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세계 최대 모바일 전시회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2017’을 둘러본 국내 모바일 업계 종사자의 말이다. 그는 단순 서비스 홍보나 눈길끌기용으로만 VR이 쓰이고 있다고 했다. VR 기술이 구체적으로 우리 삶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지 고민의 흔적을 찾지 못했다는 설명도 붙였다. 올해 MWC에서는 이처럼 VR에 대한 부정적 목소리가 컸다.
개막 이틀째 ‘모바일 VR’이란 주제로 열린 컨퍼런스에서 흥미로운 조사 결과가 공개됐다. 온라인으로 미국 소비자들에게 물었다. “VR, 흥미를 느끼세요?”란 잘문에 “그렇다”는 답변은 16%에 불과했다. “흥미를 느끼지 않는다”는 답변이 71%로 가장 많았고, 13%는 “VR을 모른다”고 했다. 미래 혁신 기술로 VR을 지목한 사람이거나 이미 VR 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가슴이 덜컹 내려앉을만한 결과다.
‘포르노만이 살 길이다’라는 말이 있다. VR 산업이 폭발적 성장을 하려면 가상현실 속에서 육체적 욕구를 해결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뜻이다. 우스갯소리지만 한편으론 VR 산업성장의 키를 ‘콘텐츠’가 쥐고 있다는 말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앞선 조사에서도 VR에 흥미를 느끼는 사람 중 실제 VR 기기를 갖고 있는 사람은 10명 중 3명도 안됐다. 대부분 ‘선물이나 사은품’으로 받았다. 관심이 가도 지갑을 열만한 이유(콘텐츠)가 없기 때문이다.
2일(현지 시간) 폐막하는 올해 MWC에는 총 2200개 기업이 참여했다. 삼성전자, IBM, 퀄컴 등은 대부분 전시관에 VR 기기를 설치했다. 각자의 서비스와 기술을 가상현실에서 소개했다. 관람객들은 자율주행차, 5G 통신기술 등이 가져올 미래를 앉은 자리에서 봤다. 조선시대로 돌아가 칼을 휘두르거나, 미래로 가 외계인과 전쟁을 벌이는 B2C(기업과 소비자) 콘텐츠는 없었지만 작년보다 훨씬 풍부해진 VR 콘텐츠들을 보며 VR 산업의 빠른 성장을 감지했다면 기자가 너무 긍정적인 걸까.
가상현실 스토리텔링 기업 ‘RYOT’ 최고마케팅책임자(CMO) 몰리 스웬슨도 올해 MWC를 찾았다. 스웬슨은 한 컨퍼런스에서 “VR은 우리가 보고, 듣고, 경험하는 모든 경계를 허문다”고 말했다. RYOT는 가상현실을 통해 전쟁과 난민 생활을 전달하고, 빈민가 아이들에게 루부르 박물관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주기도 한다. 바르셀로나에서 검은색 바탕에 흰 글씨로 ‘RYOT’라고 적힌 차량을 곳곳에서 보며 이들이 허물고 있는 물리적 경계들을 떠올렸다.
앞선 조사를 뒤집어 보면 VR 산업을 이미 알고 있는 이들이 87%나 됐다. 페이스북이 오큘러스를 인수하고, 삼성이 기어VR을 발표하고, 구글이 카드보드VR를 공개한 게 2014년이다. 이후 크고 작은 후발주자들이 생겼다. 유튜브와 넷플릭스 등 콘텐츠 유통 공룡 기업도 VR 전용 서비스를 속속 출시하고 있다. 모두 3년 사이 벌어진 일이다.
월트디즈니사, 구글 등에게 1억 달러 투자를 받은 VR 콘텐츠 제작 및 스트리밍 서비스 스타트업 ‘JAUNT’ 창업자 아서 반 호프는 ‘모바일 VR’ 컨퍼런스에서 이렇게 말했다. “2017 is inflection year for VR(2014년은 VR 산업의 변곡점이 될 것이다.)”
VR 산업 발전이 턱없이 더디다는 견해가 맞는지는 두고 볼 일이다.
바르셀로나=서동일기자 d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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