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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월)

농성장 찾아 ‘레알 로망 캐리커처’로 용기와 희망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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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만화가’ 이동수 화백

경향신문

‘거리의 만화가’로 불리는 이동수 화백이 지난 15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인터뷰를 하면서 사람들의 얼굴 캐리커처를 담은 ‘현수막’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parky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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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만화가 이동수 화백(57)에게 ‘거리’는 작업실이자 창작의 산실이다. 거리에서 아이디어를 얻고 작품 마감을 한다. 흙길, 콘크리트 바닥 가리지 않고 자리를 잡지만, 그가 찾아가는 곳은 한결같다. 노동자, 사회적 약자들이 권력에 맞서 싸우는 현장이다. 그는 거리로 내몰린 사람들의 얼굴과 투쟁의 순간을 스케치북에 담는다.

‘거리의 만화가’로 불리는 이 화백을 지난 15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만났다. 박근혜 정부의 블랙리스트에 맞선 문화예술인들과 노동자들이 천막을 치고 노숙하고 있는 ‘광화문 캠핑촌’이다. 이 화백은 매주 화요일 이곳을 찾는다고 했다. 캠핑촌이 꾸려진 게 지난해 11월 초이니, 광화문에서 작업을 한 것도 넉달이 지났다. 이 화백은 겨우내 이들과 함께하면서 사람들의 얼굴과 현장을 캐리커처로 그렸다.

그가 자리를 잡은 곳은 이순신 장군 동상 앞이다. 캠핑촌 사람들뿐 아니라 행인들이 많은 곳이다. 그는 이곳에서 스케치북이 아닌 ‘현수막’을 펼쳤다. 가로 2m, 세로 1m 크기의 ‘백지’ 현수막에 노숙 투쟁 중인 예술인, 촛불을 든 시민들, 그저 광장을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을 담았다. 현수막에 담긴 40~50명의 얼굴 옆에는 이름이 새겨졌다.

“문화예술인들이 왜 한겨울 차디찬 바닥에 텐트를 치고 노숙을 하고 있는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광장에 나왔어요. 이들과 함께하고도 싶었고요.”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장기 농성 중인 콜트콜텍지회, 금속노조 하이디스지회 등 공동투쟁단 사람들과 현장의 캐리커처는 그의 상의 주머니에서 꺼낸 자그마한 수첩에 빼곡히 담겨져 있었다. 그는 “농성 현장을 다니다보면 스케치북에도 담기 힘들 정도의 급박한 상황이 벌어진다. 그래서 비상용으로 준비한 수첩에 그림을 그릴 때도 있다”며 “약자들이 권력에 맞서 농성하는 현장만 쫓아다니면서 그림을 그리다보니 사람들이 저를 ‘거리의 만화가’라고 부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신문사에서 만평을 그리던 이 화백은 20여년 전 ‘불편하고, 재미가 없어서’ 회사를 그만뒀다.

“누군가를 비판하는 일이 불편해졌어요. 옳고 그름을 떠나 나 스스로도 편하지가 않았고요. 어느 날엔가,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같은 사람들은 눈을 감고도 그리겠는데, 단병호 선생(전 민주노동당 국회의원)의 얼굴은 그려지지 않는 거예요. 그때 느꼈습니다. 내가 미워하는 사람 대신 좋아하는 사람을 그려야겠다고요.”

시사만화가로서 만평을 접을 수는 없었다. 대신 평소에 관심이 많았던 캐리커처 작업에 시간을 더 많이 할애했다. 그의 얼굴 캐리커처는 동화 속 주인공들처럼 화사하면서 따뜻하다. 이 화백은 자신의 그림을 ‘멋지면서 따뜻하다’는 의미를 담아 ‘레알 로망 캐리커처’라고 소개했다. 그는 “캐리커처도 만평과 마찬가지로 사물의 특징을 잡아서 과장해 그리는데, 도드라진 포인트가 당사자에겐 콤플렉스인 경우가 많다”며 “그래서 ‘닮은 것 같으면서 예쁘게 그린 캐리커처’라는 뜻으로 레알 로망이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말했다.

그는 용산참사가 일어난 2009년부터는 아예 거리로 나섰다. “처음엔 ‘가만히 있어선 안되겠다’는 이유 때문에 현장을 찾았어요. 그러다 농성 중인 사람들과 밤낮을 함께하면서 느낀 게 있어요. 농성이 길어질수록 가장 중요한 건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려면 서로 용기와 희망을 주고받을 수 있어야 해요. 저의 캐리커처가 그들에게 웃음과 유쾌함을 줄 수 있고, 또는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이들의 처지를 알릴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매일 길거리 투쟁 현장을 지키는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면서 저 또한 위안을 얻었습니다.”

그는 이후 대한문 쌍용자동차 분향소, 재능교육 농성장 등에도 어김없이 스케치북을 들고 함께했다. 거리에서 만난 인연도 잊지 못한다. 그는 “(2008년 94일 단식 농성 등 1895일간 투쟁을 이어간) 김소연 전 기륭전자 분회장의 경우 악에 받쳐 싸우는 모습만 떠올리고 현장에 갔는데, 막상 파업을 마무리하는 문화제에서 캐리커처를 그려주겠다고 하니 너무 쑥스러워했다”면서 “해맑게 웃는 그의 얼굴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 화백은 광화문에서 작업한 현수막 작품 15점과 캐리커처 작품들을 전시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그는 “당분간은 블랙리스트 사태와 세월호 참사의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집회 현장을 찾아다니며, 그곳을 지키는 사람들의 표정과 그들이 어떻게 힘들게 싸우고 있는지를 기록하고 싶다”고 말했다.

<안광호 기자 ahn7874@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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