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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한국 경제, 퍼펙트스톰 올까…국정혼란 지속땐 IMF급 위기 가계부채·한계기업 급증이 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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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 이후 보호무역주의 확산, 미국 기준금리 인상, 국내 정세 불안정, 가계부채·한계기업 급증.

대한민국이 직면하고 있는 대내외 경제 환경은 이처럼 녹록지 않다. 혹자는 1997년 IMF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이어 혹독한 경기 침체, 이른바 퍼펙트스톰이 올 것이란 예상을 내놓기도 한다. 시중에 떠돌고 있는 ‘경제위기 10년 주기설’이 과연 근거가 있는 것일까. 대응 방안은 무엇일까. 경제원로와 전문가 20인은 이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매경이코노미

▶2017년 위기설 가능성 얼마나

▷20명 중 13명 “걱정할 정도 아냐”

매경이코노미 설문에 응한 이들은 경제부총리 등을 지낸 경제원로, 교수, 증권사 리서치센터장 등 총 20명이다. 이들에게 내년 퍼펙트스톰 가능성 여부와 그 이유, 대안 등을 차례로 들어봤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내년 한국 경제의 ‘퍼펙트스톰’ 가능성에 대해 전문가 20명 중 13명은 ‘닥치지 않을 것’이란 대답을 내놨다. 1997년, 2008년만큼의 위기가 오긴 어렵다는 의견이 대세다. 그 근거로 전문가들은 국내 경제의 기초체력이 위기를 견뎌낼 만한 수준이라는 분석을 제시한다.

윤지호 이베스트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지난 10월 기준 경상수지가 871억9000만달러 흑자인 데에다 국내 외환보유액이 약 3720억달러로 다른 신흥국들에 비해 매우 높은 수준이다. 지금 당장 한국의 위기를 얘기할 근거는 희박하다”고 주장했다.

경제위기 조짐을 재정정책으로 충분히 방어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이영달 동국대 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정부 부채비율이 GDP의 40% 수준인데, 우리와 유사한 인구구조를 지닌 G20국 중 스페인(100%), 캐나다(92%) 등과 비교해 절반도 안 된다. 그만큼 정부 재정이 건전하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해외 경제 상황으로 눈을 돌려볼 때에도 대외 여건이 위기를 일으킬 만큼 심각한 수준은 아니라는 의견이다. 2017년 세계 경제성장률이 3%대로 전망되고 있으며, 특히 전 세계 경제의 약 40%를 점하는 미국 등 영어권 국가들의 경제성장 흐름이 완만한 상태라는 점에서다.

유병규 산업연구원장은 “미국의 금리 인상을 너무 겁낼 필요는 없다. 미국 경기가 회복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또 브렉시트로 인한 어려움 역시 이미 예견된 위험이므로 앞으로 더 이상 유럽발 위기 발생에 특별한 계기가 되리라 보기는 어렵다. IMF도 내년 세계 경기가 좋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홍춘욱 키움증권 이코노미스트도 같은 생각이다. “미국과 중국의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로 볼 때 체감 경기지표가 좋은 상황이다. 유럽 경제가 남은 변수기는 하지만 영국 외 추가로 유로존 이탈을 예상하긴 어렵다”는 시각이다.

IMF 외환위기 때처럼 달러가 급속도로 빠져나갈 소지는 없을까. “통상 경제위기 직전에는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는 등 금융시장이 불안한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다. 물가도 안정적인 흐름을 보이고 있어 내년에 특별히 경제위기 가능성을 속단하긴 어렵다.” 박정우 한국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의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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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 의견은 무엇

▷美 금리 인상, 가계부채 뇌관 건드릴라

그럼에도 불구, 내년 위기설을 걱정하는 이들 논리 역시 무시하긴 어려운 부분이 있다.

설문 응답자 중 7명은 퍼펙트스톰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이들은 브렉시트, 트럼프 당선 후 보호무역주의 강화, 미국 금리 인상 등 대외 변수에 정치 불안, 가계부채, 잠재성장률 저하 등 국내 사안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경우 사안이 심각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장은 대외 환경 변화로 현재 외환보유고가 마냥 안전하지만은 않다고 우려한다.

“12월 기준 외국인 주식자금이 5500억달러, 채권은 1000억달러, 은행과 기업의 대외채무 4000억달러를 다 합치면 1조달러가 넘는데 대내외 충격으로 단기간에 달러가 빠져나갈 때 외환보유고 3700억달러로 과연 버틸 수 있겠는가. 대외무역 의존도가 80% 이상인 우리나라는 그만큼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에 놓여 있는 셈이다. 1997년, 2007년 위기보다 더 심각한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미국발 금리 인상도 무시할 수 없다. 1300조원에 달하는 국내 가계부채를 더 자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금리 인상에 더해 내년 부동산 가격 하락이 이어지면, 부실 위험에 처하는 가구가 증가하면서 총체적인 경제위기 소지가 높다는 논리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이 금리를 올리자 국내 시장금리도 뛰고 있다.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올라 주택 시장이 위축되면 가계부채 부실화 가능성은 높아진다. 이미 국내 가계부채 문제가 매우 심각한 만큼 작은 충격에도 쉽게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고 판단한다.

