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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9 (일)

[이굴기의 꽃산 꽃글]먼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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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출렁출렁 부산이다. 꼭 티를 내어야 산다고 느끼는 것처럼 무슨 일이 있고서야 부산을 갔다. 행사장에서 박수치고 밥 먹고 부리나케 부산역을 빠져나오기에 바빴다. 그러니 부산을 가도 부산은 어디에도 없는 셈이었다. 강남 가는 제비처럼 그냥 훅 떠난 부산 여행. 덤으로 꽃이나 볼까 했는데 외려 된통 추위를 만났다. 지난주 부산의 날씨는 보통 추운 게 아니었다. 김이 설설 나는 돼지국밥집으로 뛰어들었더니 주방의 아지매도 이제껏 살면서 이런 추위가 처음이라며 맞장구를 쳐주었다.

영도다리 밑 오후 두 시. <날개>의 마지막 장면처럼 뚜우 하고 사이렌이 울렸다. 영도다리가 천천히 공중으로 올라갔다. 섬이 아니라 하늘로 가는 다리가 신기해서 여기저기 기념사진 찍는 소리가 요란했다. 제법 높은 각도로 쩍 벌린 다리를 뒤로하고 뜻밖의 나무를 찾아서 바닷가를 향해 내 다리를 벌렸다.

예전의 부산은 바다가 근처라서 그런지 겹겹이 산도 많았다. 문현동-대연동-광안리의 골짜기 하나하나마다 내 지난 시절이 담겨 있다. 그 앞을 지날라치면 아코디언 주름을 열었다 닫는 것처럼 옛 추억이 연주된다. 이기대 너머로 가는 길. 아스팔트를 들어붓고 널찍한 도로로 조성하기 전에는 이 길도 흙냄새 물씬한 호젓한 길이었겠다. 경사가 아주 급해서 가르랑가르랑 한숨을 쉬며 오르는 택시 안에서 기사가 한 말씀을 한다. “뭐 있능교, 아나고 한 접시로 목에 때 벗기고 노래방 가서 한 곡조 땡기믄 최고라예.” 무심코 내뱉는 아저씨의 저 한 문장에 부산 사람들의 행복이 고스란히 담겨 있지 않을까.

처음 보는 건 아니었지만 내 눈을 호리기에 충분한 나무를 만났다. 주로 제주도나 남부지방에 자생하지만 가로수로 널리 심는 나무. 여름에 피는 꽃만큼이나 반짝 아름다운 열매를 겨울 내내 달고 있는 나무. 먼나무였다. 이름의 유래는 잘 모르겠지만 이런 나무가 있어 멀리 나무 너머를 한번 비켜보기도 하는 것. 먼나무 위로 굶주린 새가 날고 먼나무 밑으로 버스와 행인1이 지나갔다. 몇십 년 전으로 시간여행을 떠난다면 바다를 보고 놀라는 승객2 혹은 교련복 입은 행인3으로 나도 등장하였을 풍경이었다. 먼나무. 감탕나무과의 상록교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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