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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부탄 첫 번째 이야기] '행복지수 1위 나라' 부탄 사람들 만나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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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냐' 물으니 '왜 행복하지 않냐'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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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설산 아래 불교 문화와 신화가 현실로 실재하는 곳, 부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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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탄관광위원회 초청으로 1주일간 부탄 역사·문화 탐방 프로그램에 다녀왔습니다. 히말라야 동쪽의 작은 나라 부탄은 8세기 당나라에서 활동하던 신라 고승 혜초(704~787)가 지났던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혜초는 구법승으로 구도의 길을 따라 걷고 『왕오천축국전』이라는 기록을 남겼습니다. 당시 인도 북부의 활기 넘치는 사원을 찾아 붓다의 기록을 모으고 현지 스님과 교우했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부탄의 역사보다 현재의 부탄에 더 호감이 갔습니다. ‘은둔의 왕국’ ‘지구 상의 마지막 샹그릴라’ ‘행복지수 1위의 나라’ 아닙니까. 1인당 GNP가 우리의 10분의 1 수준인 3000달러에 미치지 불과하지만, 국민 대다수가 행복하다고 느끼는 나라. 하루 7시간 노동이 철저히 지켜지는 나라. GNP보다 GNH(Gross National Happiness·국민총행복)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라가 바로 부탄입니다.

부탄의 서민, 농민들도 그렇게 생각할까 궁금했습니다. 1월에 한국을 방문한 레케이 도르지 부탄 경제 장관은 “부탄도 빈부 격차가 있으며, 특히 도시와 농촌 간 삶의 질이 다르다”고 했습니다. 가기 전부터 작정하고 물어볼 계획을 세웠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당신은 지금 행복하다고 느낍니까?’ ‘무엇이 당신을 행복하다고 느끼게 하나요?’ 라는 질문은 억지스러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들은 이 질문에 ‘당신은 왜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나요?’ 반문했습니다.

여고생 넷 “대학 입시 두렵지 않아요”

부탄의 수도 팀푸 시내에는 시계탑이 하나 있습니다. 콘크리트 바닥 광장에 먼지 쌓인 시계탑이 서 있고 주변으로 호텔과 카페, 특산품을 파는 가게들이 도열해 있습니다. 우리로 치면 작은 읍 정도 되는 규모의 거리지만 부탄에서 가장 활기 넘치는 곳입니다. 간혹 손을 잡고 데이트 중인 커플도 보이는데, 가이드는 ‘아마도 결혼한 커플일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부탄에서 가장 개방적인 곳이지만, 길거리에서 적극적인 애정 표현을 하는 미혼남녀 커플은 많지 않습니다. 주변의 시선 때문에 공개 연애를 꺼린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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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탄 수도 팀푸 시계탑에서 만난 네 소녀. 왼쪽부터 남겔 라마, 텐데이 양촘, 페마 라덴, 삼펠마 양게. 대입을 앞두고 있지만 근심 없는 표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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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치에 앉아 오후의 햇살을 즐기는 네 명의 ‘여고생’을 만났습니다. 고교를 졸업하고 대입을 준비하는 수험생들입니다. 남겔 라마, 텐데이 양촘, 페마 라덴, 삼펠마 양게. 나이는 17~18세. 말 한 마디 뱉고 까르르 웃는 양이 딱 ‘열여덟 처녀’입니다.

부탄은 교육열이 높습니다. 고3 수험생의 60% 정도가 대학에 진학합니다. 우리처럼 입시를 치르고 점수에 맞춰 대학에 지원합니다. 더러 대학에 따라 따로 시험을 치르는 곳도 있고, 2차로 면접을 보는 것도 우리와 유사합니다.

넷은 고향은 다르지만 고등학교 동문으로 팀푸의 도서관에서 대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아직 대학이 결정되진 않았지만 “불안하거나 걱정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진학하듯, 자연스럽게 대학에 진학하게 될 것을 믿는다고 했습니다. 또 모두 “남자친구가 없다”고 했는데, 이유를 물으니 “우리는 남자를 만나기엔 너무 어리다”고 답했습니다. 더러 남자친구가 있는 친구도 있지만 “부모님 몰래 만난다”고 합니다.