국내로 시선을 돌려봐도 어두운 건 마찬가지다.

전문가들은 국정 공백으로 인한 리더십 실종이 가장 큰 변수라 입을 모았다. 대내외 악재가 터졌을 때 대응하기 힘든 구조라는 말이다.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특임교수는 “여러 가지 악조건이 겹친 와중에 정치적인 요인이 위기의 기폭제가 될 수 있다. 1997년 IMF 외환위기가 오기 직전 대선을 앞두고 김영삼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 씨의 한보그룹 대출 관련 의혹은 국정 공백을 초래했다. 당시 추진 중이던 노동개혁과 금융개혁이 중단, 실패했고 기업 부실과 금융 부실로 이어졌다. 이후 외국인 자금이 유출되자 그해 말 외환위기가 발생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경제의 구조적인 위축도 위기설의 토대를 제공한다. 현재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은 2.7% 수준. 2000년대 초 4.7%에서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강인수 현대경제연구원장은 “장기간 저성장 상황이 이어지고 내년에도 2% 초반 성장이 예상된다. 최근 6년간 한 해만 빼놓고 계속 저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잠재성장률을 결정짓는 노동, 자본, 총요소생산성 지표를 끌어올리는 것은 단기간 가능한 일이 아니다”라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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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기업 구조조정 대상이 된 한진해운.


▶10년 주기설 왜 나왔나

▷리더십 흔들릴 때면 꼭 한 번은

여기서 드는 의문.

내년 한국 경제위기설이 왜 회자되는 걸까. 1997년 IMF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약 10년의 시차를 두고 발생한 탓에 조만간 한 차례 위기가 올 것이란 시각이 자연스레 생겼다. 그렇다면 이전 위기와 현재 상황에서 닮은 점과 다른 점은 뭘까.

가장 닮은 점으로 전문가들은 리더십 위축 혹은 실종을 들었다.

대통령 탄핵 정국 속에서 국정 공백이 생긴 상황은 과거 두 차례 위기 때와 기시감을 일으킨다.

1997년 IMF 외환위기 발생 직전은 김영삼정부 말기로 당시 차남 김현철 씨의 국정농단 사건으로 연일 시끄러웠다. 2008년 금융위기 전엔 이명박정부 집권 초기였는데 광우병 파동으로 지지율이 한창 떨어지면서 정부가 대내외 경제 상황 점검보다 사회문제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성장 잠재력이 부실해지고 있던 상황도 닮았다. 1996년 당시 경제성장률은 7.6%로 높았지만 문어발식 경영, 단기차입액 급증으로 대기업의 기초체력은 형편 없었다.

한진해운, 대우조선해양 부실 등 한계기업이 속출하고 있는 현재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대외 환경이 국내 경제에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점도 비슷하다. 2008년 국내에 금융위기의 불똥이 튄 것은 미국이 기준금리 인상으로 세계 경제의 변동성이 커지면서다. 2004년 12월 1%에 불과했던 미국의 기준금리가 2006년 6월 5.25%로 치솟았다. 마침내 부동산 버블이 터지면서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발생했고 그 여파가 국내 부동산 경기에까지 악영향을 미쳤다.

물론 과거 위기와 지금 상황은 다른 점도 많다. 우선 경상수지가 1996년 238억8000만달러 적자였던 데 반해 올해 예상치는 970억달러 흑자로 차이가 크다. 외환보유고 역시 1996년 332억달러에 비해 12월 기준 3778억달러로 10배가량 많다.

또 지난 두 차례의 위기가 대외 요인이 국내 경제에 직접적으로 타격을 입힌 사례였다면 지금은 상대적으로 해외 경제 상황이 나쁘지 않다. 오히려 경기 호전 신호 덕에 미국이 기준금리 인상에 나섰을 정도다.

