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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1 (화)

[신문전용]“남편이 못 만나는 분들과 소통하는 것, 그게 제 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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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부인 김정숙씨

별명이 이미 ‘유쾌한 정숙씨’다. 타고난 친화력과 활달하고 명랑한 성격으로 남편의 다소 고지식해 보이는 이미지를 보완해 왔다는 평가다. 두 번째 대선 도전에 나선 문재인(64)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부인 김정숙(63)씨. 현재 가장 유력한 퍼스트레이디 후보인 그를 만나 어떤 영부인이 되고 싶은지 물었다. 대통령 후보로서 남편의 다양한 면모, 내조의 고충과 보람을 말하던 그는 광주 민심을 이야기하자 이내 감정이 북받쳐 두 눈 가득 눈물이 고였다.

-최근 몇 달간 사람들 만나느라 굉장히 바빴다.

“남편이 일정에 쫓겨 못 만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게 내 일이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 많이 들으려 한다. 익숙하지 않아 만나러 갈 때 항상 긴장하고 마치고 와서는 힘들다. 두려운 일이지만 해야 할 일이고,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다시는 실패하고 싶지 않다.”

-지난 추석 때부터 매주 1박2일로 광주에 다닌 걸로 안다. 호남 민심에 공을 많이 들이고 있는데.

“2012년 낙선하고 도와주신 분들과 시민단체에 인사 말씀을 드리러 갔었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광주 아파트 밀집촌을 지나는데 그 불빛 속에서 내가 앓았던 절망감, 상실감을 느꼈다. 우리를 지지해준 광주의 92%가 이 아픔을 안고 있구나 생각하니까 너무 가슴이 아팠다. 광주에서는 아무 연고도 없는 저희를 92%라는 압도적 지지로 찍어줬다. 오로지 정권교체의 일념이었다. (울먹이며) 하지만 실패하고 나니 다가가기가 힘들었다. 그 감정들을 해소해야 했다. 그분들의 실망, 상처를 위로해 드리고, 나도 열심히 했던 걸 위로받고 싶었다.

그래서 언론인, 정치인은 안 만난다는 나름의 원칙을 정했다. 그래야 나를 만나려는 분들이 더 진솔하게 얘기를 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반년 가까이 했더니 그분들이 ‘이제 여기 오지 말고 전남, 전북 다른 곳으로 가라’고 하더라. ‘아, 내가 진심을 여는 순간, 그분들이 마음을 열어 준비했던 말을 하는구나. 그게 되는구나’ 생각했다. 요새는 도서지역을 다닌다. 지난 대선 때는 너무 시간에 쫓겨 30분만 지나면 다른 곳으로 옮겨 다녔는데,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이번에는 1박2일로 만난다. 사람들도 처음에는 말을 꺼리다가도 30분만 지나면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한다. 내 자랑은 아니지만.(웃음)”

-문 후보가 고마워하며 잘해주겠다.

“남편이야 항상 나한테 잘해줬다. 신뢰를 주고, 따뜻한 사람이다. 내가 힘들어하는 것 같으면 자기가 다 해주는 사람이니까. 근데 말투가 좀 그렇다. 경상도 남자고, 법조인으로, 피란민 집안의 가장으로 어렵게 살아서 말에 대한 책임감이 너무 크다. ‘여보, 말을 할 때는 이런 얘기도 하는 거야’ 내가 알려준다.”

-문 후보께서 대학 시절 시위하다 최루탄을 맞아 실신했을 때 물수건으로 얼굴을 닦아준 인연으로 연애를 시작하셨다.

“친구의 오빠가 문 후보랑 같은 법대에 다녔다. ‘재인이가 멋있는 친구인데 축제 같은 때 늘 혼자 온다’며 1학년 축제 때 소개해줬다. 남자가 무슨 양복 정도는 입고 올 줄 알았는데, 이상한 초록색 잠바에 회색 바지를 턱 입고 왔더라. ‘내가 지금 대접받고 있는 거야?’ 싶으면서 별로였다. 이듬해 유신반대 시위에서 최루탄 맞고 쓰러진 걸 물수건으로 닦아주다가 이렇게 됐지만.”

-젊은 시절 미남 아니었나.

“잘 생겼다 못생겼다 그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젊어서는 눈이 굉장히 크고 눈빛이 활활 타올라서 사람들이 그 눈빛에 압도당했다. 그래서 결혼 직후에 커다란 안경을 씌웠다. 눈빛을 가려야만 소송 의뢰 온 사람들이 겁을 안 낼 것 같았다. 이 사람은 내가 무슨 일을 하든 자유롭게 해줄 것 같아서 좋았다. 나는 성악가니까 외국에 나가는 큰 꿈도 꾸었는데, 여자는 이렇다는 둥 하지 않을 것 같은 유일한 사람이었다. 가치관이 잘 맞았다.”

