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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실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안희정 충남지사에 대해 잘 몰랐다. 내가 아는 거라곤, 날카롭고 늘 심각해 보이는 인상, 자기 지역에서 맡은 일만 열심히 하는 모범생 이미지 정도였다. 그런 그와 사진을 찍기 전 스튜디오에서 점심식사를 함께 했다. 그는 밥을 배달하러 온 이에게, “내려 놓으시면 저희가 알아서 차려 먹을게요”라고 말한 뒤 직접 배달 음식들을 셋팅 했다. 보좌관들은 그런 모습이 당연한 듯 행동했다. 밥을 먹으며 자연스러운 대화가 오갔다.
“얼마 전에 중학생인 둘째 아들에게 ‘아빠와 대화할 때는 공손하고 온화한 표정, 말투로 얘기하라’고 했더니 ‘뭐가 대화고, 뭐가 말대꾸냐’고 묻더군요. 생각해 보니 나를 압박하는 사람한테 온화한 얼굴로 대하는 게 내 나이에도 힘듭니다. 그걸 아들한테 강요한 겁니다. 대들 수 있는 권리를 함께 부여하는 것이 진정한 대화라는 것을 아들 덕에 깨달았죠.”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의 정치관 바탕에 ‘역지사지(易地思之, 입장을 바꿔 생각함)’가 깔려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나이가 들수록 성철스님의 초월적 세계관이 마음 안으로 들어온다고 했다. 그가 최근에 보여주는 ‘포용적 정치 스타일’에는 철학이 깔려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밍크 담요를 손바닥으로 쓰다듬을 때 방향에 따라 질감이나 색깔이 바뀌죠. 세상을 바꾸는 원리도 똑같습니다. 손길에 따라 바뀌는 거예요. 대통령이 ‘쟤가 대드네? 쟤 들어내!’ 하는 순간 우리는 과거로 돌아갑니다. 지도자의 포용은 100개의 법을 바꾸는 것 이상의 힘을 가지고 있어요.” 그는 어쨌든 부드러웠다. 그가 만약 수학자였다면, 배제와 부풀리기의 뺄셈과 곱셈이 아닌, 감싸기와 단절을 위한 덧셈과 나누기를 주로 이용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정치가 직업인가”라는 질문에 그는 “국민들 덕분에 저와 제 가족이 먹고 삽니다. 그래서 나는 최선을 다합니다. 이거 안해도 먹고 살 수 있는, 성공한 사람들이 정치도 잘할 것 같지만, 그렇지는 않습니다. 국민으로부터 빌어먹는 탁발승 같은 자가 국민을 진정으로 섬길 줄 압니다.” 간결하고 알아듣기 쉬운 설명이었다. “그런데 사실 어디 가서 정치에 대해 이렇게 말하지는 못합니다. 대중들이 정치인에게 바라는 고상한 품격이라는 게 있거든요.” 그러나 잠시 후, 그는 만족스럽지 못한 내 표정을 읽은 듯, 다시 입을 떼었다. “내가 비참해지기 싫어서, 표현을 솔직하게 못했던 것 같기도 하네요. 사실 가족까지 끌여들여 먹고 사는 문제를 얘기하는 것이 자존심이 좀 상하기도 하고요. 그러나 이런 두려움도, 이제 극복해야죠. 더 솔직해지겠습니다.”
그날, 나는 그의 얘기를 들었지만, 그 안에 내 생각을 넣은 듯한 기분도 들었다. 대화를 통해, 그는 정치인에 대한 내 선입견을 바꿔 놓았다. 촬영 막바지에, 나 또한 그의 단정한 가르마 방향을 바꾸어 놓았다.
사진·글=강영호
안희정 by 강영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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