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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30 (일)

`화재경보 로봇` 스타트업 위해 中정부는 산불실험 100번 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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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차 산업혁명 성공의 조건 1부 ① ◆

매일경제

홍콩사이언스파크에 있는 로봇 스타트업 인사이트로보틱스의 한 엔지니어가 장비를 테스트하고 있다. [홍콩 = 김대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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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사이언스파크에서는 천재들이 미친 듯이 일한다. 그들을 알아주는 '혁신 수요자'들이 있고 발전시켜 주는 '혁신 생태계'가 있기 때문이다." 렉스 샴 인사이트로보틱스 최고경영자(CEO·32)는 이미지 분석 알고리즘 사업계획서만 한 장 달랑 들고 사이언스파크를 찾았던 2011년을 잊지 못한다. 이 세상 어느 누구보다 이 기술에 관한 한 자신감을 갖고 있었지만 이처럼 신속하게 테스트와 상품화가 이뤄질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사이언스파크는 인큐베이팅 시작부터 중국 지린성과 광둥성 성 정부를 소개시켜주면서 샴 CEO에게 기술협력을 주선했다. 혁신을 공급하겠다는 이들에게 혁신을 받아줄 수요처를 주선해 준 것이다.

놀라운 이야기는 그다음에 펼쳐진다. 지린성과 광둥성은 흔쾌히 이들이 성 내에서 화재경보 로봇을 테스트할 수 있도록 허가했다. 이 덕분에 샴 CEO는 지린성·광둥성 내 13㎞ 반경을 관찰하며 화재를 식별할 수 있는 폐쇄회로(CC)TV 형태 로봇을 테스트하면서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었다. 사업을 시작한 그해 광둥성 소방당국은 100여 차례 산불실험을 할 수 있도록 허가했다. 그 결과 인사이트로보틱스는 현재 중국 41개 도시에서 160대의 화재경보 로봇을 공급하고 있다. 법령 때문에 드론 하나 띄우기 어려운 한국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행정 처리다.

홍콩에서 천재들이 미친 듯이 일할 수 있는 이유는 단지 물리적 창업 공간과 벤처캐피털의 자금 지원이 있었기 때문만이 아니다. 홍콩사이언스파크에는 한국의 창조경제혁신센터나 각종 창업캠퍼스들에는 없는 '혁신의 수요처와 혁신의 생태계'가 존재한다. 정부와 기존 기업들이 기업가들 혁신을 규제라는 이름으로 막으려 하지 않고 발 벗고 나서 테스트해 주면서 장기적으로 키울 자세가 돼 있다. 젊은 천재들이 '미친 듯이' 일할 수 있는 것도 젊은 기업가들을 키우려는 기성세대 덕분이다.

혁신 생태계라는 측면에서 홍콩은 아시아에서 어떤 나라 못지않게 저돌적이다. 홍콩 사톈(沙田) 지역에 위치한 사이언스파크 조형물은 혁신을 떠받치는 그들의 철학을 상징한다. 양멍장 홍콩사이언스파크 수석 상무총감은 통유리 연구동에 둘러싸인 황금색 조형물에 대해 "조형물보다 이를 떠받치고 있는 기둥들 의미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달걀 모양 조형물은 부화를 앞둔 계란이자 앞으로 크게 성장할 스타트업을 상징하지만, 조형물을 떠받치고 있는 각 기둥은 정부, 시장, 인프라, 문화, 인적자원, 투자 등 혁신을 지지하는 후원자들을 의미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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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사이언스파크 조형물. 혁신 스타트업을 상징하는 달걀 모양 구조물을 정부, 민간 등을 상징하는 기둥들이 떠받치며 협력의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사진 제공 = 홍콩사이언스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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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사이언스파크는 올해 10월에야 완전한 모습을 드러냈지만 완성되기 전부터 이미 622개 기업이 입주해 있는 창업 생태계다. 이 중 250여 개가 홍콩 정부, 연구기관, 대기업의 집중 지원을 받고 있다. 사이언스파크의 지원 방식은 상식을 뛰어넘는다. 고효율 태양광 패널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스타트업 '선라이트 에코테크'는 2013년 홍콩사이언스파크에 입주했다. 이 회사 기술력을 높이 본 사이언스파크 측은 마침 독일 대기업 스카니아(Scania)가 고효율 태양광 골프카트를 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두 회사를 바로 연결했다. 스카니아 측에서 지불하기 부담스러워했던 연구비용과 인력을 사이언스파크가 지불했다. 이 회사 태양광 골프카트는 지난해부터 직접 수출되고 있다. 스카니아는 이에 그치지 않고 태양광으로 운영되는 대형 냉장트럭 개발도 협력하자고 제안해 왔다. 혁신이 혁신을 낳는 선순환이다.

자동화 센서 장비기술을 보유한 스타트업인 '에이쿠스(Ackuis)' 사례도 마찬가지다. 셀리아 넝 에이쿠스 CEO는 "초창기 우리 센서 기술은 의류 공장에서 불량 단추를 골라내는 정도였다"며 "하지만 사이언스파크 측에서 자동화 센서 검측기술을 개선할 수 있도록 수요처를 설득해 공장 내에 맞춤형 검측 센서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 결과 에이쿠스는 설립 3년 만에 홍콩 최대 베이커리업체 메이신(美心)을 비롯해 유명 업체들에 자동화 설비·소프트웨어를 공급하는 '큰손'으로 성장했다. 얼굴 인식·딥러닝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센스타임(SenseTime) 역시 홍콩사이언스파크가 만든 성공작이다. 2014년 센스타임은 홍콩사이언스파크 기술 보증을 통해 중국 공안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현재 중국 공안에 정식 채택됐다. 충칭시 공안당국은 센스타임 이미지 인식 기술을 이용해 지난달에만 범죄자 69명의 신원을 확인했으며, 이 중 14명은 실제 검거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중국 유수 기업들이 앞다퉈 센스타임과 계약을 맺었는데, 현재 고객만 차이나모바일, 유니온페이, 화웨이, 샤오미, 자오상은행 등 300여 개에 달한다.

[특별취재팀 = 신현규 차장(팀장) / 실리콘밸리 = 손재권 특파원 / 홍콩 = 김대기 기자 / 임성현 기자 / 원호섭 기자 / 박은진 기자 / 김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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