매며 오로지 세월호 진상규명에만 매달리도록 만들었다. 죽은 가족들을 떠나보내고 싶어도 절대 떠나보낼 수 없도록 우리가 그들을 세월호에 못박아버렸다. 어떤 대선후보는 세월호 3주기 추모식에 불참하면서 “3년을 해먹었으면 됐다”고 말했다 한다. 그렇게 말해선 안 된다. 다르게 말해야 한다. 3년을 못박아두었으면 됐다고, 이제 그만 그들을 내려주어야 한다고, 삶과 죽음 사이에 끼인 그들을 빼내 삶 쪽으로, 우리 쪽으로 품어 안아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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