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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월)

용선료·해운동맹 암초에 걸린 해운 구조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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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긴 먼 ‘빅2’ 정상화

세계일보

구조조정이 진행 중인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이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한진해운은 채권단 자율협약(공동관리)의 전제 조건인 용선료(선박임대료) 인하와 사채권자 채무 재조정에 아직 이렇다 할 진척을 보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신용등급 하락까지 겹치면서 ‘돈줄’마저 말라가고 있다. 용선료 인하와 사채권자 채무 재조정에 성공하면서 순항하던 현대상선도 글로벌 해운동맹 가입을 앞두고 암초를 만났다. 이런 가운데 국내 대형 화주(貨主)들이 이들 국적 해운사 대신 외국 선사에 화물을 몰아주는 사태까지 벌어지고 있다.

세계일보

◆한진해운 유동성 위기 가중

22일 채권단에 따르면 한진해운은 지난달 9일부터 22개 외국 선주사를 대상으로 용선료 인하 협상에 돌입해 1차 협상을 마친 데 이어 다시 보정협상에 돌입했으나 희소식을 전하지 못하고 있다. 채권단 관계자는 “용선료 인하협상과 관련해 아직 진척을 거론할 단계는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며 “한진해운의 선주 구성이 현대상선보다 다양한 데다 몇몇 선주는 한진해운이 밀린 용선료를 갚기 전에는 협상에 임할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한진해운의 최대 선주인 캐나다 컨테이너선사 시스팬은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과 회동 후에도 용선료를 인하할 바에는 대여한 배를 거둬들이겠다는 뜻을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스팬의 게리 왕 회장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조 회장 일가와 산업은행이 자금 지원에 나서지 않으면 한진해운이 큰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밝혀 용선료 인하 대신 대주주와 채권단의 지원을 요구했다. 자율협약의 또 다른 조건인 사채권자 채무 재조정과 관련해서도 만기 연장에만 성공했을 뿐 아직 협상 테이블에도 앉지 못했다.

더 큰 문제는 한진해운이 신용등급 강등 여파로 자금줄마저 막혀 있다는 데 있다. 한국신용평가와 나이스신용평가, 한국기업평가 등 신용평가업체는 지난 20일 한진해운의 무보증 회사채 신용등급을 채무 불이행 위험이 큰 ‘CCC’ 등급으로 내렸다. CCC 등급을 받으면 사실상 회사채 발행이 불가능하다. 채권단의 지원을 바랄 수 없는 한진해운이 유일하게 기댈 수 있었던 자금조달 창구인 회사채 발행마저 물 건너간 셈이다. 서강민 한기평 연구원은 “한진해운은 올 1분기에 이어 2분기 이후에도 영업손실이 계속돼 최소한의 운영자금 마련에도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진해운은 최근 컨테이너 리스비용마저 연체할 정도로 유동성 위기가 심각해 지원이 없으면 이달도 넘기기 어렵다는 관측까지 나돌고 있다. 채권단은 그동안 한진해운에 존속을 위해서는 1조원가량의 유동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문했었다. 이에 반해 한진해운 측이 자구 노력을 통해 확보한 현금은 1575억원에 불과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대상선은 자율협약 마지막 조건인 글로벌 해운동맹 가입을 위해 6개 회원사로 구성된 ‘디 얼라이언스’를 상대로 추진하고 있으나 6곳 모두로부터 확답은 받지 못했다. 해운동맹 가입문제가 답보상태에 머물자 채권단은 28일로 예정된 자율협약 조건 충족 마감시한을 한 달 연장하기로 했다.

◆해운 구조조정 피해 현실화

양대 국적 선사의 구조조정 여파로 해운업계 전체가 위기에 빠져들고 있다. 이윤재 한국선주협회 회장은 지난 17일 사장단 연찬회를 주재한 자리에서 “구조조정 중인 국적 원양선사를 외면하고 외국 선사에 화물을 몰아주는 국내 대형화주들의 국적 선사 이탈 현상도 심각한 상황”이라며 “양대 선사 구조조정이 마치 한국 해운이 침몰 직전에 있는 것처럼 잘못 알려져 대외 신인도가 크게 저하됐다”고 우려했다. 선주협회에 따르면 20%가량의 대형화주들이 구조조정 이후 국적 선사를 이탈한 것으로 집계됐다.

해운업 구조조정의 여파로 국내를 경유해 다른 나라로 화물을 운반하는 환적물량도 크게 줄었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지난 1∼4월 부산항의 컨테이너 처리 실적은 639만1000TEU(1TEU는 길이 20피트짜리 컨테이너 1개 크기)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2.0% 줄어든 수치인데, 특히 환적화물은 3.3% 감소했다. 부산항은 전체 컨테이너 처리 물량 중 절반이 환적화물인 동북아시아 최대의 환적항이다. 양대 선사에 대한 구조조정 이후 부산항을 환적화물 경유지로 이용하던 화주들이 대거 이탈했다는 게 업계 전언이다.

한편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이날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추가지원 여부를 신중히 판단하겠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추가지원 여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기본적으로는 국민 혈세를 낭비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 원칙”이라며 “경우의 수가 많으므로 많이 고민해 국가 경제에 도움이 되고 피해를 최소화하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황계식 기자 cul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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