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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9 (일)

“어제 퇴근했다가 출근하는 기분…8년 만이지만 기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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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직한 쌍용차 해고 노동자 고동민·김정운씨

경향신문

8년 만에 복직하는 쌍용차 해고노동자 고동민씨(오른쪽)가 지난 20일 경기 평택시 쌍용차 공장 앞 노조 사무실에서 김정운씨를 만났다. 김씨는 지난해 2월 먼저 복직해 현재 ‘혁신팀’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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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퇴근했다가 오늘 출근하는 느낌이에요. 단기 기억상실이 일어난 것처럼요. 8년 만에 다시 공장에 들어가는 건데, 기쁘지가 않네요.”

쌍용차 해고노동자 고동민씨(42)는 공장에 있던 날보다 거리를 떠돈 날이 더 많다. 입사 6년째인 2009년 해고당했다. 24일 고씨는 다시 공장으로 돌아간다. 8년 만이다. 기쁠 줄 알았지만 마음이 마냥 무겁다. 공장 밖에 아직 128명의 해고자가 남아 있다.

2015년 12월 쌍용차 사측과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기업노조 3자는 정리해고자 150여명과 희망퇴직자 1600명을 “2017년까지 순차적으로 복직시킨다”고 합의했다. 지난해 2월 해고자 18명이 처음으로 출근버스를 탔다. 신차 ‘G4렉스턴’ 출시를 앞두고 결정된 이번 2차 복직에는 고씨를 포함, 해고자 19명이 명단에 올랐다.

지난 20일 경기 평택 쌍용차 공장 앞 노조 사무실에서 만난 고씨는 “면접을 볼 때까지만 해도 제가 (복직)될 줄은 몰랐어요. 밖에서 이런저런 활동을 하도 많이 해서…. 그래도 많은 분들에게 분에 넘치는 축하를 받았다”고 말했다. 고씨는 공장에 들어오기 전 연극 활동을 했다. 노조 대외협력실장, 사무국장 등을 맡으며 쌍용차 문제를 사회에 알리는 일을 해왔다. 주변 사람들은 고씨를 ‘뚱뚱하고 웃기는 친구’로 기억하지만, 그와 가족들에게 남은 해고의 상흔은 깊다. 아이들은 이른 나이에 ‘어른’이 됐다. “아이들이 부모 사정을 아니까 절대 떼를 쓰지 않아요. 요구하지 않는 아이들의 아버지로 살게 된 거, 그게 어렵죠.”

“기분 좋을 사람이 어딨어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분이죠. 누군 돌아가고, 누군 남아서 배웅해 주고.” 지난해 먼저 공장에 돌아간 김정운씨(47)가 말했다. 김씨는 복직 뒤 1년간 ‘혁신팀’에서 일했다. 일손 빈 공정에 파견되는 일종의 사고대응반이다. “팀 특성상 짧으면 2주 길면 두 달에 한 번 부서를 옮기는데, 해당 부서에서는 ‘김정운이 온다’며 벽이 쳐져요. 7년간 밖에서 복직투쟁한 꼴통으로 인식돼 있는 거야. 이런 선입견을 깨고 현장에 융화되는 게 어려웠죠.”

두 사람은 복직 합의 당시 교섭 실무자였다. 김씨가 교섭단 대표를, 고씨가 간사를 맡았다. 복직 시점을 못박지 못하는 등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고 했다. 하지만 사내하청업체 소속이던 비정규직 6명의 정규직 전환을 명시하고, 이들을 지난해 정규직 해고자보다 앞서 복직시킨 점은 큰 성과였다. “내가 먼저 돌아간 다음 ‘비정규직 너희는 법원에서 (근로자지위확인소송) 승소해서 돌아와’라고 말할 수 있어요? 사측에서도 ‘정운아, 비정규직은 그냥 털고 가자’는 압박이 많이 들어왔어요. 하지만 연대의 원칙만큼은 훼손하지 말자는 거였죠.”

쌍용차 사태가 벌어진 2009년 이후 세 번째 정권이 들어서려는 참이다. 하지만 노동과 해고 문제를 터놓고 이야기할 만한 사회적 토양은 아직 무르익지 않았다. 고씨는 “각 정당의 외교나 국방, 경제 부문 공약은 아주 구체적이에요. 하지만 최저임금 1만원을 ‘임기 내 달성하겠다’는 등 노동 부문에선 구체적 공약을 보지 못했어요. 많은 노동자들이 고공농성 하고 굶고 다치는데, 왜 정치권에서는 아직도 노동 문제가 불온시되는 걸까”라고 말했다.

쌍용차지부 사무실 벽에는 낡고 해진 펼침막이 붙어 있다. 빛바랜 글자가 적혀 있다. ‘왼손과 오른손이 결국 한몸이듯, 한몸처럼 우리 만나요.’ 아직은 갈 길이 멀다. 해고자 128명 중엔 정년퇴직이 임박한 사람도 적지 않다. 그동안 해고자 28명이 세상을 떠났고, 2009년 77일간의 옥쇄파업 당시 경찰이 노조에 건 손배소 11억원도 그대로 남아 있다. 쌍용차 사태가 아직 ‘현재진행형’인 이유다. 김씨는 “쌍용차를 통해서 해고가 가져오는 아픔을 사회적으로 뼈저리게 느꼈지 않나. 우리 목표만 놓고 보면 전원 복직이지만, 쌍용차 사태 같은 크나큰 아픔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하는 방안을 제도적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글 ·사진 김상범 기자 ksb123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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