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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3년 동안 바다에 잠겨있던 세월호에는 우리가 기억해야 할 많은 이야기들이 잠들어 있습니다. 아이들을 찾겠다며 자진해 바다에 뛰어들었지만, 누구보다 큰 상처를 입은 채 잊혀진 민간잠수사들이 그렇습니다.
보도에 장세만 기자입니다.
<기자>
세월호 현장의 거친 바다를 수색할 전문 잠수사가 없다는 말에 자진해서 달려간 산업잠수사 김관홍 씨, 현장은 아비규환이었습니다.
심장마비로 죽을 고비를 넘겨야 했을 만큼 몸을 혹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故 김관홍/세월호 수색 참여 민간잠수사 : 우리도 사람이에요. 공포도 느끼고 두려움도 있어요. 그 아픔은 똑같단 말이에요. 단지 우리가 심해 잠수의 기술을 가지고 있고….]
하지만 김 씨 같은 민간 잠수사에게 돌아온 건 돈을 노리고 시신수색에 나섰다는 식의 어처구니없는 루머와 비난이었습니다.
정부는 예고 없이 김 씨와 동료들을 현장에서 뺐고, 작업 중에 생긴 사고책임을 물어 검찰에 고발까지 했습니다.
김 씨에게 남은 건 각종 잠수병과 트라우마, 세 아이의 아빠였던 김 씨는 더이상 잠수가 불가능해지자 대리운전 기사로 전업해 생계를 꾸렸습니다.
하지만 참혹했던 세월호 기억의 정신적 충격을 끝내 못 이긴 채 지난해 6월 목숨을 끊었습니다.
[이게 한번 생각에 빠지면 그거에서 벗어나지를 못하니까 안 좋은 생각만 하게 되더라고요. 저는 이게 너무 고통스럽던 기억….]
세월호 수색 당시 사고로 숨진 2명에 이어 당시 참여했던 민간잠수사 가운데 3번째 죽음이었습니다.
살아남은 잠수사들에게도 세월호 후유증은 심각했습니다.
당시 정부는 이들에게 산업재해 적용을 약속했지만, 정작 산재를 신청한 민간잠수사 50여 명 가운데 실제 인정받은 사례는 20여 명에 불과했습니다.
(영상편집 : 하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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