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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9 (화)

구조조정 3인의 죄수…'죄수의 딜레마' 빠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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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복잡한 경제 이슈에 대해 단순한 해법을 모색해 봅니다.

[[소프트 랜딩]경영자-노조-채권단, 제 살길만 찾다간 결국 모두 불행에 빠져]

머니투데이

/그래픽=임종철 디자이너


게임이론의 고전적인 사례인 죄수의 딜레마는 두 용의자 모두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려다가 협력(=혐의 부인)이 아닌 배신(=범행 자백)을 선택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둘 다 최악의 결과를 선택하게 된다는 이론이다. 이는 각자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합리적인 선택을 함에도 불구하고 그 선택의 결과는 최선이 아닌 최악으로 나타날 수 있음을 시사해준다.

최근 우리 경제의 구조조정 과정을 지켜보면서 서로 자기만 살겠다는 경영진과 노조, 그리고 채권단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결국 죄수의 딜레마처럼 최악의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구조조정의 대상이 되고 있는 부실기업에 대한 책임은 1차적으로 회사경영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경영진과 대주주에게 있다. 하지만 국내 기업의 경영진과 대주주는 책임있는 자세를 보여주긴커녕 오히려 ‘먹튀’ 논란까지 불러일으키고 있는 상황이다.

한진해운은 자율협약 신청 직전 최은영 전 한진해운 회장은 일가가 보유하고 있던 한진해운의 주식 96만 주를 전량 매각했다. 한진해운을 망가뜨린 장본인이 고작 27억원어치의 주식을 건져보겠다고 보인 행태는 많은 이들을 분노하게 만들고 남는다.

현대상선도 마찬가지다. 현정은 회장은 해운업 불황이 한창이던 2014년 현대상선 주식을 모두 매각하고 대신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을 확보했다. 현대그룹은 효율적인 지배구조 정립 및 책임경영을 강화하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부실 기업의 회생과 경쟁력 강화보다는 경영권 방어에만 급급했던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게다가 현 회장이 300억원의 사재출연을 했다고는 하지만 수조원의 부채를 고려하면 조족지혈이다. 오히려 현 회장은 현대상선의 구조조정이 한창인 가운데서도 2015년 생산성 향상에 따른 인센티브 등의 이유로 45억원에 달하는 거액의 보수를 챙겼다.

대우조선해양 경영진의 행태는 이보다 더 가관이다. 대우조선해양의 전 경영진들은 방만하고 무책임한 경영으로 엄청난 손실을 가져왔을 뿐아니라 2조원대의 손실을 분식회계를 통해 은폐했다는 혐의까지 받고 있다. 그 결과 대우조선해양은 2015년말 기준 총 5조5천억원의 손실을 기록했으며, 부채는 무려 18조원(부채비율 4178%)에 달하는 거대한 부실 기업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런데도 부실 원인을 제공한 전임 남상태 사장은 퇴임 후 약 2년 동안 자문역으로 2억여 원의 보수를 받았고, 사무실, 비서, 에쿠스 차량 등을 지원 받기까지 했다. 대우조선의 부실이 현실화되었음에도 고재호 사장은 2014년 급여 5억원, 상여금 3억원 등 총 8억여 원의 연봉을 받았고, 퇴직할 때는 21억원의 퇴직금을 받기까지 했다.

이러한 어처구니없는 대우조선해양의 부실경영으로 산은은 4조2000억원에 달하는 자금을 긴급지원했고, 이는 고스란히 국민의 세금부담으로 돌아오게 생겼다.

그렇다면 노조는 어떠한가? 현대중공업 노조는 상황의 심각성을 아는지 모르는지 현재 도크(dock)가 하나 둘 빈 상황에서도 임금 6.3% 인상과 성과급 250%를 요구하고 있다. 조합원 100명을 해외연수에 보내달라는가 하면 자신들을 향한 구조조정을 저지하겠다고 대규모 파업을 예고하고 나섰다.

경영실패에도 전직 임원들은 거액의 보수를 챙겨가는데 왜 우리만 희생해야 하는가가 그들의 주장이다. 하지만 회사의 사정은 나몰라라 한채 자기만 살겠다고 승진거부권과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모습은 이기적이다 못해 시스템 파괴적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와 채권단 역시 자기 스스로 살길만을 도모하고 있다. 그동안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을 통해 관치금융을 해오면서 수많은 낙하산 인사를 내려보낸 정부가 이제와서는 개별기업에 관여하지 않겠다면서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채권단 역시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려 하지 않고 청와대의 결정만을 바라보고 있다.

더욱이 부실기업 지원으로 국책은행의 부채비율이 늘어날 것이 예상되자, 돌연 '한국판 양적완화'가 필요하다며 한국은행으로 하여금 산은과 수은에 대한 직접 출자 등을 강하게 요구하고 나섰다. 그러나 양적완화라는 말은 구실일 뿐 사실상 국가채무로 잡히지 않는 한은의 발권력에 기대어 결국 구조조정의 부담을 슬그머니 전가하려는 꼼수에 불과하다.

지금 조선 및 해운업의 구조조정으로 올해에만 약 3만명의 근로자들이 실직할 위기에 처해 있다. 특히 노조의 보호를 받는 대기업 정규직원들과는 달리 용접공 등 수많은 하청업체 직원들은 그러한 보호를 기대하기 어렵다. 이로 인해 울산·거제 등 조선업종이 몰려있는 지역 경제의 심대한 타격이 우려되고, 우리 경제 전체가 또다시 불황에 빠져들 가능성마저 제기되고 있다.

그럼에도 도마뱀 꼬리자르듯 주식을 처분하는 경영진들에겐 막상 경영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묻지지도 못하고 있다. 대기업 노조는 경영진을 탓하며 한푼이라도 내 몫을 챙기기에 여념이 없고, 정부와 채권단은 이또한 지나가리라 생각하는지 안이한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

경영진, 노조, 채권단 이 세 죄수들이 모두 서로 제살길만 고집하는 이기적인 행태를 보이면서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는 최악의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최성근 이코노미스트 skchoi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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