열여덟 청춘들에게 ‘꿈이 무엇이냐’ 물었습니다. 평소 그런 생각은 안 해봤는지, 아니면 질문이 뜬금없었는지 서로 얼굴만 쳐다보고 아무 말 않다가 넷 중 가장 활달한 페마가 “기회가 된다면 한국 남자를 만나 한국에서 살고 싶다”며 “지상욱같은 잘 생긴 남자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그러고는 다시 까르르 웃었습니다. 부탄의 젊은이에게도 K-POP을 비롯해 드라마·영화 등 한국 대중문화는 인기입니다. 드라마 한 편을 다운로드 받는 데 드는 비용은 35눌트룸(Nu·약 500원). 소득이 없는 학생들에겐 부담되는 돈이지만 거의 모든 학생들이 받아 본다고 합니다.

나중에 SNS 친구맺기를 통해 더 알고보니이들은 부탄에서 가장 등록금이 비싸고 명문이라 알려진 푸나카(Punakha)의 한 사립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부탄에 사는 한국인 학생도 이 학교를 다닌다고 합니다. 부탄은 대학까지 모든 교육이 무상으로 제공되지만, 사립학교는 등록금을 내야 합니다. 이들에게 굳이 ‘지금 행복하냐’고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부탄에서 만난 사람들 중 가장 행복해 보이는 소녀들이었습니다.

대학 2학년 "한달 용돈 8000원 뿐이지만…"

부탄에서 가장 아름다운 종(Dzong) 중 하나인 파루 종(Paro Dzong)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서 님 도르지(21)를 만났습니다. 종은 불교 사원과 행정 관청, 적 방어 3가지 목표를 위해 건설한 요새입니다. 지금도 사원과 관청으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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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탄에서 가장 아름다운 종(사원이자 성) 중 하나인 파로 종에서 만난 님 도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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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이 먼저 인사를 건네왔습니다. “해질녘의 종이 하루 중 가장 아름답다”고 말하는 이 ‘낭만 청년’은 파루 국립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하고 있으며, 졸업 후 초등학교 선생님이 될 것이라고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부탄 말로 ‘님(Nim)’은 태양(Sun)을 뜻합니다. 하지만 님의 인생은 그리 밝지 못했습니다. 아버지는 님이 태어나기 전에 집을 나갔고, 어머니는 님을 가진 채로 다른 남자에게 시집을 갔습니다. 태어나자마자 할머니에게 보내진 님은 이후로 한 번도 부모님과 같이 산 적이 없다고 합니다.

“친아버지는 술에 취해 어머니를 많이 때렸다고 해요. 의붓아버지와는 한 번도 교류한 적이 없고, 현재는 어머니와도 연이 닿지 않습니다.”

드라마 소재로 어울릴 법한 슬픈 개인사를 지닌 님은 그러나 의연했습니다. 그는 “단 한 번도 아버지와 어머니를 원망한 적이 없다”며 “부모 없이도 잘 성장했고, 학교에 들어간 이후로는 기숙사에서 지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나를 낳아준 것만도 감사하다. 두 분 모두 행복하기를 바란다”고 했습니다.

그는 학교 근방에서 친구 두 명과 함께 자취를 합니다. 한 달 임대료는 2500Nu(약 4만원). 관리비를 포함해 1인당 1000Nu(1만5000원)씩 내고 있습니다. 부탄은 국공립대학에 재학 중인 학생에게 한 달에 1500Nu(2만5000원)을 지원해줍니다. 집값으로 1000Nu를 내고 나면 남는 돈은 500Nu(약 8000원). 그는 이 돈으로 한 달을 생활해야 합니다. 하지만 청년의 눈빛과 말투는 당당하고 힘이 있었습니다. 부탄서 만난 젊은이 중 가장 진취적이고 자신감 넘치는 청년이었습니다. 부탄은 ‘용의 나라’라는 뜻입니다. 그가 입을 열 때마다 툭 불거진 광대뼈와 눈두덩이 잔 근육이 살아 움직였습니다. ‘용의 기상’을 엿보는 듯 했습니다.

