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7.07 (일)

콘텐츠 시장 100조원 돌파 | 잘 만든 콘텐츠 ‘반도체’ 안 부러워 게임·캐릭터 스타트업 창업 활발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매경이코노미

‘너의 이름은.’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작품으로 일본에서 제작해 세계 극장가를 뒤흔든 애니메이션이다. 일본에서 무려 1700만명 이상 관객을 모았다.

미국 박스오피스 집계 사이트인 ‘박스오피스 모조닷컴’에 따르면 이 애니메이션은 미국을 제외한 지역에서 약 3500억원의 흥행 수익을 거뒀다. 4월 미국에 정식 출시하면 매출 규모는 더욱 늘 전망이다. ‘너의 이름은’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이후 15년 만에 글로벌 시장에서 흥행을 일으킨 일본 애니메이션. 국내에서도 전국 360만명 관객을 동원해 역대 일본 애니메이션 흥행 1위를 갈아치웠다. ‘너의 이름은’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잘 만들어진 콘텐츠가 갖고 있는 산업적 파급력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크다.

많은 사람들이 중국의 산업 추격을 걱정한다. 스마트폰, 디스플레이와 같은 IT 산업은 물론 자동차, 석유화학, 철강 등 다양한 분야에서 중국의 산업 경쟁력은 한국을 위협하는 수준이 됐다. 이제 중국의 ‘과잉생산’으로부터 영향이 미치지 않는 산업은 찾기 어려울 정도다.

유일하게 중국의 추격으로부터 자유로운 분야가 바로 콘텐츠 산업이다. 영화, 게임, 음악 등 콘텐츠 산업은 문화와 예술적 감각을 기반으로 한다. 기본적으로 창의성이 수반되기 때문에 쉽게 따라오기 힘들다. “콘텐츠야말로 중국과 차별화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산업”이란 말은 결코 허투루 들을 얘기가 아니다.

중국의 한한령(限韓令·한류 금지 또는 제한령) 조치로 국내 콘텐츠 업계에도 위기감이 감돈다. 학계 전문가들은 “이럴 때일수록 한국만의 독특하고 차별화된 콘텐츠를 생산하고 관련 스타트업을 육성해 산업 경쟁력을 강화할 시점”이라고 입을 모은다.

매경이코노미

▶세계 콘텐츠 시장 2000조

▷한국 7위로 꾸준히 성장세

‘1조8920억달러.’

세계 콘텐츠 시장 규모(2015년 기준)다.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2000조원이 넘는다. 반도체 시장(약 400조원)보다 5배가 넘는다. 그럼에도 매년 5% 이상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콘텐츠 산업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분야가 다양하다. 소득 수준이 높을수록 콘텐츠 소비는 늘어나기 마련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4차 산업혁명 시대 산업 간 경계가 무너질수록 콘텐츠 산업은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한다.

콘텐츠는 추가 생산에 대한 비용이 다른 제조업과 비교해 현저히 낮다. 부가가치가 높은 이유다. 또 잘 만들어진 콘텐츠 하나의 파급 효과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가령 ‘너의 이름은’은 극장 관람 매출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각종 캐릭터 등 다양한 형태의 파생상품을 만들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한다. 세계 많은 국가가 콘텐츠 산업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다.

현재 세계 콘텐츠 시장은 미국이 이끌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 콘텐츠 시장 규모는 7000억달러로 세계 시장의 30%에 이른다. 이어 중국과 일본이 미국의 뒤를 이어 2~3위권을 형성하고 있으며 한국은 세계 7위 규모다.

