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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3 (수)

[현장에서]구조조정 시작도 전에 책임론..`소는 누가 키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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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최정희 기자] “다 산업은행이 잘못했다고 한다. 2013년 기사를 찾아봐라. STX팬오션 법정관리 가는 것도 다 안 된다고 했다. STX조선은 무조건 산은이 떠맡으라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었다. 그 때 상황에 맞는 판단을 한 것이다. 그러나 결과만 보고서 이렇게 몰아붙이면 결국 복지부동(伏地不動)할 수 밖에 없다.”

최근 STX조선이 법정관리에 들어간 후 서울중앙지법에서 “그동안 투입됐던 4조4000억원의 공적자금만 날렸다”고 쓴소리를 하자 산은 고위관계자가 꺼낸 말이다. STX조선을 비롯한 조선, 해운업계 구조조정이 한창 진행중인데 잘잘못부터 먼저 따지는 분위기에 억울함을 토로 했다.

그러나 STX조선까지는 그나마 나은 편이었다. 8일 대우조선해양과 관련 검찰 수사가 산은으로 번지면서 분위기는 더욱 더 얼어붙었다. 기업 구조조정 방향이 제대로 정해지기도 전에 책임론에 휩싸이게 생겼기 때문이다. 산은의 또 다른 관계자는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되는 것인지 알 수 없다”며 검찰 수사 방향이 어떤 식으로 불똥이 튀게 될지 몰라 불안해했다.

더구나 홍기택 전 산은 회장이 언론 인터뷰를 통해 “대우조선에 대한 4조2000억원의 자금 지원은 서별관 회의에서 이뤄진 것일 뿐, 산은은 지시만 받았다”고 발언하면서 구조조정이 갑자기 책임론으로 번지고 있다. 홍 회장 발언은 당시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 최경환 경제부총리,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결정했을 뿐, 산은은 결정권 조차 없었단 의미다. 이에 청와대와 정부는 발끈했다. 임 위원장은 “산은과 수은 실무자들이 서로 합의 하지 못 하는 것을 조율해줬다. 산은, 수은의 감독기관으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면서 “(문제가 있어) 책임질 일이 있으면 책임지겠다”고 밝혔다.

대우조선의 대규모 손실을 산은(3월말, 49.7%)이 대주주로서 관리, 감독하지 못한 책임이 있다면, 대우조선의 또 다른 주주이자 산은을 관리, 감독해야 할 금융위(8.5%) 또한 책임이 있다. 그러나 검찰 수사는 산은 출신이 대우조선 CFO(최고재무책임자)에 앉아있었으면서도 분식회계 및 대규모 손실을 파악하지 못한 경위와 이를 묵인한 것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더 큰 문제는 구조조정 방향도 못 정한 상황에서 지금까지 한 것에 잘잘못을 따져 책임을 묻기 시작한다면 구조조정에 한 걸음도 제대로 떼기 어렵단 점이다. 앞으로 구조조정에 있어 산은과 수출입은행이 몸통 역할을 할 수 밖에 없다면 더 더욱 그렇다.

시작도 전에 책임 소재를 없애려는 분위기는 벌써부터 조성되고 있다. 가뜩이나 돈이 없는 조선사에 회계법인을 통해 자구안을 또 다시 검증받게 하는 식으로 정치적 판단이 아닌 ‘전문가의 시각’이 반영돼 있단 점을 보여주는 식이다. 조선업 산업재편 또한 ‘회계법인’ 손에서 결론이 날 전망이다. 구조조정 한복판에서 ‘책임론’만 부각하는 것은 `복지부동`만 양산하는 꼴이다. 그러면 정말 소는 누가 키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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