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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민주주의는 목소리다]1부 ④학생이 나설 자리가 아니라고?…자유롭게 말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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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지 못한 ‘민주주의 언어’

학생들이 말하는 한국사회와 학교교육

경향신문

지난달 26일 경기 군포시 부곡중앙고 교실에서 2학년 김민석·김현수·문규진·정인영 학생(왼쪽부터)이 민주주의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적은 종이를 들어보이고 있다.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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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광장을 밝힌 수백만 촛불들 속엔 앳된 모습의 청소년들도 많았다. 매서운 겨울밤 바람에도 무대에 올라 자유발언을 통해 자신들의 ‘민주주의’를 염원했다. 4·19 혁명, 1987년 6월항쟁 등 민주주의의 고비마다 선배들이 그랬던 것처럼 한국 민주주의의 이정표였던 이번 광장에서도 그들은 당당한 한 명의 ‘시민’으로 함께 행동했다.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민주주의를 광장에서 학습했다고도 했다.

하지만 현실은 차갑다. 그들의 행동에 어른들은 “학생이 나설 자리가 아니다” “너희 뭔데”라는 따가운 시선부터 보낸다. 스스로를 ‘주권자’로 인식하고 생각을 말해도 어른들은 “독자적 판단 능력이 부족”한 ‘미성숙한 시민’쯤으로만 여긴다. 청소년들이 ‘공부하는 기계’로 남길 바라는 세상에서 그들의 촛불집회 참여는 늘 더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청소년들은 민주주의와 목소리 내는 법을 가르치지 않는 사회에서 스스로 말할 권리를 찾아나가고 있다. 학생들은 하나의 정답만 배우는 학교가 답답하다고 했고, 생각을 나누는 수업을 원한다고 했다. “대견하다”는 말 대신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권리”가 필요하다고 했다. 지난달 26일 경기 군포시 부곡중앙고에서 이 학교 2학년 김민석·김현수·문규진·정인영 학생을 만났다. 이들은 모두 이번 촛불집회에 나간 적이 있고, 세 명은 생애 첫 집회 참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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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회에는 이번에 처음 나간 건가요? 어땠나요?

민석 = 네. 규진이랑 1차 집회에 처음 나갔을 때는 아무것도 모르니까 무섭고 긴장됐어요. 집회를 나쁘게 생각한 건 아니지만 시민과 경찰이 대치하는 상황이라고 생각했죠. 부모님께도 차마 얘기 못하고 나갔어요. 하지만 광화문에 도착해서 다른 사람들의 자유발언을 듣고 소소한 공연들을 보면서 ‘생각했던 분위기와는 다르구나’ 하고 느꼈어요.

규진 = 저도 집회에 나가면서 무서워서 지인들한테 “나가도 되는 거냐”고 조언도 구했는데 집회 나갔다 와서 이 사건(‘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대해 깊이 있게 들여다보고 법률이나 헌법 같은 것도 보니까 ‘내가 충분히 나갈 수 있는 내 권리인데 자체적으로 검열하고 있구나’란 생각이 들었어요.

현수 = 3차 집회 때 처음 나갔는데 주변 사람들이 장난식이지만 “물대포 맞을 수 있다”는 얘기도 많이 하고, 백골단 얘기도 하며 겁을 주셨는데 백남기 농민 사건도 그렇고 집회에 대한 공포 분위기가 만연해 있었죠. 막상 가보니까 축제 분위기여서 감명을 받았어요.

인영 = 고1 때 일본군 위안부 집회에 나갔고 세월호 참사가 터진 이후 집회에 많이 나갔어요. 시위라는 게 저희가 나가기 꺼려지는 거잖아요. 부모님도 항상 좋지 않게 바라보기도 하고. 저한테 “나가면 안돼” “학생이 뭐하러 나가느냐”며 강요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집회 참가는 저의 권리라는 생각에 나갔어요.

- 어떤 게 가장 화가 났나요?

규진 = 누가 봐도 잘못된 현실이잖아요. ‘대체 내가 왜 공부하고 있을까’ 회의감이 너무 많이 들어서 나갔어요.

현수 = 평소에 역사교과서 국정화나 세월호 참사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져오다가 이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개개인에 의해 정권이 좌우됐다는 걸 알았을 때 배신감이 들었어요.

- 선생님들이 “집회에 나가지 말라”고는 안 하셨나요?

민석 = 처음 집회에 갔다 오고 나서 일주일 정도 고민을 하다가 규진이한테 “학교에서 시국선언을 해보자”고 얘기했고, 이후 관심 있는 친구들에게 얘기해 2학년 10명의 친구들이 모여 대자보를 써 붙인 후 학교에서 시국선언을 하고 근처 번화가인 산본 로데오거리에서 학생들이 중심이 된 집회를 열었어요. 많아야 100명을 예상했는데 군포지역 학생들이 500명이나 와서 정말 좋았어요. 일주일 동안 자기 생활을 다 포기하고 여기에 ‘올인’했기 때문에 자부심이 있었죠. 그런데 자부심이 짓밟힐 때가 몇 번 있었어요. “남들에게 전달하는 게 목표라면 그건 선동을 하는 거다” “너희가 직접 주도하는 게 아니고 어른들이 시켜서 하는 거라는 소문이 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우리가 한 활동이 ‘선동’이란 단어로 치부된다는 게 분노스럽고 모욕감을 느끼고 허탈했어요.

