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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8 (금)

‘매출 반토막’ 사라진 연말특수에 한국경제 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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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 12월 1~10일 기준 전년대비 매출증가율, 자료=각 백화점


#. 지난 10일 서울 도심의 한 백화점. 여성복 매장이 몰려있는 3~4층에는 곳곳에 ‘시즌 오프 30%’, ‘10~20% 할인판매’ 안내문이 걸려있다. 하지만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눈여겨보는 손님들은 손으로 셀 수 있을 정도에 불과했다. 심지어는 평소 손님이 몰려 주문조차 어려웠던 4층 커피숍도 자리가 남아돌았다. 40여개 좌석이 마련된 이곳 커피숍에는 7~8명의 손님들만 앉아있었다.

이곳 여성매장에서 근무하는 직원 김 모씨는 “세일 매장은 바쁘고 사람이 많았는데, 지금은 매출이 절반 가까이로 줄었다”며 “매장에 서 있으면 하루종일 중국어가 들렸지만, 지금은 그조차도 들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소비에 ‘한기’가 돌기는 사치품 매장들도 마찬가지다. 백화점 명품관 직원 한 모 씨는 “10월말부터 주말매출이 체감상 50%는 감소한 것 같다”며 “보통 부유층들이 많이 방문하곤 하지만, 사회 분위기가 뒤숭숭하다보니 쇼핑에 부담을 느끼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 같은 날 오후 서울 강남의 또 다른 백화점. 지하에 있는 식품관에는 사람들로 북적이지만, 몇 층만 위로 올라와도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20~30% 세일한다는 안내문이 매장 앞에 붙어있음에도 정작 손님은 드물다. 에스컬레이터 옆에 들어선 팝업매장에나 손님 4~5명 정도가 상품을 살펴보는 정도다.

안내데스크 직원 유 모 씨는 “식품관이야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먹는 것을 안할 순 없으니까 사람이 많지만, 위층으로 올라갈수록 사람들이 구경만 하고 상품을 구입하진 않는 경향이 있다”며 “입는 것, 꾸미는 것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소비가 줄어든 것 같다”고 했다. 또 다른 매장 직원 봉 모씨는 “작년만 해도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상자에 넣어 선물용으로 쌓아놓고 팔곤 했지만, 요즘은 그런 모습을 보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최순실 게이트에 이은 대통령 탄핵, 중국인 관광객 감소에 따른 ‘소비 한파’가 연말연시를 덮치고 있다. 경기부진으로 가뜩이나 소비자들의 지갑이 얼어붙은 상황에서 국민적 공분을 사는 대형 정치이슈가 등장하자 소비심리 위축이 더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중국인 관광객마저 감소하면서 소비 위축은 좀처럼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11일 롯데백화점에 따르면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의 이달 1~10일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동일한 요일 기준)에 비해 3.3% 줄었다. 서울 명동 신세계백화점 본점 매출 또한 이 기간 중 매출은 2.7% 감소했다. 주요 백화점들이 지난달 17일부터 이달 4일까지 진행한 겨울 정기세일 역시 참담한 실적을 기록했다. 작년 세일기간과 비교해보면 매출증가율(전점포 기준·추가출점 점포 제외)은 롯데백화점 -0.7%, 현대백화점 -1.2%로 집계됐다. 이는 2011년 겨울 정기세일을 편성한 이후 6년만에 첫 ‘마이너스’ 매출이다.

백화점 관계자는 “연말 분위기를 내기 위해 예년보다 크리스마스 장식도 앞당겼지만 아직은 효과가 그리 크지 않다”며 “연말 판매가 백화점 입장에서는 중요한데 걱정이 크다”고 털어놨다.

소비위축 분위기는 백화점 뿐 아니라 대형마트도 마찬가지다. 지난달 이마트 매출은 전년대비(추가출점 점포 제외) 2.8%가 감소했다. 특히 시국 국면이 장기화되면서 내수에 영향이 점차 커졌다는 게 대형마트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실제 지표상으로 나타난 소비심리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저 수준에 머물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3분기(7~9월) 가계 실질 소비지출은 전년 동기 대비 0.1% 줄어 3분기 연속 감소세를 이어갔다. 돈이 돌지 않으면서 3분기 통화유통속도로 사상 처음으로 0.7을 밑도는 0.69로 추락했다. 가계와 기업이 미래 경제에 대해 심각한 불안을 느끼고 있다는 뜻이다.

여기에 그동안 내수시장을 떠받쳐왔던 중국인들마저 한국을 외면하고 있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전년대비 중국인 관광객 증가율은 7월 258.9%, 8월 70.2%, 9월 22.8%로 축소되다 10월에는 4.7%로 한자릿수까지 떨어졌다. 중국인 관광객 수는 7월 92만명에서 10월에는 68만명으로 26% 가량 줄었다. 사드 배치에 따른 중국 정부의 ‘한한령(한류금지령)’ 여파로 관광객 수는 더 줄어들 수 있다는 게 우려도 나온다. 백화점 관계자는 “11~12월은 중국인 관광객 방문의 비수기에 해당해 아직 속단하기는 이르지만, 사회분위기가 침체된 상황에서 중국인 관광객까지 줄어들다보니 올해 매출목표에 대해 전면적인 수정이 불가피할 것 같다”고 했다.

이같은 경기냉각의 충격은 고용시장부터 먼저 타격을 줄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현대경제연구원은 ‘탄핵 이후, 정책의 경기대응력 약화로 불황고착 우려’ 보고서에서 ‘고용위기’를 경고했다. 10월 실업률이 3.4%로 전년동월(3.1%)보다 크게 높아졌고, 취업자 증가세도 둔화되고 있어 고용불안이 현실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그동안 양호한 모습을 보였던 실업률조차 크게 높아지고, 제조업을 중심으로 경제의 고용창출력이 약화되고 있다”며 “고용위기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전망했다.

[최승진 기자 / 전정홍 기자 / 이희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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