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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9 (수)

부실한 블랙 프라이데이 유통업계 거래구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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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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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들이여 회계하라-52] 유통업 회계를 이해하기에 가장 적합한 거래구조를 가진 예는 백화점이다. 소비자들이 보기에 백화점 매장의 외관은 다들 비슷하다. 매장의 구역을 나누어 성별이나 품목별로 비슷한 브랜드들을 모아 놓고, 두 명에서 세 명 정도의 점원이 판매활동을 한다. 따라서 소비자 입장에서 매장별로 운영상의 차이점을 느끼기 어렵다. 하지만 백화점 입장에서는 모두 다른 매장이다. 백화점과 입점업체와의 계약조건에 따라 직매입 판매 매장, 특정매입 판매 매장, 공간 임대 매장(갑, 을)으로 구분된다.

'직매입 판매 매장'이란 백화점에서 직접 상품을 구매하여 판매하고, 안 팔리고 남은 재고에 대해서 백화점에서 책임을 지는 것을 말한다. '특정매입 판매 매장'은 백화점이 납품업자로부터 상품을 우선 매입해서 판매한 뒤 안 팔린 재고는 반품하는 거래 형태이다. 특정매입 판매 방식은 안 팔린 재고는 반품할 수 있으니 재고에 대한 위험을 백화점이 지지 않는 방식이다. 임대 매장은 갑과 을, 두 가지 형태로 나뉘는데 '임대갑'은 백화점 내의 식당가와 같이 판매금액과는 관계없이 임대료만 수취하는 매장이며, '임대을'은 주로 명품 매장들로 낮은 임대료와 함께 판매금액에 따라 수수료를 받는 방식이다. '임대을'은 약간의 임대료를 제외하면 특정매입 판매 방식과 거래구조상 큰 차이는 없다. 따라서 유통업체의 거래형태는 크게 직매입 판매, 특정매입 판매, 임대업의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거래형태별 회계처리

거래 형태가 세 가지로 나뉘는 만큼 유통업체의 회계 이슈는 수익의 인식과 관련되어 있다. 회계에서 말하는 수익은 매출액을 말한다. 일상생활에서는 이익이나 수익이나 다 비슷한 뜻으로 사용하지만 회계에서는 수익은 매출액이고, 이익은 매출에서 비용을 빼고 남은 잔액을 의미한다.

회계기준에 따르면 직매입 판매 방식과 특정매입 판매 방식은 수익 인식 방법에서 차이가 난다. 직매입 판매 방식은 본인이 직접 참여한 거래로 판단하고, 특정매입 판매 방식은 단순히 판매 대리인의 역할을 한 것으로 구분하고 있다. 만약 백화점에서 구스다운 점퍼를 매입하여 판매한다고 가정하자. 구스다운 점퍼가 팔리지 않고 봄이 된다면 이 구스다운 점퍼를 제 가격에 팔 수 없을 것이다. 판매되지 않고 재고로 남은 구스다운을 백화점에서 책임을 져야 한다면 직매입 판매 방식이 되는 것이고, 해당 브랜드에 반품처리 한다면 특정매입 판매 방식이 된다. 이처럼 재고의 가격 하락이나 유행이 지나 판매되지 않는 것에 대한 위험을 부담하는 것을 재고에 대한 전반적인 위험을 진다고 표현한다

결론적으로 유통업체가 본인으로 거래를 한 직매입 판매 매장은 판매액 전체를 수익으로 인식하고, 대리인으로서 거래하는 특정매입 판매 매장의 경우 판매에 따른 판매수수료만 수익으로 인식하게 된다. 숫자로 예를 들면, 백화점에서 1만원짜리 상품을 판매하면 직매입 상품의 경우 1만원을 매출로 인식하지만, 특정매입 판매분의 경우 수수료율이 30%라면 판매수수료인 3000원만 매출로 인식해야 한다. 한편 임대 매장의 경우에는 매월 임대료를 수익으로 인식하면 된다.

정리해보면 임대 매장을 제외한 두 가지 판매 방식에서 수익인식 금액의 차이가 발생하는데 그것의 가장 결정적인 원인은 상품재고에 대한 전반적인 위험을 유통업체에서 부담하는지 여부이다.

