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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3 (수)

세계 첫 양식 성공, 훈장 탄 ‘명태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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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수산과학원 변순규 박사

동아일보

변순규 국립수산과학원 박사가 22일 태어난 지 약 2년 된 암컷 명태를 들고 있다. 2015년 1월 그물에 잡힌 자연산 암컷 명태가 낳은 양식 1세대다. 이 명태를 포함한 200마리의 암컷이 다시 산란을 하며 완전 양식에 성공했다. 국립수산과학원 제공


“명태는 양식이 불가능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세계 최초로 명태 양식에 성공했으니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요즘엔 수족관에 있는 명태들이 사람 발소리를 들으면 먹이 주는 줄 알고 몰려들어요. ‘명태 아버지’를 알아봐 주나요? 하하하.”

1980년대 동해 항구엔 명태를 실은 ‘고무 다라이’가 가득했다. 연간 10만 t 이상 잡히는 흔한 생선이었다. 강원도 바닷가 사람들은 명태를 팔아 자녀를 학교에 보내고 결혼도 시켰다. 하지만 2000년대 들며 명태는 빠른 속도로 한국 바다에서 자취를 감췄다. 명태 새끼인 노가리를 마구 포획한 데다 동해 수온 상승으로 차가운 물을 좋아하는 명태가 떠난 것이다. 이젠 연간 1t 정도만 잡힌다.

이처럼 씨가 마른 ‘국산 명태’를 되살리기 위해 팔을 걷어붙인 이가 있다. 국립수산과학원의 변순규 박사(54)다. 그는 2년여의 노력 끝에 지난해 10월 세계 최초로 명태 완전 양식에 성공해 ‘명태 아버지’란 별명을 얻었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이달 인사혁신처는 그에게 ‘옥조근정훈장’을 시상했다.

“첫 걸음마를 뗐을 뿐인데 훈장을 받아 영광이네요. 저 혼자 이룬 성과가 아닌 데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이 훨씬 많아 기쁘기보단 어깨가 무겁습니다.”

명태는 대표적인 국민 생선이다. 국내 소비량은 연간 25만 t. 국민 1명당 1년에 7, 8마리씩 명태를 먹는 셈이다. 먹는 방법도, 이름도 다양하다. 얼려 먹으면 ‘동태’, 말려 먹으면 ‘황태’, 생물로 먹으면 ‘생태’다. 말린 어린 명태는 ‘노가리’, 코를 꿰어 반쯤 말린 명태는 ‘코다리’로 부른다.

지금 우리가 먹는 대부분의 명태는 러시아 앞바다에서 잡혀온 것들이다. 변 박사는 명태 복원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전부터 어종 복원 전문가로 이름을 날렸다. 그의 고향은 경남 거창군. 바닷가는 아니지만 해양 생물에 관심이 많아 대학에서 어류학을 전공하고 자원생물학, 수산과학으로 석·박사를 마쳤다. 1989년 수산과학원에 입사해선 강도다리, 참돔, 감성돔, 황금볼락 등을 한국 바다에 되살려냈다.

“바다 생명을 키우고 복원하는 게 제 임무입니다. 어획량이 늘며 바다 생태계가 흔들리는데 인간만이 다시 균형을 맞출 수 있거든요. 많이 먹는 만큼 많이 양식해 바다로 돌려줘야 바다 생태계가 살아납니다.”

그가 명태 살리기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은 2014년 12월. 이전에도 국산 명태를 되살리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종자 복원에 필수적인 살아있는 어미 명태를 구하지 못해 번번이 실패했다. 명태는 수심 500m 정도의 깊은 물에 사는 데다 스트레스에 약해 잡는 과정에서 대부분 죽는다. 천운이었을까. 그가 프로젝트를 맡은 지 2개월째인 2015년 1월, 상처 하나 없는 어미 명태가 150m의 얕은 바다에 쳐놓은 그물에 잡혔다.

이 어미 명태를 이미 잡아 놨던 수컷 명태와 수정시켜 53만 개의 수정란을 얻었다. 하지만 명태를 양식한 경험이 없으니 적정 수온을 맞추는 일도, 먹이인 동물성 플랑크톤을 찬물에 적응시키는 것도 모두 과제였다. 53만 개 중 3만 개만 부화에 성공했고, 이 중 성장이 빨라 집중 사육관리된 200마리가 다시 같은 과정을 거쳐 산란이 가능한 5만 마리의 명태로 늘어났다. 완전 양식이 성공한 순간이었다.

그는 요즘 명태를 돌보는 틈틈이 명태를 대량으로 양식할 수 있는 시설 투자를 위해 국회 등 각계를 찾아다니고 있다.

“지금은 한 번에 1만 마리 정도 방류하는데 동해에서 명태를 보려면 한 번에 최소 100만 마리씩 방류해야 합니다. 시설과 연구 인력이 더 필요한 이유죠. 아이를 낳는 데는 성공했으니, 이제는 잘 기르는 방법도 찾아 성공해야죠. 지금부터가 시작입니다.”

송충현 기자 balg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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