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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3 (수)

[추경 급물살]②구조조정·브렉시트 우려에 재정확대 절실…巨野 협상 '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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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이데일리 박종오 기자] 정부는 매년 경기에 미치는 영향이 큰 주요 사업비 집행 내용을 목표를 정해놓고 점검한다. 올해는 중앙부처와 공공기관, 지자체, 지방 공기업 등 전체 중앙·지방재정 집행 목표액 446조 9000억원 중 59%(263조 6000억원)를 상반기에 몰아 쓰기로 했다. 연초 중국발(發) 증시 급락 등으로 경기 악화 우려가 커지자 하반기에 쓸 나랏돈을 미리 당겨쓴 것이다.

재정의 힘은 컸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1분기(1~3월)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0.5%(확정치 기준)에 불과했다. 지출 항목별 성장 기여도는 정부가 0.5%포인트, 민간이 0.0%포인트였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민간 부문이 정체된 가운데 사실상 정부 지출이 성장을 이끌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추경 왜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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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추경 편성을 적극 검토하고 나선 것은 하반기 경기에 먹구름이 끼면서 재정의 역할이 또다시 긴요해졌기 때문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지난 4월 발표한 ‘세계 경제 전망’ 보고서를 보면 한국의 GDP갭은 -1.45%로 2009년(-2%)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GDP갭은 실질 GDP에서 잠재 GDP(물가 상승을 유발하지 않는 최대 생산 수준)를 뺀 것이다. 이 수치는 2012년 -0.2%, 2014년 -0.9%로 매년 확대되고 있다. 우리 경제가 성장 잠재력조차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채 침체의 골이 깊어진다는 뜻이다.

문제는 이 격차가 더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발등에 떨어진 불은 조선·해운 등 산업 구조조정이다. 조선소가 밀집한 경남 지역의 지난달 실업률은 3.7%로 작년보다 1.2%포인트 올라 전국에서 상승 폭이 가장 컸다. 본격적인 구조조정 시작 전부터 고용 악화 우려가 현실화한 것이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최근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논란에서 보듯 미국 등 선진국이 통상 압력, 보호 무역 강화 같은 ‘고립주의’ 성향으로 돌아서고 있다”며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 같은 소규모 개방 국가에 장기적으로 커다란 악재”라고 말했다.

◇한다면 얼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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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 분석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해 11조 6000억원의 추경으로 경제 성장률을 0.15~0.36%포인트 끌어올렸다.

정성태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최소한 지난해 적자 규모를 유지하는 수준으로는 재정이 경기를 떠받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나라살림(관리재정수지) 적자는 6년 만에 가장 많은 38조원이었다. 올해 정부 목표치는 이 적자 규모를 36조 9000억원으로 줄이는 것인데, 4월까지의 누적 적자가 9조 2000억원으로 작년보다 적자 폭이 12조 9000억원 감소했다. 1~4월 세금이 전년 대비 18조원 1000억원 더 걷힌 덕분이다. 현 세수 흐름대로라면 10조원 이상의 추가 지출 여력이 있는 셈이다.

김정식 교수는 “성장률 둔화를 막으면서 이 수치를 0.2~0.3%포인트 높이려면 10조원 정도의 추경이 필요하다”며 “제2 경부고속도로 조기 착공 등 기간산업 투자를 앞당기면 일자리가 생기고 재정 낭비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정부는 지난해에도 추경을 통해 세출을 6조 2000억원 늘려 이 중 1조 3000억원을 사회간접자본(SOC) 투자에 썼다.

◇어떻게 하나

현행법상 추경을 편성하려면 △전쟁, 대규모 자연재해가 발생하거나 △경기침체, 대량실업, 남북관계 등 중대한 대내·외 여건 변화가 발생 또는 발생할 우려가 있는 경우 △국가 의무 지출이 증가하는 경우 등이어야 한다. 정부는 이 중 구조조정에 따른 경기침체, 대량실업 발생 우려가 구실이 되리라고 본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대량실업 인지를 따지는 구체적인 기준이 있는 게 아니어서 결국 정치권과 합의하면 될 문제”라고 귀띔했다.

추경 재원은 통상 세계잉여금(정부 예산에서 쓰고 남은 돈), 한국은행 잉여금, 국채 발행을 통한 차입으로 조달한다. 추경에 쓸 전년도 세계잉여금이 1조원 대에 불과하고 야당이 국채 발행에 반대해, 남은 길은 올해 예상보다 더 걷은 세금을 추경 재원으로 돌리는 방법이 있다. ‘세입 증액 경정’이다. 다만 기재부 예산실 관계자는 “초과 세수는 법상 국채를 갚는 데 우선 사용하도록 규정돼 있어 법적 문제가 없는지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관건은

정부가 추경 편성을 마지막까지 고민하는 것은 정국 주도권을 둘러싼 야당과의 줄다리기를 우려해서다. 추경 협상 과정에서 야권이 누리과정(3~5세 무상보육) 예산 편성, 법인세 인상 등을 요구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경제 정책 운용의 관심이 단기 재정 확대에 쏠려선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성태 한국개발연구원(KDI) 거시·금융경제연구부장은 “추경을 하는 것은 결국 구조조정의 부작용을 완충하자는 목적인데, 추경은 해놓고 정작 구조조정은 진도가 안 나가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며 “구조조정이 더 중요한 이슈라는 걸 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꼬리’(추경을 통한 경기 부양)가 ‘머리’(구조개혁)를 흔드는 일이 생겨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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