유통업 회계처리기준의 역사를 살펴보면 2003년도까지는 특정매입분도 총액으로 회계 처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2004년도부터 특정매입분은 수수료만 수익으로 인식하도록 회계기준이 개정되었고, 그로 인해 유통업체 간의 순위도 바뀌었다. 특정매입분에 대한 수익인식 기준을 총액이 아닌 수수료(순액) 기준으로 변경하자 신세계가 22년 만에 처음으로 롯데쇼핑을 제치고 업계 1위에 오르기도 했다. 회계기준 개정으로 외형(매출액)의 감소가 일어났기 때문에 각 업체별로 반발이 매우 거셌다. 회사의 영업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는데 회계기준 개정의 영향으로 매출액이 대폭 하락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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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블랙프라이데이의 미국 월마트 매장. 온라인으로 주문하고 오프라인 매장에서 픽업하라고 독려하고 있다./사진=손재권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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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진정한 의미(?)의 블랙프라이데이가 없는 이유

미국의 블랙프라이데이가 더 이상 미국만의 행사는 아닌 것 같다. 인터넷/모바일 쇼핑의 발달로 국내에서도 미국 제품을 직접 구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직구 시장의 활성화로 사람들은 블랙프라이데이를 '블프'라는 애칭(?)으로 부를 정도이다. 블랙프라이데이의 기원은 1900년대 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미국인들은 추수감사절 시기에 수확한 농작물을 팔아 금전적 여유가 생겨 평소보다 소비를 많이 증가시켰다고 한다. 상점들은 장부를 작성할 때 적자일 때는 빨간 잉크로, 흑자일 때는 검은 잉크로 기록했는데, 이 시기에 연중 처음으로 흑자가 발생하여 장부에 빨간 잉크(red ink) 대신 검은 잉크(black ink)로 기록했다는 것에서 '블랙'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20세기 후반 미국 메이시스(Macy's) 등 대형 백화점들이 블랙프라이데이 이후 크리스마스 시즌까지 대폭 할인을 해주면서 '쇼핑하기 가장 좋은 기간'으로 명성을 얻었고, 상품 재고를 다음해로 넘기느니 값을 후려쳐서라도 팔아 치우자는 유통업자들의 판매정책이 더해지면서 현재의 블랙프라이데이가 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한국에는 왜 진정한 의미의 블랙프라이데이가 없을까. 이는 앞서 살펴 본 우리나라 유통업체의 거래구조에 기인한다. 우리나라 유통업체의 대부분이 반품을 조건으로 납품 받는 특정매입 거래를 하고 있기 때문에 유통업체가 책임지는 재고가 없다. 유통업체에 재고가 없으니 제대로 된 블랙프라이데이를 열 수가 없다. 아웃도어 의류의 경우 백화점에서 미판매된 재고는 해당 브랜드의 아웃렛 매장에서 판매되고, 아웃렛 매장에서도 판매되지 않은 재고는 소셜커머스에서 판매하는 유통 구조를 가지고 있다. 만약 우리나라 백화점 등 유통업체가 대부분이 직매입 거래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재고에 대한 위험을 떠 안아야 한다면 미판매 재고를 '땡처리'라도 해 판매할 것이다. 원가라도 건져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나라에 제대로 된 블랙프라이데이가 없는 이유는 유통업체의 거래 구조상 유통업체가 가지고 있는 재고가 없기 때문이다.

[이재홍 KEB하나은행 기업컨설팅센터 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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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홍 KEB하나은행 기업컨설팅센터 회계사


*공주사대부고를 거쳐 한양대 경영학부를 졸업하였습니다. 공인회계사와 세무사 자격이 있으며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에서 회계감사와 재무자문 업무를 수행하였습니다. 현재는 KEB하나은행 기업컨설팅센터에서 중소기업을 돕기 위해 기업전략 수립, 내부통제 개선 등과 회계, 세무자문(가업승계, 상속세·증여세) 업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이것이 실전회계다(공저)'와 'LOGISTAR FORECAST 2017(공저)'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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