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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별별시선]작은 학교의 살림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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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닫았던 학교에 다시, 아이가 왔다. 올해 새 학기에 그런 일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마을의 모든 아이들을 떠나보내고 문을 닫았던 작은 학교가 다시 문을 열었다. 한 명의 입학생으로 시작하는 학교. 예전에 어느 나라에선가는 학생 한 명의 통학을 위해, 폐선될 예정이었던 기차를 졸업 때까지 몇 년이나 더 연장해서 운행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아침에 한 번, 오후에 한 번, 한 명의 학생을 태우기 위해 다니던 작은 기차.

경향신문

우리집 아이가 다니는 학교도 몇 년 새 아이들이 조금 늘어나는 듯하다가 다시 줄고 있다. 면 지역 안에서는 어린아이들이 누구누구 있는지 다 알고 있으니까, 앞으로 이사 오는 집이 많지 않다면 얼마나 학생 수가 줄어들지 어림짐작하고 있다. 이제는 온 나라에 아이들이 줄고 있으니까, 이곳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한 명의 아이를 위해 학교를 다시 열었다는 소식은 반갑기 그지없었지만, 아마도 비슷한 소식을 또 듣게 되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현실은 그나마 있는 학교를 지키는 일도 버거우니까.

대개는 작은 학교일수록 학생 수가 적다는 이유로, 학교 살림을 꾸리기가 어렵다. 작년, 학교 운영위원회에 참석하면서 돈 쓰는 일을 들여다보니 사정을 조금 더 알게 되었다. 전교생이 다 합쳐 100명이 될까 말까 턱걸이를 하다가 한두 명이 모자라게 되면서, 급식소에서 아이들 밥을 챙기는 사람이 두 명에서 한 명으로 줄었다. 병설유치원도 10명이 되지 않으니까, 오후 시간 아이들 간식을 챙기고, 잔손을 거들던 한 사람이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몇 명, 몇 명 하는 기준을 만들어 두고 가장 먼저 줄이는 것들이 이런 예산이다.

학교가 작은 만큼 돈 쓰는 것도 적을 수밖에 없다지만, 그게 돈이 모자라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지난달에는 학교 통학버스 주차장에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덧씌우는 공사를 했다. 여름에 그늘을 드리우고, 겨울에는 서리를 막으려 했다는데, 공사를 마친 모양새는 버스 앞머리에 우산 하나 씌워 놓은 꼴이다. 학교 안에 아무도 쓰지 않는 주차장을 몇 면 더 늘리는 공사도 했다. 꼭 필요한 공사는 아닌 것 같았지만, 그것은 ‘시설 예산’으로 정해진 것이라, 다른 곳에 쓸 수 없다고 했다. 없는 형편에 돈주머니를 몇 개 따로 찬 살림이다. 당장 한쪽으로는 돈이 없어 절절매면서도, 반대편에서는 두둑한 돈주머니를 들고서는 어디 돈 쓸 만한 데가 없나 두리번거린다. 규모가 작은 살림의 예산 내역을 보니 이런 것이 눈에 더 잘 들어온다. 학교의 살림살이를 결정하는 과정이 민주적으로 이루어지고, 돈 쓰는 것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학교에 있다면, 이렇게 돈을 함부로 쓰는 일은 어렵지 않게 바로잡힐 것이다.

나랏돈이 어떻게 쓰이는가를 두고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은 것은, 돈의 쓰임새를 결정할 때 자기 의견을 낼 수 있는 통로가 잘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고, ‘저게 내 살림이라면, 절대 나는 그렇게 돈 안 쓴다’ 싶을 만큼 어이없게 쓰는 일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학교에는 운영위원회라는 것이 있어서 법적으로는 운영위원장이 학교 재정을 집행하는 결정권자이지만, 이름으로만 운영위원회가 굴러가는 학교가 수두룩하다. 이런 학교일수록 정작 학교에서 살아가는 아이들과 선생님에게 필요한 곳에 돈이 쓰이지 않고, 몇몇 사람이 멋대로 쓰거나, 혹은 그보다 더 큰 권력을 쥔 기관이 돈 쓸 곳을 정해 버린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선 경선후보는 교육 정책을 말하면서 초·중등 교육에 관한 것은 각 시·도교육청에 맡기고, 학교 자치기구도 제도화하겠다고 했다. 어쨌거나 모여 있는 권력을 자꾸 나누겠다는 뜻일 것이다. 권력이 작고 가까워야 거기에 속한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하고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기가 쉬워진다. 그렇게 하는 것이 민주주의에 더 가까워지는 일일 테고, 작은 학교가 형편껏 살림살이를 굴릴 수 있는 길도 가까워질 것이다.

<전광진 | 상추쌈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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