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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2주 1000만원 실리콘밸리 캠프…대치동 학원가 들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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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애플 본사체험·美대학투어 내세워 고액과외 성행

서울 서초구의 한 국제교육 컨설팅업체는 최근 미국 스탠퍼드대학과 실리콘밸리의 글로벌 기업 체험 캠프 프로그램을 내놨다. 상품을 출시한 지 얼마 안 됐고, 1인당 가격이 1000만원에 달하지만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21일 이 업체 사무실에서는 학부모들을 상대로 설명이 한창이었다. 업체 관계자는 "일반 영어캠프나 회사 앞에서 사진만 찍고 오는 기존 프로그램과는 확실히 다르다"며 "스탠퍼드대에서 전문가에게 지도를 받으며 로봇을 설계하는 과정을 익히고 프로그래밍을 배우는 것은 물론 기업 관계자들에게 멘토링도 들을 수 있다"고 소개했다. 국제고교생 자녀를 둔 주부 A씨는 "가격이 부담스럽긴 하지만 실리콘밸리에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것들을 체험하고 배운다고 하니 귀가 솔깃한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입시제도가 변할 때마다 가장 발 빠르게 움직여온 강남 사교육 업계. 이젠 4차 산업혁명을 겨냥한 상품까지 내놓고 있다. 지난해 알파고 붐 이후 이미 코딩 교육 열풍이 한바탕 불었고, 최근엔 창업 요람 실리콘밸리와 그 중심에 있는 스탠퍼드대를 탐방하고 로봇 제작과 프로그래밍을 배울 수 있는 캠프도 등장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가장 기민하게 대처하는 곳은 기업이나 정부가 아니라 대치동 사교육 시장"이란 농담까지 나올 정도다.

스탠퍼드대 방문 캠프는 몇 년 전부터 성행했지만 대부분 영어 연수 중심이었다. 하지만 최근 4차 산업혁명이 화두가 되면서 캠프도 이에 발맞춰 진화하기 시작했다. 기존 영어캠프들도 정보기술(IT)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가미하는 추세다.

지난겨울 초등학생과 중학생을 상대로 열린 한 겨울방학 캠프는 스탠퍼드대와 UC버클리 등 대학 투어는 물론 정보기술과 나노기술 강의, 구글·페이스북 등 기업 투어 등을 포함했다. 약 열흘간 진행된 이 캠프 비용은 600만원에 육박했지만 참가자가 30명을 넘었다. 서울 강남권 한 코딩학원은 미국 현지에서 열흘간 코딩을 배운다는 명목으로 600만원짜리 코딩캠프를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알파고 열풍 이후 코딩 사교육도 이미 일상화됐다. 코딩을 가르치는 유치원이 각지에서 생겨나고 있다. 자녀가 다니는 유치원에 코딩 교육이 없으면 엄마들끼리 모여 방과 후 수업을 열어 달라고 요청하기도 한다. 일부 초·중·고교생은 한 달에 40만~50만원씩 주고 코딩 과외를 받기도 한다. 내년부터 중·고교, 2019년부터 초등학교에서 코딩 교육이 의무화되고, 카이스트 고려대 성균관대 등 14개 대학이 2018년 입시에서 '소프트웨어 특기자'를 선발하면서 이 같은 흐름에 불을 지폈다.

신진상 입시 전문 컨설턴트는 "의대만큼은 아니지만 대치동에서도 컴퓨터공학과의 인기가 전보다 높아졌다"며 "예전엔 과학만 전문으로 하는 학원이 드물었는데 최근 코딩이나 로봇, 과학 과목을 전문으로 가르치는 학원이 늘었다"고 설명했다.

학부모들 의견은 엇갈린다. 한 학부모는 "한국도 경쟁력을 갖추려면 산업 변화에 따라가는 게 좋다"며 "비용은 비싸지만 '4차 산업혁명 캠프'에 보냈더니 아이가 너무 좋아해 계속 코딩이나 로봇 등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과정도 등록했다"고 말했다. 반면 "열흘에서 2주 정도의 캠프에서 프로그래밍이나 코딩을 제대로 배우기는 힘들다"는 의견도 있었다. 또 "영유아 코딩 교육에 월 수십만 원을 쏟아붓고 코딩 과외까지 하는 건 너무 지나친 것 아니냐"는 반응도 나왔다.

김왕준 경인교대 교육학과 교수는 "코딩 수업에서 중요한 것은 그 안의 논리이고, 프로그램은 수단일 뿐"이라며 "어릴 때부터 핵심은 빼놓고 수단 위주로만 배우는 것은 염려된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교육계 관계자는 "글로벌 혁신기업과 유명 대학을 탐방하는 것도 도움은 되겠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더 중요한 건 창의적인 사고력을 기르는 것"이라며 "고가의 해외 캠프가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정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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