스무살 취준생 “취직보다 가족이 더 소중”

남겔 람(20)은 취준생입니다. 부탄도 우리처럼 구직난, 측히 젊은 층의 취업난이 사회적 이슈입니다. 외국인 관광객에 문호를 개방한 이후 도시와 농촌 간 소득 격차는 갈수록 벌어지고 있으며, 시골 젊은이들은 일자리를 찾아 수도 팀푸로 모여들고 있습니다. 예전의 중국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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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탄의 성지 탁상 곰파에서 만난 남겔 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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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나카의 한 고교를 졸업하고 부모와 함께 살고 있는 남겔은 취업시험을 치르기 위해 하루 전날 파루(Poro)에 왔습니다. 인구 4만의 푸나카는 부탄에서 다섯 번째로 큰 도시입니다. 파루는 여섯 번째 도시지만 국제공항이 있어서 일자리는 더 많습니다. 파루에는 관광객을 위한 호텔·리조트가 40여개 있습니다.

지난해 고등학교를 졸업한 남겔은 수능 영어시험에서 44점을 받았습니다. 55점 이하는 대학에 진학하기 어려운 점수라고 합니다. 대학을 포기하고 공무원시험을 치렀지만 떨어졌고, 다시 두 번째 시험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남겔은 “취준생으로서 스트레스가 없는 건 아니지만 언젠가는 직업을 갖게 될 것”이라고 낙관했습니다. 그는 부모와 오빠, 언니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남겔은 “돈은 중요하지 않다. 돈이 필요하면 일을 하고 있는 언니가 조금씩 도와준다”며 “부모님과 형제들이 한데 모여 사는 게 더 큰 행복”이라고 했습니다.

1주일 후면 스물한 살이 되는 남겔은 아직까지 한 번도 남자친구를 사귄 적이 없습니다. “부모님이 ‘결혼할 남자가 아니면 만나지 말라’고 했다”며 본인도 그럴 생각이라고 했습니다. 남겔을 만난 장소는 부탄 사람들이 가장 성스러운 장소로 여기는 탁상 곰파(Taksang Gompa·곰파는 사원이라는 의미)였습니다. 남겔은 이곳에서 ‘일자리를 구하게 해 달라’가 아니라 “가족의 행복”을 빌었습니다.

스물셋 가장 “한국 음식 배워 레스토랑 내는 게 꿈”

탁상 곰파에 이어 외국인 관광객이 필수로 들르는 관광지 중 하나가 푸나카의 치미 라캉(Chime Lhakang) 사원입니다. 이 마을엔 부탄 사람들이 붓다 다음으로 존경하는 드룩파 쿤리(Drukpa Kunley·1455~1529) 스님에 관한 전설이 내려 옵니다. 드룩파 쿤리는 라마(스님을 통칭하는 말)로서 계율을 벗어던지고 기행을 일삼은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 중 하나가 거대한 남근을 버젓이 내놓고 다니는 곳마다 아녀자들을 농락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당시 히말라야 인근 불교 사원에 만연해 있는 라마의 권위주의를 꾸짖기 위해서였습니다. 드룩파 쿤리는 악마를 제압해 치미 라캉 사원에 가둔 성자이기도 합니다. 기행을 일삼았던 ‘미친 성자(Divine Madman)’이지만, 부탄 불교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스님으로 존경받고 있습니다.

드룩파 쿤리의 기행적인 전설 때문에 치미 라캉은 다산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부탄의 신혼부부는 누구나 한 번쯤 이 곳에 와서 ‘아들딸을 점지해 달라’고 빕니다. 절 아래 사하촌에는 드룩파 쿤리에 대한 존경의 뜻으로 거대한 남근을 그려놓았습니다. ‘남근 벽화’ 마을입니다. 너무 거대해 민망할 정도지만, 이 동네 사람들은 수치심보다 자부심이 더 강했습니다. 드룩파 쿤리가 이 마을에 온 16세기 이래 지금까지 부탄은 농경사회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다산은 곧 노동력을 상징하죠. 드룩파 쿤리의 상징인 남근은 다산을 기원하는 뜻과 함께 나쁜 기운이 집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는 토속 신앙을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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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승 두룩파 쿤리의 전설을 간직한 치미 라캉 사원 아래서 만난 도르지와 샹게 그리고 딸 킬레초키. 이 마을에서 남근 벽화는 거의 벽지와 같다. 집집마다 남근을 그린 벽화와 남근석, 나무로 만든 남근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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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르지(23)와 샹게(23) 부부는 이 지역 출신은 아니지만, 도르지가 이곳 리조트의 주방에 취직하면서 치미 라캉 사원 아래 마을로 이사 왔습니다. 남편은 조리사로 일하며 한 달에 1만5000Nu(약 25만원)을 벌고, 아내는 탕카(불교 미술) 갤러리 점원으로 일하며 5000Nu(약 8만원)을 받고 있습니다. 18개월 된 딸을 키우고, 미래를 준비하기엔 결코 많은 돈이 아니지만, 도르지는 “꼬박꼬박 저축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주로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음식을 내는 도르지는 “지금은 중국 음식밖에 못하지만 조만간 한국 음식을 배울 것”이라고 했습니다.