자산건전성 면에서도 상황이 다르다. 외환위기를 겪은 이후 국내 은행, 금융사들이 부단히 자산건전성 관리를 해오면서 2008년 금융위기에도 은행, 증권사 중 유탄을 입고 문 닫은 사례는 없었다. 최근에도 금융시장의 변동성은 커졌지만 금융사 자산건전성은 유럽 금융사와 비교해도 나쁘지 않은 편이다. 과거에 비해 국내 경제의 기초체력이 강해졌다는 전문가 분석엔 이런 배경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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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펙트스톰 피하려면

▷경제 리더십 조기 회복, 구조개혁 필요

전문가 설문 결과 퍼펙트스톰 도래 가능성이 낮다 해도 한국 경제 난제는 여전히 적잖다. 경제 관련 해외 기관에선 박근혜정부 들어 추진해오던 구조개혁과 재정지출을 통한 경제 활성화만큼은 계속 추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OECD는 지난 11월 보고서에서 한국 정부 지출 증가세가 최근 둔화되고 있는 만큼 확장적 거시경제정책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또한 인구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만큼 노동생산성을 개선하고 참여율을 높이기 위한 구조개혁이 필요하다 전했다.

IMF 역시 비슷한 의견이다. 마타이 IMF 부국장은 “한국의 사회복지지출은 GDP의 10%에 불과하다. OECD 평균인 22%의 절반도 안 되는 만큼 재정을 확대하고 구조개혁을 단행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정부 재정지출 관련, 최중경 전 지식경제부 장관은 “특단의 소비 진작, 정부 초기 재정 집행 등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자산시장 안정화를 꾀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러 전문가가 우려하는 가계부채 문제는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남주하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한국에선 연체를 해야 채무조정 대상이 되는데 지금 당장 연체 중이 아니더라도 돈 갚을 능력이 안되는 사람이라면 채무조정을 하도록 길을 터주는 식으로 가계부채 사전 예방 정책을 조속히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설문과 번외로 김한준 알토스벤처스 대표는 "개인소득세 올리더라도 기업 세금 내리고 규제 없애고, 공정하게 경쟁하는 시장 만들어주고, 어떤 기업이든 한국에서 고용 많이 하고 사업 벌릴 수 있게끔 노력해주는 게 현 정권이든 차기 정권이든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주문들을 효과적으로 실행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과도 정부 경제팀이라 하더라도 리더십을 조기 회복하는 게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자 당시 이헌재 부총리는 곧바로 “책임지고 경제를 챙기겠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경제 부문만큼은 흔들림 없이 정부가 현안을 챙길 것이란 명확한 메시지를 시장에 전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덕수 전 국무총리는 “정치인들과 행정부서 등이 협조적인 관계를 유지해 불확실성을 줄이고 경제와 민생을 위해 힘써야 한다. 대내적으로는 정치적 혼란을 얼마나 줄이느냐, 대외적으로는 세계 경제가 얼마나 회복하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해외 주요 기관의 경고

OECD·IMF 이어 무디스도 “한국 경제 불안정”

한국 경제의 미래를 걱정하는 시선은 국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해외 주요 기관도 잇따라 한국 경제가 위험하단 경고를 보내고 있다.

시작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였다. OECD는 지난 11월 한국 경제가 내년 2.6% 성장하는 데 그칠 거란 전망을 발표했다. 6월 전망치였던 3%에서 0.4%포인트나 하락한 수치다. 2018년 성장률 예상치 또한 3.3%에서 3%로 하향 조정했다. OECD는 한국 경제성장률을 종전보다 낮게 잡은 이유로 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정치적 불확실성이 커졌다는 점과 김영란법 시행으로 인해 내수 타격이 예상된다는 점을 꼽았다.

국제통화기금(IMF) 역시 경고를 보내긴 마찬가지. 지난 12월 1일 뉴욕 맨해튼에서 열린 ‘한국 경제 리뷰’ 세미나에서 코시 마타이 IMF 아시아태평양담당 부국장은 한국 경제를 신랄하게 비판하며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낮출 가능성을 내비쳤다. 이날 마타이 부국장은 GDP의 90%에 달하는 가계부채, 고령화로 인한 노동인구 감소, 여성·젊은 층의 낮은 노동시장 참여율, OECD 내에서 최하위 수준인 노동생산성 등이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력을 끌어내리는 요인이라 지적하며 실효성 있는 해결책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신용평가사의 경고도 눈여겨볼 거리다. 무디스는 12월 중순 발표한 보고서에서 최순실 게이트가 불러온 정치적 혼란이 정책 효율성을 끌어내릴 수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무디스는 한국 정부가 난관을 잘 이겨낼 것으로 내다보면서도 소비와 투자, 고용이 위축되면 신용등급을 내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현재 무디스가 매긴 한국 신용등급은 Aa2. 프랑스와 같은 등급이며 전체 등급 중 세 번째로 높다. 만약 무디스가 한국의 신용등급을 한 단계 낮춘다면 중국, 대만, 벨기에 등과 함께 Aa3 등급을 받게 된다.

[박수호·서은내·김기진 기자 / 일러스트 : 정윤정]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888·송년호 (2016.12.21~12.3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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