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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6 (토)

자본확충펀드 11조원 조성…“민간기업 구조조정에 국민 혈세”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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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

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구조조정 관계장관회의 브리핑에서 유일호 경제부총리가 발언을 하고 있다. 2016.6.8 박지환기자 popocar@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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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한국은행 등 관계기관이 8일 ‘산업·기업 구조조정 추진계획 및 국책은행 자본확충 등 보완방안’을 발표했지만 민간기업의 구조조정에 국민들이 낸 세금을 투입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부는 조선과 해운 등 한계산업 구조조정 실탄 마련을 위해 총 11조원 규모의 자본확충펀드를 조성하고, 이와 별도로 오는 9월 말까지 수출입은행에 1조원 규모의 현물출자를 추진하기로 했다.

구조조정 실탄 마련을 위해 재정과 한은의 발권력을 동원키로 하면서 민간기업의 부실을 혈세로 메우는 데 대한 비판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정부는 이해당사자의 엄정한 고통분담, 국책은행의 철저한 자구계획 선행 등을 내세웠지만 정작 부담을 떠안게 된 국민의 시선은 차갑다.

구조조정의 시기를 놓쳐서도 안 되지만 책임 소재를 가리는 작업을 병행해 당분간 지속될 구조조정의 대원칙을 세워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8일 금융계에 따르면 해운사와 조선업에 대한 은행권의 위험노출액(익스포저)는 70조원 안팎이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가운데 현재 주로 거론되고 있는 조선 빅3에 대한 은행권 익스포저는 50조 5000억원 정도 된다.

대우조선해양이 22조 8000억원으로 가장 많고, 현대중공업(14조 6000억원), 삼성중공업(13조 1000억원) 순이다. 조선업계 ‘빅3’의 은행권 채무는 50조 5000억원에 달한다.

여기에 중견업체인 현대삼호중공업이 5조 1000억원, 현대미포조선도 4조 4000억원에 이른다.

STX조선의 경우 국책과 특수은행을 중심으로 5조 5000억원 상당의 익스포저가 있다.

해운사들의 익스포저는 조선업보다는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

양대 선사인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익스포저는 1조 8000억원가량이며 기업회생 절차에 들어간 창명해운(5100억원)까지 포함해도 2조 3000억원 정도다.

익스포저가 많지만 당장 수십조원에 달하는 ‘급전’이 필요한 건 아니다.

은행권은 법정관리에 들어간 STX에 대한 충당금으로 3조원가량을 적립해야 한다.

특히 국책은행인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바쁘다. 산업은행은 1조 5000억원, 수출입은행은 6000억원가량을 추가로 쌓아야 한다.

은행권은 한진해운과 현대상선, 창명해운에 대한 충당금도 수천억원 이상 더 쌓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또 정상여신으로 분류된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건전성 등급을 ‘요주의’로 낮춰가는 추세여서 이에 따른 충당금 적립도 필요할 전망이다. 은행들은 이번 분기 내에 수천억원을 적립할 것으로 보인다.

민간은행과 국책은행이 떠안은 민간기업의 부실은 고스란히 국민 부담으로 연결된다.

은행이 조선·해운업종에 대한 부실대출로 자본확충이 필요해지면서 결국 정부와 한은이 직·간접출자에 나섰기 때문이다.

정부는 국책은행 자본확충을 위해 오는 9월 말까지 보유하고 있는 공기업 주식을 수은에 현물출자하고 내년 예산안에 국책은행 자본 소요를 반영하기로 했다.

결국 나라 살림살이에 쓰여야 할 돈까지 민간기업 부실을 메우는데 동원되는 셈이다.

한은이 대출 방식으로 자본확충펀드에 참여하는 것도 결국 중앙은행이 돈을 찍어내는 발권력에 의존한 것이기 때문에 추후 손실이 발생할 경우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 몫으로 돌아오게 된다.

정부는 현재 조선 및 해운업계 구조조정의 시급성 때문에 혈세 투입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이 과정에서 이해당사자의 엄정한 고통분담, 국책은행의 철저한 자구계획 선행 등을 통해 국민 부담을 최소화하겠다는 원칙을 밝혔다.

조선·해운사에 강도 높은 자구계획을 요청하는 한편 국책은행의 인력·조직 축소 등 쇄신안도 추진하기로 했다.

그러나 구조조정의 시급성에 밀려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지는 것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커지고 있다.

정작 이들 국책은행의 관리·감독을 맡고 있는 금융당국은 책임론에서 한걸음 떨어져 있는 데다 부실기업의 대주주 역시 책임지는 자세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실제 구조조정 대상이 된 한진해운의 경우 채권단은 대주주인 조양호 회장의 추가 지원을 요구하고 있지만 조 회장은 아직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다.

한진해운 회장을 맡았던 최은영 유수홀딩스 회장 일가가 한진해운 자율협약 신청 직접 주식을 처분해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다.

오너 경영을 해온 대기업들이 정작 기업이 곤경에 처하자 책임을 피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혈세 투입에 대해 국민은 납득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산은 등 국책은행의 관리 부실, 단기 성과에 집착한 기업 대주주 및 경영진 등 혈세를 투입하게 된 배경에 대한 분석과 책임 추궁은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미 여야 3당은 재정 투입으로 구조조정을 하더라도 부실을 초래한 관련자들의 책임 소재를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와 관련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 대표는 지난 7일 “구조조정을 철저히 하지 못하면 우리 이웃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이란 전철을 밟지 말라는 보장이 절대 없다”며 기업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구조조정을 하기 전 (부실기업에 대한) 책임소재를 분명히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지적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 정부 때 산은을 투자은행으로 바꾸려는 시도로 인해 산은이 투자은행과 정책금융 두 가지 기능을 갖게 됐다.이 과정에서 산은 출신이 자회사에 내려가는 등 도덕적 해이와 경영실패가 초래됐다”면서 “혈세 투입에 대한 책임문제는 결국 산업은행의 문제인데 구조조정이 어느 정도 해결되면 산은 역할을 재정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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