국내 콘텐츠 산업은 대내외 경기 둔화에도 꾸준히 성장 중이다. 2011년 82조9678억원, 2012년 87조2716억원, 2013년 91조2096억원, 2014년 94조9472억원으로 4년간(2011~2015년) 연평균 4.9%씩 성장했다. 2015년엔 처음으로 100조원을 돌파하기도 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하 한콘진)이 공개한 ‘2016 콘텐츠 산업 통계조사’에 따르면 2015년 국내 콘텐츠 산업 매출액은 100조4863억원으로 전년 대비 5.8% 증가했다. 같은 해 경제성장률(2.6%)의 두 배가 넘는 수치다. 출판, 만화, 게임, 영화, 애니메이션, 방송, 광고, 캐릭터 등 모든 분야가 전년 대비 매출액이 늘었다. 한콘진 관계자는 “캐릭터 산업과 인터넷·모바일 관련 지식정보 부문 매출 규모가 크게 확대돼 전체 성장에 기여했다”고 분석했다.

수출 또한 늘고 있다. 올해 콘텐츠 산업 예상 수출액은 68억5000만달러(약 7조9000억원)로 지난해보다 8.5% 늘어날 전망이다. 물론 중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 조치라는 변수는 있다. 이에 대해 한콘진 측은 “(사드 보복이) 중국 콘텐츠 수출에 영향을 끼칠 수 있지만 전체 수출 규모에 미치는 파장은 우려만큼 크지 않을 것”이라며 “캐릭터와 지식정보 산업, 게임 등이 올해 콘텐츠 수출을 이끌 것”으로 내다봤다.

매경이코노미

대내외 경기 둔화에도 콘텐츠 산업은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아부다비에서 열린 ‘케이콘(KCON) 2016 아부다비’에서 관람객들이 공연을 즐기는 모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문화기술·게임·영상 두각

▷앨리스원더랩·그램퍼스·도빗

콘텐츠 산업은 기본 속성상 참여 주체가 많을수록 발전 가능성이 크다. 소수 사업자가 독점하면 다양한 콘텐츠 제작이 어려워진다. 월트디즈니, 드림웍스 등 글로벌 기업 또한 수백억원 이상 돈을 들여 소규모 콘텐츠 제작사 인수 경쟁을 벌이는 것도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국내에도 몇몇 주목받는 콘텐츠 스타트업이 등장해 시장에 작은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는 점은 반가운 소식이다. 디지털 기술 발전과 함께 다양한 매체의 등장으로 개인이나 작은 기업도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게 되면서 나타난 결과다. 자신의 기호에 맞게 나만의 ‘맞춤형 콘텐츠’를 찾는 사람이 늘어난 것도 콘텐츠 스타트업이 늘어난 이유로 분석된다.

당장은 미약하지만 국내 콘텐츠 산업을 한 단계 발전시킬 수 있는 스타트업은 어떤 기업이 있을까. 한콘진의 추천을 받아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스타트업을 추려봤다.

문화기술 부문에선 앨리스원더랩이 눈길을 끈다. 앨리스원더랩은 동영상으로 만든 지도를 제공하는 스타트업이다. 포털사이트에서 운영하는 거리뷰 기능의 동영상 버전이라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앨리스원더랩의 동영상 지도는 ‘크라우드소싱’, 즉 대중이 직접 참여하는 방법으로 제작된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누구나 지도를 만드는 데 동참할 수 있다. 사용자가 직접 참여해 지도를 만드는 기업은 있지만 동영상 데이터를 수집해 제공하는 곳은 국내에 전무하다. 앨리스원더랩의 미래가 기대되는 이유다.

사용자 참여 방법은 간단하다. 산책을 할 때, 혹은 출근길에 스마트폰 카메라로 거리를 찍은 뒤 앨리스원더랩 앱에 영상을 올리면 끝. 이렇게 만든 지도는 길을 찾을 때뿐 아니라 가상으로 여행을 하는 데에도 쓰인다. 여행을 가고 싶지만 지금 당장 떠날 수 없는 이용자 사이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 걸어 다니며 찍은 영상을 활용하니 그 지역을 직접 여행하는 것처럼 생생한 느낌이 든다고.

게임제작사 중에선 김케이지인 대표가 이끄는 ‘그램퍼스’가 돋보인다.

