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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온실가스 배출권' 다음 해로 넘기는 기업, 불이익 준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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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실(溫室)가스 감축을 위해 2015년 도입된 '배출권 거래제'가 시행 3년째에 접어들지만, 여전히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헛바퀴를 돌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업들은 "정부가 너무 서둘렀다"는 볼멘소리를 하지만, 정부는 "보완할 부분은 보완해서 속도를 낼 수 있도록 하겠다"는 입장이다.

배출권 거래제는 1992년 192개국이 참여한 '기후변화협약'을 바탕으로 1997년 일본 교토에서 도입이 결정됐다. 우리나라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세계 7위 수준으로, 1990년 2억9230만t, 2000년 4억9880만t, 2013년 6억9450만t으로 빠르게 늘어나는 중이다.

헛바퀴 도는 거래제, 배출량 많은 기업 부담 늘어

배출권 거래제는 정부의 예상과 달리 거래가 저조한 것이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힌다. 2015년 기준으로 배출권을 받은 522개 기업 중 283개는 1550만t의 배출권을 쓰지 않고 남겼다. 남은 배출권을 배출권이 모자란 기업에 팔아야 거래가 이뤄질 텐데 팔겠다고 내놓은 건 12% 정도인 190만t에 그쳤다. 배출권이 부족한 239개 기업이 필요로 하는 1840만t에 턱없이 모자랐다. 정부 관계자들은 "배출권이 남아도는 기업들이 돌발 상황 등을 대비해 남는 배출권을 팔지 않고 계속 보유하려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공급이 모자라니 가격이 치솟았다. 배출량이 많아 배출권을 사다 써야 하는 기업들의 부담이 정부가 예상했던 것보다 커진다는 뜻이다. 2015년 1t당 평균 가격은 1만1774원이었지만 지난해 1만6737원으로 올랐고, 올해 2월엔 2만4300원으로 전년 대비 45%나 급등했다. 석유화학, 시멘트 등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업종은 배출권 가격 상승으로 난감해졌다. 시장에 나온 배출권 가격이 높아 시장에서 사지 못하고 다음 해에 사용해야 할 할당 배출권을 당겨서 쓰는 방법으로 버티고 있는 중이다.

정부, "배출권 거래 시장 활성화 위해 다양한 방안"

정부는 이런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쓰지 않은 온실가스 배출권을 다음 해로 과도하게 이월하는 기업들에 불이익을 주겠다"는 대책까지 발표했다. 남는 배출권을 팔지 않고, 다음 해로 과도하게 이월하는 기업들을 제재하겠다는 것이다. 1차 계획 기간(2015~2017년)에 할당된 배출권의 10%에 2만t을 더한 양을 넘겨서 이월할 경우 초과분만큼을 2차 계획 기간(2018~2020년) 할당량에서 차감키로 했다. 예컨대, 연간 할당량이 100만t인 기업은 10%인 10만t에다 2만t을 더한 12만t까지만 다음 해로 이월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만약 20만t을 이월한다면 8만t은 2차 계획 기간 할당량에서 차감하게 된다. 남는 배출권을 최대한 시장에 풀도록 해서 가격을 낮추려는 것이다.

동시에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기업들이 다음 해 할당량을 당겨 쓸 수 있는 양도 줄이기로 했다. 지금은 다음 연도 배출권의 최대 20%까지 당겨 쓸 수 있지만 2018년부터는 15%까지만 당겨 쓸 수 있다.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 시장을 키우려는 것이다. 정부는 이런 대책으로도 부족할 경우 정부가 보유한 예비분 1430만t을 시장에 풀기로 했다.

단순한 매매 외에 스와프(Swap·교환) 등 다양한 형태의 배출권 거래도 활성화시킬 방침이다. 또 내년부터는 해외에서 사들인 배출권을 국내에서 거래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배출권 경매 등도 도입할 계획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목표를 달성하면서, 배출권 가격을 낮춰서 기업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다양한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2018년부터 감축 목표 더 높아져

내년부터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상향 조정될 것으로 보여 배출권 시장 활성화가 더 시급해졌다. 우리나라는 2015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UN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2030년 배출 전망치에서 37%를 줄이겠다"고 했다. 이럴 경우 2030년 온실가스 배출량을 2000년대 중반 수준인 5억3587만8000t으로 줄여야 한다.

또 내년부터는 기업들이 배정받는 배출권의 3%는 정부에 돈을 내고 구입해야 한다. 올해까지는 무료였다. 산업계에서는 매년 4조5000억원가량이 추가로 들어간다고 전망한다.

기업들은 부담스럽다는 표정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 '녹색 성장'을 강조하면서 온실가스 감축 관련 대책이 글로벌 스탠더드보다 강화됐다고 지적한다. "미국보다 더 빠르게 감축할 필요가 있느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실제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 "기후행동계획과 같은 해롭고 불필요한 정책을 없애겠다"고 말했다. 미국 기업들이 온실가스 감축에 따른 부담에서 벗어나도록 해서 수익과 고용을 늘리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는 각국 정부가 매년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 배출 총량을 정한 뒤 기업별로 배출권을 배정해주고, 모자라는 기업은 남는 기업에서 사서 쓰도록 하는 제도다. 남거나 모자란 배출권 거래는 한국거래소가 개설한 배출권 거래소에서 사고팔 수 있다.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굴뚝 산업'에 배출권 구입 부담을 지워서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도록 유도하려는 것인데 우리나라에서는 거래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아 정부가 고민에 빠졌다.

윤주헌 기자(calli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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