부부가 열심히 돈을 모으는 이유도 한국으로 오기 위해서입니다. 부탄 사람이 한국으로 직업 연수를 떠나려면 큰 돈이 필요합니다. 비자 등 서류가 복잡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한국에서 제대로 된 한국 음식을 배우고 돌아와 이곳에서 나의 레스토랑을 내는 것이 꿈”이라고 했습니다. 아내 샹게는 “아들을 하나 더 낳는 것이 소원”이라며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고 합니다. 사원에 가서 ‘아들을 낳게 해 달라’ 빌면 생긴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이를 낳기 전에 다시 절에 찾아가 스님에게 아이의 이름을 받으면 된답니다. 지금 딸의 이름인 ‘킬레초키’도 치미 라캉의 주지 스님이 지어준 이름입니다. 가이드는 “얼마 전 아이를 낳지 못 하는 일본인 부부가 치미 라캉에 다녀간 후 아이가 생겼다고 들었다”며 전설에 소문을 하나 더 얹었습니다. 비록 우연의 일치라고는 하지만, 흥미진진한 마을입니다.

히말라야 소국의 강인한 여성들

부탄은 아주 작은 나라지만 제법 괜찮은 관광 인프라를 갖추고 있습니다. 우리로 치면 관광호텔 정도 되는 2~4성급 호텔이 수백 여 개 됩니다. 호텔 인력은 거의 여성이 점하고 있습니다. 조리는 물론 객실 청소, 웬만한 수리도 여직원이 담당 합니다. 릴라(25)과 릴라(26) 그리고 리첸(25)은 푸나카의 3성급 호텔인 푸나샹추 코티지(Punatsangchu Cottage)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생김새는 다르지만 이름이 같은 두 명의 릴라는 ‘릴라1’ ‘릴라2’로 불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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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나강이 내려다보이는 푸나샹츄 코티지에서 일하는 '릴라1'과 '릴라2' 그리고 리첸(사진 왼쪽부터). 보다 나은 미래가 올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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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 4년 차인 세 여성의 한 달 월급은 4500Nu(약 7만원). 첫 월급은 3500Nu(약 6만원)이었다고 합니다. 1주일간 부탄을 돌아다니며 만난 사람들 중 가장 적은 월급을 받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세 여성 중 아리안 계통의 얼굴을 한 '릴라2'만 기혼 여성입니다. 소방공무원인 남편의 월급은 3만5000Nu(약 55만원). 공무원 치고도 꽤 높은 월급이라는데 "푸나강 댐 건설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어 수당이 높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3성급 호텔의 월급은 대략 5000Nu(약 8만원)이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지금은 적은 월급을 받고 있지만 장래엔 돈을 많이 받고 싶다"고 했습니다. 충분치 않은 월급에 대해선 “앞으로 좋아지지 않겠냐”고 반문했습니다. 낙천적이라고 해야 할지 순종적이라고 해야 할지 선뜻 판단이 서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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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팀푸의 한 호텔에서 만난 샹게 하든(왼쪽)과 예시 하든. 히말라야 설산을 닮은 강인한 여성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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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게 하든(26)과 예시 하든(28)도 수도 팀푸의 한 관광호텔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샹게는 주방, 예시는 객실을 담당합니다. 손가락에 반지를 여러 개 하고 있어 ‘교제 중인 사람이 있느냐’ 물었더니 이내 “이혼했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그리곤 “두 살짜리 딸을 혼자 키우고 있다”고 했습니다.