대표작은 ‘쿠킹어드벤처’라는 레스토랑 경영 시뮬레이션 게임. 300개가 넘는 레시피를 이용해 요리를 할 수 있고 독특하고 다양한 캐릭터가 손님으로 등장한다. 고품질 그래픽과 사운드도 갖췄다. 처음부터 세계 시장 진출을 노리고 만든 게임으로 2017년 3월 기준 약 150개 국가에서 400만여명이 내려받았다.

그램퍼스는 쿠킹어드벤처 IP를 활용한 사업도 시작할 계획이다. 이어 아직 서비스를 정식으로 시작하지 않은 중국과 한국 시장 진출도 고려하고 있다.

모바일 영상 콘텐츠 제작사 중에선 ‘도빗’이 사람들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세상의 모든 노하우를 공유하겠다는 취지로 만든 스타트업. ‘도를 아십니까’를 만났을 때 대처하는 방법, 버스정류장에서 남을 배려하며 줄 서는 방법 등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정보라면 모두 동영상으로 만들어서 제공한다. SNS 구독자 250만여명을 확보했을 정도로 관심이 뜨겁다. 도빗의 콘텐츠는 자체 SNS 외에도 판도라TV, 곰TV 등의 온라인 채널과 5678서울시도시철도, 경기G버스 등 오프라인 채널을 통해 공유되고 있다.

빅데이터 분석을 활용해 여성 속옷을 추천해주는 럭스벨도 주목할 만하다.

보통 여성들은 자신이 소유한 브래지어 10개 중 편한 3개만 착용한다. 여성 대부분이 자신은 어떤 체형인지, 어떤 브래지어가 잘 맞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럭스벨은 다양한 기준으로 소비자 체형을 면밀히 분석해 가장 적합한 속옷을 추천해준다. 현재 서울에만 지점이 있지만 곧 다른 지역으로 오프라인 지점을 확대할 계획이다. 해외 시장 진출도 노리고 있다.

매경이코노미

▶콘텐츠 산업 발전 위해선

▷자금 지원·중국 외 수출 다변화

콘텐츠가 미래 성장동력이자, 최고의 부가가치 산업임을 부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글로벌 콘텐츠 시장 규모가 확대되는 것만큼 국내 콘텐츠 시장도 외형적으로 크게 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해결 과제도 적지 않다.

우선 앞서 몇몇 스타트업이 선전하고 있지만 아직은 소수 대기업에만 의존하는 구조기 때문에 건전한 생태계 조성이 이뤄지지 않고 있어 아쉽다. 특히 수출에서는 게임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 전체 콘텐츠 수출 중 게임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반 이상(53.6%)이다.

게임 분야를 따로 떼어봐도 넥슨, 넷마블, 엔씨소프트 등 상위 3대 게임사가 전체 매출의 70~80% 이상을 차지한다. 대기업 위주로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새로운 기업이 탄생하기 어려운 구조다. 게임 외 영화나 드라마 등 다른 분야도 사정은 비슷하다.

국가를 대표할 만한 ‘콘텐츠 기업’이 부족하다는 점도 한계다. CJ그룹을 제외하면 콘텐츠에 적극 뛰어들고 있는 대기업은 사실상 전무한 수준. 한콘진 관계자는 “콘텐츠 산업은 장기적 관점에서 투자가 필요하고 많은 노하우가 필수적이다. 중요성은 날로 커지고 있지만 세계 시장에서 새롭게 떠오르는 국내 기업은 많지 않다”고 말한다.

