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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5 (금)

[그곳에서 사람을 만나다]버스기사에게 ‘우주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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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투스 이어폰으로 전화를 받은 그의 목소리는 꽤 진지하다. 도대체 왜 이렇게 벌어진 거야? 그는 재빠르게 말을 내뱉고는 양옆을 주의 깊게 살핀다. 차들은 빈틈없이 달렸지만, 그는 능숙하게 운전대를 꺾어 버스전용차선에 들어섰다.

경향신문

“그러게 너무 시간이 벌어졌어. 알았어. 형, 내가 해볼게.”

운전대를 단단히 잡고 있는 손처럼 그의 목소리에도 힘이 들어가 있다. 그는 지금 형이라고 불리는 사람과 함께 대단한 결의라도 한 것처럼 들린다.

맨 앞자리에 앉아 있던 승객 하나가 그를 힐끔 쳐다본다. 무슨 일인 거야? 어쩌면 비밀스러운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른다. 차들이 제각각의 목적지를 향해 빠른 속도로 내달리고 있는 도로 위에서 그들은 세상을 놀라게 할 엄청난 계략을 세운 건 아닐까.

역시나 운전사는 정류소에 정차하지 않고 그냥 지나친다. 버스를 타려고 주춤주춤 앞으로 나와 섰던 사람들은 대놓고 적의를 드러낸다. 운전사는 그들의 낭패와 허탈감을 모른 체할 수 없는지 곧 차가 뒤따라온다고 손짓을 한다.

“형, 내가 그냥 간다. 그래, 나한테 맡겨. 오 분이라도 앞당겨 봐야지.”

고작 5분과의 싸움을 벼르면서 그는 전화를 끊었다. 그들의 계략이란 무언가를 전복하거나, 정복하거나 하는 일 따위가 아니다. 차가 막혀서 자꾸 틈이 벌어지는 배차 간격을 조율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한테 그 일은 지금 이 순간 우주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다. 그들에게 버스가 때맞춰 도착해 사람들이 제시간에 버스에 올라 원하는 시간에 닿는 일은 제때 지구가 태양을, 달이 지구를 맴도는 일과 다르지 않다. 그들에게 우주의 시간은 버스의 시간에서 비롯된다.

아마도 버스가 달리고 있는 그 시간 세상 곳곳에서 사람들은 버스 운전사처럼 저마다의 시간을 충실하게 운행하리라. 그들의 손으로 세상은 돌아가고, 그들의 발로 세상은 앞으로 나아가리라.

쉬지 않고 달리던 버스가 속도를 줄였다. 뜻한 대로 5분이라도 앞당긴 모양이다. 나는 버스 운전사가 안전 운행하는 우주의 시간에 기대 잠을 청한다. 봄날은 시도 때도 없이 졸리다.

<김해원 |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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