규진 = “너희 나중에 안 좋다” “왜 이렇게 바보 같은 짓을 하느냐”는 얘기도 하셨어요. 그렇지만 생각 없이 한 게 아니라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해 충분히 이해했기 때문에 저희끼리 똘똘 뭉쳤어요.

민석 = “학생이 나설 자리가 아니다” “너희가 뭔데 그런 걸 하느냐”고 하셨을 때 화가 치밀더라고요. 이런 사태를 만든 기성세대와 기득권층이 책임 있는 부분을 사회 구성원으로서 같이 해결해보고자 노력하는 것인데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무시하고 괄시하는 게 많이 화가 났어요.

- 촛불집회 주최 측에서 ‘청소년에게 기특하다, 대견하다는 표현이나 비하하는 말을 하지 말라’는 주의사항을 만들기도 했는데, 여기에 대해 어떻게 느꼈나요?

인영 = 청소년이 ‘어른들보다 낮은 시민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 거 같아요. 청소년들이 우리(어른들)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촛불집회에) 함께하고 있다는 면에서 “대견하다”는 말은 청소년을 낮게 보는 시각이 아닌가 싶어요.

- 사회적 문제에 대해서는 주로 누구랑 대화를 하나요?

민석 = 세월호 참사 이후 정치적으로 관심을 갖게 됐지만 얘기할 곳이 없어 답답했어요. 그런데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함께 얘기할 수 있는 친구들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서로 물어보고 대답해주고 하다보니까 ‘이런 얘기를 친구들과도 편하게 할 수 있는 거구나’ 싶어 반가웠어요.

- 학교 수업에서는 토론을 많이 하나요?

인영 = 친구들이 서로 얘기하려고 하고 좋아해요.

현수 = 그런데 교과서 진도 나가기 바빠서 많이 못해요. 평소 문학에 관심이 있어서 시도 찾아서 읽는데 시험에 출제되는 내용이니까 표현법, 작가 생애 같은 걸 그냥 외우다시피 해요. 성인이 돼서도 그런 거밖에 기억이 안 날 거 같아요.

인영 = 답이 정형화돼 있잖아요. 국어 수업할 때 이것도 틀린 게 아닐 수 있는데, 문학작품을 보면서 자기 경험을 대입하는 효과도 얻을 수 있는데 암기하면 얻을 수 없잖아요.

현수 = 이의를 제기하면, 전교 1·2등이 제기하면 선생님이 들어주시겠지만 “너는 그러니까 성적이 안 나오는 거다” 하시니까….

- ‘한국 사회’ 하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민석 = 우리 사회가 형식적으로는 민주주의라는 틀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민주적이다”라고 얘기하기 어려운 이유가 ‘공공의 이익을 위해 우리가 노력한다’는 느낌이 없어서인 것 같아요. “우리 모두가 주인이다”라는 인식이 부족하지 않나 싶어요.

현수 = 중1·2 때 대한민국의 근간을 만든 시절에 교과서에 나오지 않은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사건들이 있었고 이 때문에 지금까지 골칫병을 앓고 있다는 걸 알고는 ‘이 나라를 뜨자’는 생각까지 했어요. 재벌, 정경유착은 반민특위에 뿌리를 두고 있고요. 하지만 ‘회피하는 것보다는 우리나라를 다시 바꾸는 게 중요하겠다’고 판단했어요.

인영 = 어려서부터 권위적이고 보수적인 사회에 내재된 문제로부터 상처를 많이 받았어요. 학교에서 불만을 제기하면 수렴된 적이 없어요. 제가 마음 놓고 얘기할 수 없는 분위기고, 친구들끼리도 사회문제를 터놓고 얘기하기보다 말하기를 꺼리고. 학생 때부터 경험한 무력감이 민주주의를 저해하지 않나…. 하지만 촛불집회를 계기로 함께 바꾸려는 노력을 보면서 ‘그래도 희망이 있구나’ 싶었어요.

- 한국 사회가 나아지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현수 = 한국 사회는 빠르게 커왔고 마음이 클 차례예요. 성장만 바라면서 여러 사람들의 목소리가 묻혀왔어요. 이제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으니까 많은 소리를 종합해 최적의 결과를 낼 수 있는 정치적 수단을 마련해야죠.

규진 = 근대화로 경제적인 부분들이 충족됐다면 철학·가치관과 같은 질적인 부분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사회 선생님이 “통념적으로 받아들이던 것에 대해 회의해보는 게 사회과학의 시작”이라고 하셨는데, 우리가 가진 애국심이 무엇인지 통찰이나 대화가 많이 이뤄져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인영 = 한국 사회는 과거부터 많은 실패와 좌절을 겪었기 때문에 상처가 많은 거 같아요. 이 때문에 주위를 둘러보는 공감능력이 현저히 저하됐어요. 아파도 아프지 않은 척하고, 개개인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고요. 어떻게 하면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을지 함께 생각하고 실천해야 하지 않을까요.

민석 = 집회신고를 하러 경찰서에 처음 가봤어요. 제가 학생이어서인지는 몰라도 절차가 어렵더라고요. 집회 예상 인원에 맞게 질서유지인도 적어냈는데 질서유지인 한 분씩 전화해서 일일이 확인하고…. 신고를 마치고 나올 때도 “이걸 꼭 하고 싶니”라고 물어보시더라고요.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지 못한 게 아쉬워요.

<정대연 기자 ho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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