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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경향시선]현등사 곤줄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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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악산 현등사 보광전

기둥에 걸어놓은 목탁에

새가 깃들여 산다

목탁의 구멍으로 드나드는

곤줄박이 한 쌍의 비상이

경쾌하고 날렵하다

곤줄박이는 알 품고

새끼 기를 집이 맘에 들어

기꺼이 노래하고

새의 노래 듣는 스님은

새 날아간 자취 더듬듯

목탁에 손때 먹인 세월 되새긴다.

- 최두석(1955~ )

경향신문

현등사 스님은 슬기롭기도 하지, 두드리는 스님이 없어도 스스로 맑은 소리를 내는 목탁을 절 기둥에 매달아 놓을 줄을 알았으니. 스님의 마음 씀씀이는 놀랍기도 하지, 목탁을 예불이나 염불 도구로만 쓰는 게 아니라 생명이 깃드는 집으로도 쓰고 있으니. 곤줄박이는 참으로 용하기도 하지, 제 울음을 허공에 떠도는 뭇 생명들의 영혼을 부르는 소리로 변화시키고 있으니. 법당에서 스님이 목탁을 두드리며 염불을 선창하면 절 밖에서 새들이 그 소리를 떨리는 목청으로 받아 산으로 들로 거리로 보내겠구나. 스님의 목탁소리, 염불소리는 이제 새의 날개를 달고 새소리를 담아 탁한 세상 시끄러운 속세로 날아가 맑은 소리를 퍼뜨리겠구나. 현등사 신도들은 자거나 일하거나 다투다가도 새소리를 들으면 물고기처럼 눈 감지 말고 늘 깨어 정진하라는 목탁의 전언임을 알아듣고 마음을 가다듬겠구나.

<김기택 |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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