-두 분 사진을 보면 남편보다 더 애정표현에 적극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고 얘기되고는 있다. 그게 사진마다 왜 그런지 모르겠더라. 사실 남편은 끊임없이 나를 좋아하는데, 왜 사진에는 항상 나만 좋아하는 눈빛으로 나오는지.(웃음)”

-5년 전과 비교해 정치인으로서 남편의 달라진 점은.

“많이 달라졌다. 절박하다. 지난 대선 때 정치초년생인 남편을 후보로 세운 건 꼭 정권교체를 해야겠다는 시대적 호명이었다. 그걸 못 이루고 난 후 역행의 시대를 보면서 본인이 실패한 책임을 많이 느꼈던 것 같다.”

-어떻게 내조하나.

“남편이 잠깐이라도 시간이 생기면 집에 와서 쉬는 걸 좋아한다. 나가려는데 예고도 없이 확 들어오면 짜증이 안 나는 건 아니다. 챙겨줘야 하니까. 하지만 대한민국을 위해서 내가 참는다.(웃음) 나가면 사람들이 알아보고 밥술이나 제대로 뜨겠나. 굉장히 예민한 사람인데 겉으로는 허허 웃지만 시선 속에서 피곤할 거다. 조용한 환경에서 잠도 좀 깊이 자고, 안정할 수 있게 해준다.”

-문 후보께서 정치적 고민이나 바깥에서 겪은 속상한 일에 대해서 잘 얘기하는 편인가.

“잘 안 한다. 내가 잘 모르기도 하고. 덕분에 나는 정치에 물들지 않았다. 대접받은 적이 없기에 한국 정치의 고질병이라고 하는 권력의 병폐, 남용, 그걸 나는 안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

-남편을 보며 이러려고 정치를 했나, 자괴감 들었던 때는.

“많다. 욕을 많이 먹으니까. 잘못한 행위에 대해 욕을 먹으면 반성이라도 하겠는데 자기들 이익을 위해서 하지도 않은 것을 욕하면 너무 속상하다. 남편이 정치를 한 후 내가 말이 험해졌다.(웃음) 남편은 잘 참는데, 난 말로라도 디스를 한다. 남편은 ‘그만하지. 도대체 왜 그러나, 사람이’ 하는데, 그러면 나는 ‘내가 대신 말해주니 속이 편하지?’ 한다.”

-최근에 가장 속상했던 때는.

“지난 연말 JTBC에서 손석희 사장과 인터뷰 했을 때. 이 사람이 생각이 너무 많아서 말이 엉켜버린 거다. ‘어휴, 그렇게밖에 못해?’ 그 다음날이 광주 내려가는 날이었는데, 밥도 국도 안 해놓고 확 가버렸다. 나중에 들으니 즉석밥 사다가 먹었다더라.”

-미셸 오바마가 새로운 퍼스트레이디의 모델로 부상했다. 영부인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나답게 하는 게 제일 좋을 것 같다. 내가 가진 소통능력을 살리고, 과하지 않게 지금처럼만 하면 되지 않을까. 남편이 정치가로서 해야 할 일을 하게끔 돕는 게 내 몫이지만, 국민이 바라는 영역을 넘어서면 그건 나대는 거다. 요즘 많이 생각하는 건 여성문제다. 결혼을 했든 안 했든, 여성이 살기 좋은 나라가 되도록 많은 전문가들과 다양한 연구, 공부를 해보고 싶다.”

-최근 ‘모성은 여성의 본능’이라는 발언이 논란이 됐다.

“여성이 아이를 낳았으면 엄마 품에서 적어도 2년은 키울 수 있도록 국가가 안정적으로 지원해줘야 한다는 얘기였다. 지금은 있는 휴가도 못 쓰고, 병원에서는 간호사들이 임신을 순번제로 하는 흉악한 현실 아닌가. 육아를 엄마만 하느냐는 논란으로 번져서 그렇지. 애는 다 같이, 아빠도 키워야 하는 건 당연하다.”

박선영 기자 aurevoir@hankookilbo.com

김정숙 여사

-1954년 서울 출생

-1973년 숙명여고 졸업

-1978년 경희대 성악과 졸업

-1982년 서울시립합창단 단원

-종교: 천주교(세례명 골롬바)

-2012년 ‘정숙씨 세상과 바람나다’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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