전문가들은 보다 다양한 콘텐츠 기업을 육성하기 위해 자금 조달 문제를 우선 해결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콘텐츠 제작엔 큰 비용이 들어간다. 그런데 한국에선 해외에 비해 투자나 융자를 받기가 쉽지 않다. 정부가 다방면으로 지원하고 있다고 하지만 기업 입장에선 부족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자금 확보가 쉽지 않다 보니 스타트업이 생겨도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어려운 구조다. 새로운 시도도 어려워지고 투자자 입맛에 맞는 결과물을 내놓는 데 치중하게 된다. 김영재 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외국에선 콘텐츠 제작사가 배급사와 계약만 해도 은행권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는데 국내에선 불가능하다”며 “더 많은 투자자를 확보하고 금융 관련 규제를 완화해 돈 걱정 없이 제작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콘텐츠 산업이 발전할 수 있다”고 전했다.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목소리도 있다. 콘텐츠 산업의 핵심은 결국 창의적인 인재 육성이다. 이를 위해선 무엇보다 교육 현장이 바뀌는 것이 중요하다.

특허교육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 특허 관련법은 워낙 복잡하다. 그나마 대기업은 대부분 전문 변호사를 고용하거나 법률 자문 서비스를 이용하는 등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편이다. 하지만 중소·중견업체나 스타트업은 지식재산권을 지키지 못해 막대한 손해를 보기도 한다.

이병민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현재 정부에서 제공하는 콘텐츠 교육 과정은 대부분 일반적인 내용을 알려주는 데 그친다. 각 업체 분야에 맞는 특화된 특허 지식을 갖출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한한령을 계기로 중국 의존도를 줄이고 수출 국가를 다변화해야 하는 숙제도 남았다. 현재 국내 콘텐츠 기업들은 한한령 고비를 넘기 위해 자구책 마련에 고심 중이다. 제작 비용을 줄이고 동남아 등을 중심으로 수출 시장을 확대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지금까지 중국 입맛에 맞는 콘텐츠를 제작하다 보니 완성도 측면에서 떨어지는 콘텐츠가 많았다. 중국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한류를 잘 나타내면서도 질 높은 콘텐츠 제작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인터뷰 | 이재홍 숭실대 예술창작학부 교수(한국게임학회장)

콘텐츠 정당한 가치 지불하는 문화 정착돼야

매경이코노미

Q 한국 콘텐츠 산업의 현주소를 어떻게 보는가.

A 게임, 영화, 웹툰, 드라마 등 각 분야에서 콘텐츠 산업이 많이 발전했다. 다만 게임 위주로 수출이 늘었다는 점은 아쉽다. 한류 영향으로 영화, 드라마 등의 제작 기술도 많이 발전했지만 수출 규모만 보면 아직 멀었다고 본다. 무엇보다 스토리 부재가 아쉽다. 어떤 콘텐츠 산업도 스토리가 강하지 못하면 살아남기 어렵다.

Q 글로벌 기업과 비교하면 어느 정도 수준인가.

A 콘텐츠를 구현하는 제작 능력만 놓고 보면 미국, 일본 등 콘텐츠 강국을 100점으로 봤을 때 80점 이상은 된다고 본다. 하지만 콘텐츠 제작을 위한 전체 큰 틀을 짜는 능력이 부족하다. 콘텐츠만 따로 떼어낸다면 50~60점 수준 정도다. 충분히 좋은 콘텐츠를 만들 저력은 있지만 반지의 제왕, 해리포터 같은 글로벌 대작이 나오지 않고 있다.

Q 콘텐츠 산업 육성을 위해 조언한다면.

A 게임이나 영화 등 대부분 콘텐츠 분야에서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엔씨소프트, CJ E&M 등 대기업 위주로 생태계가 구성됐기 때문에 다양한 콘텐츠 개발이 힘든 실정이다. 정부의 적극적 지원으로 소위 ‘허리 기업’을 육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초기엔 기술적 지원, 이후엔 세제 혜택 등 단계별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 또 하나 중요한 문제가 있다. 사용자들이 정당한 가치를 지불하고 콘텐츠를 소비하는 성숙한 문화가 확산돼야 콘텐츠 산업이 발전할 수 있다. 무형의 가치가 있는 콘텐츠에 대해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공짜’로 이용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물론 이를 위해선 공급자들도 완성도 높은 콘텐츠를 개발하는 것이 필수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00호 (2017.03.22~03.28일자)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