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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법원 "해양경비함, 예상 벗어난 어선 항해도 대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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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뉴시스】구용희 기자 = 해양경비함정은 어선의 출현·진행속도·항로 등을 미리 알아차려 예상을 벗어난 항해에도 대비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는 판결이 나왔다.

광주지법 제2행정부(부장판사 이정훈)는 국민안전처 서해해양경비안전본부 A해양경비안전서 B함장이 서해해양경비안전본부장을 상대로 제기한 감봉처분취소소송에서 B함장의 청구를 기각했다고 23일 밝혔다.

A해양경비안전서장은 2016년 3월31일 소속 C경비함을 같은 해 4월3일 오전 9시부터 다음날 오전 9시까지 상황대기 임무를 수행할 함정으로 지정함과 동시에 B함장에게 거점경비를 지시했다.

당일 승무원 22명을 태우고 출항한 C경비함은 서해바다 한 지점에 도착했다. B함장은 항해당직관에게 '안전해역으로 이동해 표류경비를 하라'고 지시한 뒤 조타실을 벗어났다.

거점경비란 야간 또는 치안수요가 적은 시간대 함정장의 판단에 따라 긴급출동이 가능하고, 사주경계가 용이한 곳에서 대기와 순찰을 반복적으로 실시하는 경비방법을 말한다.

표류경비는 해양 이동물체를 감시하기 위해 우범해역 등 임의의 해양을 선정해 기관을 정지시키고 표류하면서 실시하는 경비방법을 이른다.

함장의 지시에 따라 항해당직관은 엔진을 정지하고 발전기를 구동한 상태로 조류 등 외력에 의해 선수방위 약 125도, 대지속력 0.7노트로 표류하면서 대기했다. 5분 뒤에는 엔진을 끈 채 대기했다.

항해당직관은 같은 날 오전 11시35분께 함정 후미에서 접근하는 135t 급 어선을 발견하고 무선전화(VHF)로 해당 어선을 호출했지만 응답을 받지 못했다.

잠시 뒤 당직자들은 충돌할 상황에 놓여 있음을 확인, 주기관의 시동을 걸도록 지시하는 한편 어선에 경고신호를 보냈다. 다른 선원들은 조타실 밖으로 나가 수신호를 보냈지만 어선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급기야 오전 11시47분께 이 어선 앞부분과 경비함 뒷부분이 충돌, 해경 1명이 부상을 입었다. 함정도 파손돼 이후 10일 동안 수리해야 했다.

이에 서해해양경비안전본부는 거점경비 지시를 이행하지 않고 표류경비를 지시한 뒤 조타실을 이탈한 점을 들어 B함장에게 감봉 1개월의 징계처분을 내렸다.

표류경비를 하기로 했다면 긴급상황에 대응할 수 있도록 엔진을 정지하거나 엔진을 끄더라도 언제든지 엔진을 시동, 이동할 수 있는 태세를 갖출 수 있도록 근무자들을 지휘·감독하지 않은 점도 징계 사유에 포함됐다.

또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을 인지했음에도 조타실로 돌아가지 않고 함미로 이동, 어선을 향해 수신호를 함으로써 경비함의 지휘 체계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도록 했다는 점도 지적됐다.

B함장은 '해경은 실무적으로 관할 해역에 거점경비 부표가 설치돼 있지 않은 경우 엔진을 끈 채 표류하며 거점경비를 한다. 지시를 위반한 사실이 없다. 조사과정에 표류경비와 거점경비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해 사고 당시 표류경비를 하고 있었다 진술한 것 뿐'이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또 '당시 사고 방지와 수습을 위해 함정 함미에서 지휘했다. 조타실보다는 함미에서 지휘하는 것이 효과적이었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오랜 기간의 근무경력 등으로 미뤄 사고 당일 B함장이 표류경비와 거점경비의 개념을 혼동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사고 당일 거점경비를 하라는 지시를 받은 B함장으로서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지시에 따를 의무가 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B함장이 설령 표류경비를 하기로 했더라도 다시 시동을 거는 데 3분에서 5분이 소요돼 비상상황에 대한 즉각적인 대처가 어려운 만큼 주위상황과 다른 선박과의 충돌위험성에 대비한 모든 수단을 이용, 적절한 경계를 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B함장은 사고 당일 항해당직관에게 표류경비를 지시하고 조타실을 이탈, 사관실에 입실한 뒤 사고가 발생할 때까지 조타실로 돌아오지 않았다. 항해당직자들에 대해 구체적인 업무지시를 하지도 않았다"며 B함장의 책임이 가볍지 않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 사고는 어선이 경계를 소홀히 해 진로 전방에서 엔진을 정지한 상태로 표류하고 있던 경비함을 발견하지 못해 발생한 것으로 조사됐다. 해양안전심판원도 어선에 95%, 경비함에 5%의 과실이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B함장에게 민사상의 불법행위 책임을 지울 수는 없다 하더라도 경비함정의 경찰 직무와 관련, 어선의 출현·진행속도·항로 등을 미리 알아차려 예상을 벗어난 항해에도 대비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고 설명했다.

또 "경계임무를 소홀히 해 충돌 당한 것 자체가 경비임무에 실패한 것"이라며 B함장의 청구를 기각했다.

persevere9@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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