부탄은 전통적으로 여성의 사회활동이 활발한 나라입니다. 거의 모든 여성이 직업을 갖기를 원하며 적극적으로 일을 찾습니다. 모계사회였던 티베트의 영향을 받은 측면이 큽니다. 지금도 부모가 사망하면 아들이 아닌 딸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일이 적지 않다고 합니다.

예시는 각각 여섯 살, 두 살 짜리 딸이 있습니다. 그는 5개월 전까지 산악 지역 공립학교 병설 유치원 선생님이었습니다. 큰 딸이 올해 유치원에 갈 나이가 되자 아이의 교육을 위해 큰 도시로 나왔습니다. ‘맹모삼천지교’는 히말라야의 작은 나라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었습니다. 호텔에서 일하며 받는 월급은 5000Nu(약 8만원). 선생님 월급보다 적습니다. 사회적 지위도 선생님에서 호텔 하우스키퍼(Housekeeper)로 낮아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시는 “지금이 행복하다”고 했습니다. 일단 팀푸가 산악 지역보다 따뜻하고, 아이들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부탄은 부부가 맞벌이를 하게 되면 우리처럼 조부모가 육아를 돕습니다. 그는 오전에 출근해 3시간 근무 후 퇴근하고, 저녁에 다시 나와 4시간을 일합니다. 걸어서 10분 거리에 집이 있어 쉬는 시간엔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습니다. 부탄은 하루 7시간 노동을 법으로 정하고 있으며, 거의 법대로 지켜지고 있다고 합니다.

하루 만원 버는 팀푸의 택시운전사

팀푸의 택시운전사 킨장 도르지(38)는 부탄에서 만난 사람 중 가장 친절하고 가장 부지런한 사람이었습니다. 호텔에서 서점에 가기 위해 호텔 매니저에게 '택시를 불러 달라'고 하자 5분도 되지 않아 그가 달려왔습니다. 호텔 매니저는 그와 몇 마디 한 뒤 “시내 왕복 택시비는 300Nu(약 5000원)”이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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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탄에서 만난 '가장 친절한 사람' 킨장 도르지. 팀푸의 택시운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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킨장 도르지는 낮에는 공무원입니다. 팀푸의 유네스코 사무실에서 운전기사로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점심시간 1시간을 빼고 7시간 일합니다. 오후 5시가 되면 자신의 택시를 몰고 아르바이트를 합니다. 택시를 부른 시간은 오후 6시. 오늘의 두 번째 손님을 태운 겁니다. 서점에 가기 전 “책을 사야 하는데 부탄 돈이 없다”고 하자 그의 친구가 운영하는 신발가게로 데려갔습니다. 킨장은 “시내 환전소보다 좋은 환율로 돈을 바꿀 수 있다”고 했습니다. 3월 현재 팀푸 시내에서 달러와 부탄 화폐(Nu) 간 환율은 1달러 60~69Nu입니다. 그의 친구 가게에서 1달러 68Nu에 환전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우리는 시내에 택시를 세워두고 서점 투어에 나섰습니다. 부탄에서 가장 유명한 트레킹코스인 스노우맨트렉(Snowman Trek) 지도를 사려 했지만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결국 헛걸음만 했습니다.

킨장이 나를 태우고 호텔을 나선 지 1시간이 흘렀습니다. 우리는 시내를 돌아다니다가 시계탑 근방에서 그의 큰딸을 만났습니다. 킨장은 이제 서른여덟 살이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한 딸이 있습니다. 그는 “올해 대학에 가야 하는데 점수가 50점을 간신히 넘는다"며 “학교에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크게 근심하는 눈빛은 아니었습니다. “돈이 있는 집은 국공립대학에 못 가면 인도로 유학을 보낸다. 하지만 나는 돈이 없어 그렇게 해줄 수는 없다. 하지만 큰 걱정은 안한다. 대학에 못 가면 직장을 구하면 된다. 직장을 구하지 못하면 집안 일을 하면 된다. 동생들을 돌보거나….”

그는 5년 전 은행에서 3만Nu(약 500만원)을 대출받아 택시를 구입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대출금을 모두 갚았다고 합니다. 그는 “부탄의 택시 번호판 중 P가 들어간 차는 프라이비트(Private)을 뜻한다며 이 차는 이제 내 차”라고 했습니다.

