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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소설 ‘작은 장르’ 된 편의점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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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문학 작품뿐 아니라 TV 방송에서도 편의점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 등을 통해 현대인들의 일상과 다양한 고민을 담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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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은 시대상을 가장 민감하게 흡수하는 사회학적 공간이다. 저성장과 인구 고령화, 1인 가구 시대 등 삶의 변화와 유행을 반영한 이곳은 현대 일상의 리추얼적 장소로 자리잡았다.

문학에서도 편의점을 이야기의 주요 공간으로 설정한 작품이 최근 늘고 있다. 편의점 문학이 하나의 ‘소 장르’가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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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박영란은 지난해 10월 청소년 장편소설 <편의점 가는 기분>(창비)을 출간했다. 주인공 소년이 도시 변두리 원룸가의 24시 편의점에서 야간 알바를 하며 만난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그리는 소설이다. 편의점을 중심으로 모인 인물들은 서로 상처를 보듬으며 새로운 삶을 일굴 방안을 찾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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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한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는 작가 차영민은 지난달 편의점 에세이 <달밤의 제주는 즐거워>(새움)를 펴냈다. 편의점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서비스, 편의점 알바의 애환, 야간 편의점을 찾는 취객들의 각종 진상 등을 진솔한 에세이에 익살스럽게 담아냈다. 2015년 출간한 <효리 누나, 혼저옵서예>의 개정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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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경해도 2015년 출간한 소설집 속 ‘공항철도 편의점’이라는 단편 소설에서 공항철도 편의점 직원과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한 학생이 함께 보낸 밤의 이야기를 담았다. 부유하는 청년들의 방황과 고뇌를 담은 소설에서 등장인물들은 익명으로 처리된다.

한국보다 편의점 일상이 먼저 시작된 일본에선 지난해 이른바 21세기형 편의점 소설이 일본 순수문학 최고 영예를 안는 ‘사건’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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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타 사야카가 18년째 같은 편의점에서 일하고 있는 여성의 이야기를 쓴 <편의점 인간>이 155번째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것이다. 대학 졸업 후 취업하지 않고 18년째 편의점에서 일하고 있는 작가가 소설의 실제 모델이라는 점은 독자들에게 놀라움을 안겼다.

작가들은 편의점을 다루는 문학이 이제 소설의 한 장르가 됐다고 말한다. 각 언론사의 신춘문예 투고작들도 편의점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급증했다는 분석이다. 소설가 강영숙은 “최근 단편소설에서 젊은 등장인물이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는 설정이 많다”며 “과거 한국소설의 공간이 사이버스페이스나 아파트, 드림랜드 같은 추상적이고 매머드한 공간이었다면 요샌 작고 개인화된 장소들이 자주 등장한다”고 말했다.

편의점이 소설의 주요 공간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중반부터다. 소설가 김애란은 2004년 49회 현대문학상 후보작으로 선정된 바 있는 단편소설 ‘나는 편의점에 간다’에서 3곳의 편의점을 배경으로 후기자본주의의 일상과 익명적 관계를 고찰했다. 이 소설은 불어로 번역돼 2014년 프랑스의 기자와 비평가가 주는 ‘주목받지 못한 작품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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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엔 편의점을 표제로 한 시집도 등장했다. 중견 시인 정영희는 지난해 12월 <아침햇빛 편의점>(문학의전당)을 출간했다. “자다 깨다를 반복하는 컵라면과 라이터, 담배와 일회용 면도기, 칫솔에 양말, 검정봉지에 진공 포장된 어둠 몇 숟갈이 눈을 깜빡거립니다 (…) 야간작업을 마친 이들이 이빨에 낀 어둠찌꺼기들을 이쑤시개로 걷어냅니다.” 작가는 편의점의 고단한 하루 풍경을 애정 어린 눈으로 묘사했다.

리얼리즘 소설과는 다르게 판타지물이 주류를 이뤄, 각박한 현실적 주제를 피하는 웹소설에서도 지난해 말 편의점을 소재로 한 작품이 나왔다. 작가 ‘파실’이 쓴 <편의점의 소드마스터>는 지난해 중순부터 말까지 웹소설 플랫폼 조아라에 연재돼 19만7333회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인기를 끌었다. 이계(異界)인 아르티니아 대륙으로 소환돼 마족과의 전쟁을 치르고 온 전쟁영웅 주인공 장근호가 전쟁을 끝내고 20대 청년으로 지구로 복귀한 후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으로 일하며 몬스터 퇴치에 나선다는 이야기다.

<심혜리 기자 grac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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