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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5 (화)

[광화문에서/윤상호]김정은의 핵검(核劍)이 보이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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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왕좌에 앉아 위를 응시하는 신하(다모클레스)의 얼굴이 공포로 창백하다. 주변 사람들도 초조와 불안감으로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바로 옆에선 굳은 표정의 왕(디오니시우스)이 손을 들어 천장을 가리킨다. 그곳에는 한 올의 말총에 매달린 예리한 칼이 신하의 머리를 겨누고 있다. 당장 떨어질 것처럼 위태롭게….

19세기 프랑스 화가 펠릭스 오브레는 고대 그리스 이야기인 ‘다모클레스의 칼’을 같은 제목의 작품에서 이렇게 묘사했다. 권력의 위험성을 경고한 이 용어는 로마 공화정 때의 철학자 키케로가 인용해 유명해졌다. 이후 ‘일촉즉발의 사태’를 뜻하는 표현으로 정치인들의 입에 자주 올랐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1961년 유엔총회 연설에서 핵전쟁의 위험성을 비유한 게 대표적 사례다. 그로부터 1년 뒤 쿠바 미사일 사태로 미소 양국이 핵 전면전 위기를 겪은 뒤에는 핵위협의 상징적 표현이 됐다. 최근에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스위스 제네바의 유엔 사무국 연설에서 핵무기를 이에 비유해 조명을 받았다.

시 주석의 표현대로라면 대한민국은 그 칼날의 위협을 누구보다 절감하는 당사자다. 한국의 숨통을 겨눈 북한의 ‘핵검(核劍)’이 나날이 날카로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북한이 발사에 성공한 신형 중거리탄도미사일(IRBM)은 핵검의 결정판이다. 이 미사일은 연료와 산화제를 섞은 고체연료를 미리 충전했다가 언제든지 핵을 실어 날릴 수 있다. 발사 전 액체연료를 주입해야 하는 기존 미사일보다 기습 능력이 탁월해 킬체인(Kill Chain) 등 대북 방어수단으로도 막기 힘들다.

김정은의 다음 수는 불 보듯 뻔하다. 새 기술을 활용해 대대적인 미사일 성능 개량에 착수할 것이다. 한국을 사정권에 둔 스커드와 노동은 물론이고 미 본토를 겨눈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까지 고체연료화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최소 100개 이상의 핵탄두를 생산해 핵무기고를 채우는 작업도 병행할 것이다. 가공할 핵위협을 무기 삼아 도발과 대화의 화전양면 전술로 한국을 농락하면서 대남적화의 ‘결정적 시기’를 노리는 것이 최종 목표다. 평양의 김씨 세습왕조가 핵을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이유다.

하지만 우리 정치권의 상황 인식은 강 건너 불구경 수준이다. 정치적 셈법에 따라 오락가락하는 북핵 대응책은 국론 분열을 넘어 ‘핵 불감증’을 부추기고 있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둘러싼 소모적 정쟁이 그 증거다. 사드 찬반 여부로 ‘친미보수’와 ‘반미진보’로 내 편 네 편을 가르는 저급한 정치 공방은 안보를 갉아먹는 주범이다.

여야 대선 주자들의 안보관도 안이하기는 마찬가지다. 곧 현실로 닥칠 북한의 핵도발에 맞설 해법 제시는 둘째치고라도 사태의 절박성조차 제대로 인식하는지 의문스럽다. 북핵 해결과 평화통일 등 ‘총론적 공약’만 난무할 뿐 이를 실행할 각론은 눈을 씻고 봐도 찾기 힘들다. 이 판국에 군 복무기간 단축 등 ‘포퓰리즘 공약’을 남발하는 일부 주자들의 행태는 실소를 넘어 군 통수권자의 자격을 의심하게 만든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국가보위는 대통령의 핵심 책무다. 나라를 책임질 지도자라면 확실한 안보관을 밝히고, 구체적인 행동계획을 제시해야 한다. 대선 주자들이 이념과 정파를 떠나 대한민국의 정수리를 겨눈 김정은의 ‘핵검’을 막아낼 방도를 찾는 데 머리를 맞대길 바란다. 그것은 북한 핵 인질의 나락에서 대한민국을 구하는 길이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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