오후 7시가 넘은 시간, 호텔로 돌아와 원래의 택시비보다 200Nu을 얹어 500Nu을 주었습니다. 그는 “땡큐 선생님(Thank you Sir)"을 연발하며 차를 돌렸습니다. 아마도 그는 그 시간 이후 1명의 손님을 더 태우거나 아니면 그대로 퇴근했을 겁니다. 손님을 더 찾지 못했다면 그는 800Nu(1만2000원)을 손에 쥐고 집으로 돌아갔을 겁니다.부탄의 과일값은 아주 비쌉니다. 치킨 값도 비쌉니다. 가족을 위해 과일 한 봉지도 치킨 한 마리도 선뜻 사지 못할 금액입니다. 하지만 그는 누구보다 행복해 보였습니다.

‘인심은 없는 사람에게서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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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 심는 농부들. 새참은 버터로 만는 솔티와 튀긴 쌀이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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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 중 하루는 부탄 중부에 위치한 고원마을 포지카(Phobjikha)에서 묵었습니다. 해발고도 3000m가 넘는 곳입니다. 전 세계 어느 고원마을이나 주식은 감자와 밀·메밀입니다. 이 마을도 봄을 맞아 감자심기가 한창이었습니다. 규모가 큰 공동농장은 마을 사람이 한 데 모여 울력을 하고, 개개인이 경작하는 밭은 가족 노동이 주를 이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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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탄의 고산마을 포지카에서 감자 심는 농부. 그들의 주식이자 귀한 음식을 여행자에게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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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입구에서 새참을 하고 있는 동네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울력을 참여한 열에 여덟은 여성입니다. 우리 일행이 차에서 내리자마자 따뜻한 차를 대접했습니다. 티베탄(티벳인)들이 즐겨 마시는 수유차와 비슷한 솔트티(Salt Tea)입니다. 보통 ‘솔티’라고 부릅니다. 이들의 외모 또한 티베탄과 유사합니다. 아마도 이들의 조상은 히말라야 북쪽에서 넘어왔을 겁니다. 솔티는 찻잎을 끊인 물에 버터와 소금을 넣고 만든 차입니다. 소나 야크의 젖이 원료라 처음 마시는 사람은 약간 비릿할 수도 있습니다. 이 밖에도 예쁜 찬합에 가득 담긴 튀긴 쌀을 내놓았습니다. 찬합에 담긴 튀긴 쌀은 이들이 손님을 접대할 때 내놓은 최고의 성의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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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탄 고산마을 포지카에서 감자 심는 아낙과 그의 아들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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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지카를 비롯해 부탄의 시골마을에는 팜스테이(Farm Stay)라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부탄 전통 스타일의 민가에 머물며, 이들의 전통 부엌에서 밥을 먹고, 이들이 수 천 년 동안 잠자리로 삼은 방에서 잠을 잡니다. 자는 게 부담된다면 점심이나 저녁 식사 정도도 좋습니다. 이제는 찾아보기 힘든 우리의 예전 모습을 고스란히 체험할 수 있습니다 .

이들이 오늘 심은 감자를 모두 수확해서 판다 해도 외국인 여행자의 하루 경비도 되지 않을 겁니다. 부탄을 하루 여행하려면 외국인 여행자는 1일 200~250달러의 체제비를 내야 합니다. 하지만 이들에 비해 가진 것 많은 나는 이들을 위해 해줄 게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인심은 없는 사람에게서 난다’더니 딱 그 꼴이었습니다. 부탄 시골마을에서 느낀 행복의 모습이었습니다.

위에 열거한 이들 말고도 여러 사람을 만났습니다. 모두 ‘나는 행복하다’ ‘지금 행복하다’고 말했습니다. 얘기를 들어보면 평범한 일상을 사는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부탄 사람들은 아주 작은 것에도 ‘행복하다’고 느끼고 만족한다는 것입니다. 그저 낙천적이고 긍정적이라서 그런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행복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또 그들을 만난 1주일은 행복한 순간이었습니다. ‘행복은 늘 내 곁에 있다’는 사실은 일깨워 주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글과 사진=팀푸(부탄) 김영주 기자 humanest@joongang.co.kr

김영주 기자 humane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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