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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6 (토)

[구조조정 청사진②]11조 ‘자본확충펀드’…한은 독립성 훼손 논란 ‘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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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 10조, 기은 1조 투입…총 11조원 한도 조성

-필요할 때 대출해주는 캐피탈 콜 방식 운용

-위기시 한은 수은출자 가능성…논란 예상


[헤럴드경제=강승연 기자]조선과 해운 등 부실기업에 소요되는 국책은행의 구조조정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국책은행 자본확충펀드’가 총 11조원 규모의 간접출자 형태로 마침내 베일을 벗었다. 정부와 한국은행, 금융위원회 등이 참여하는 국책은행 자본확충협의체는 한국은행이 10조원, 기업은행이 1조원을 대출해주는 ‘간접출자’ 방식으로 큰 틀에서의 합의를 이뤘다.

그러나 금융시스템적 위기가 발생할 경우 한은이 수출입은행에 출자할 수 있다며 한은의 ‘직접출자’ 가능성을 열어놔 논란이 예상된다. 정부가 특정 산업을 위해 한은의 발권력을 동원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놨다는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헤럴드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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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조 한도 펀드, 한은 간접출자로 조성, ‘캐피탈콜’로 운영 = 8일 정부와 한은 등에 따르면 국책은행 자본확충펀드는 한은과 정부의 공동출자로 조성된다.

자본확충펀드를 운용하는 특수목적회사(SPC)는 자산관리공사(캠코)가 설립하고, 한은이 ‘도관은행’(한은 자금이 흘러나가는 파이프 역할을 하는 은행)인 기은에 대출해주는 형태로 이뤄지게 된다. 2009년 이명박 정부 때 조성됐던 은행자본확충펀드 구조와 유사하지만 도관은행이 산업은행에서 기은으로 바뀌었다는 점이 다르다.

구체적으로 한은이 기은에 10조원을 대출하면 기은이 이를 펀드에 재대출하고, 펀드가 산은과 수은의 조건부자본증권(코코본드)을 인수해 국책은행의 자본을 확충하는 방식이다. 이와 함께 기은이 1조원을 캠코로 이동시켜 펀드에 후순위 대출 형태로 참여하게 된다.

한은의 기은 경유 대출로 기은의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현재 10.5%)이 하락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신용보증기금이 지급보증을 설 계획이다. 보증 재원은 한은이 주도적으로 출연할 가능성이 높다. 한은 관계자는 “출연 주체에 대한 검토가 계속되겠지만 2009년 사례에 비춰볼 때 한은이 어느 정도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단, 자본확충펀드 한도가 11조원이라고 해서 이를 곧바로 소진하는 것은 아니다. 한도액만 미리 설정해놓고 국책은행의 필요에 따라 재원을 조성ㆍ시행하는 ‘캐피탈 콜’(capital call) 방식으로 운용될 예정이다.

한은 입장에서는 이번 국책은행 자본확충펀드 설계 과정에서 대출을 통한 간접출자 방식 등 주요 주장이 받아들여지면서 부담을 덜게 됐다. 아울러 정부가 후순위 대출로 펀드 조성에 참여함에 따라 대출금 회수 관련 위험도 낮췄다.

펀드는 내년 말까지 운영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펀드 운영의 지속 여부는 연말에 검토하기로 했다. 정부는 다음 달 1일부터 펀드가 가동될 수 있도록 준비하고 ‘국책은행 자본확충 펀드 운영위원회’를 설치해 세부사항을 결정하게 할 계획이다.

직접출자 가능성 열어놔…한은 ‘최종대부자’ 역할 논란 소지 = 정부와 한은이 간접출자 형태로 구조조정 재원 마련에 큰 틀에서 합의를 이뤘지만, 구조조정 추진 방안에 한은의 직접출자 여지를 남겨둔 점은 향후에도 논란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정부 발표 자료에는 “시장의 불안이 금융시스템 리스크로 전이될 경우 정부와 한은은 수은 출자를 포함해 금융안정을 위한 다양한 정책수단을 강구한다”는 문구가 삽입됐다.

그동안 정부는 한은에 수은에 대해 직접출자에 나서줄 것을 강하게 요청했지만 한은은 ‘손실 최소화의 원칙’을 들어 불가능하다고 맞서왔다. 이번엔 한은의 주장대로 한은이 간접출자 책임만 지기로 했지만, 정부가 구조조정에 따른 시장 불안이 커진다고 판단하면 한은에 직접출자를 요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된 것. 중앙은행이 발권력을 동원해 시장에 긴급 유동성을 공급하는 ‘최종대부자’ 기능을 해달라 요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한은은 직접출자의 전제조건이 금융시스템이 붕괴될 정도로 위기 상황일 경우를 가리키는 것이라며 실현 가능성이 극히 낮다고 선을 긋고 있다. 한은법 65조는 금융기관에 대한 긴급여신 요건으로 금융 시스템적 위기 상황에 한해 최종대부자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한은 관계자는 “금융시스템 리스크로 전이될 경우 수은 출자를 검토한다는 내용은 선언적 의미”라면서 “향후에도 한은이 수은에 직접출자하는 상황은 없을 것이며 있어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또다른 한은 관계자는 “(직접출자) 최종 판단은 한은 금통위가 하는 것”이라면서 “수은 출자 필요성이 인정되더라도 정부가 동 지분을 조기에 양수해가는 조건”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이 같은 문구 기재로 중앙은행의 과도한 발권력 동원 및 독립성 훼손 논란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앞서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 대표는 7일 한은 발권력을 통한 구조조정 재원 마련에 대해 ”1970∼1980년대 한은이 무조건 발권해 부실기업 (손실을) 메워나가는 악몽이 다시 살아나지 않나 생각된다”고 비판했다.

spa@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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