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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9 (화)

'법 따로 현실 따로'...구조조정의 불편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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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감일근 기자

최근 정부가 기업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부실기업에 지원할 자금조달 문제만 부각될 쁀 정작 중요한 부실 규모와 책임자 손실분담 문제는 뒷전으로 밀려 있다.

기업과 채권은행의 잘못으로 발생한 손실을 아무 잘못도 없는 국민에게 전가하면서 부실경영과 관리 책임을 져야할 기업과 국책은행에는 면죄부를 준다는 비난이 고조되고 있다.

<공적자금 특별법>

공적자금관리 특별법은 13조에서 '최소비용의 원칙'을 규정하고 있다. "공적자금을 운용하는 정부, 예금보험공사, 한국자산관리 공사, 한국산업은행은 공적자금의 투입비용을 최소화 하고 그 효율을 극대화 할 수 있는 방식으로 공적자금을 지원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공적자금은 국민이 부담하는 것인 만큼 부득이 하게 투입할 때는 규모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의미다.

또 이법 14조에는 '공평한 손실분담'의 원칙을 담고 있다. 1항에 "정부 등은 공적자금을 지원하는 경우 지원 대상 금융회사 등의 부실에 책임이 있는 자의 공평한 손실 분담을 전제로 공적자금을 지원해야 한다"면서 3항에는 "공적자금 지원 대상 금융회사 등의 자체 구조조정 노력을 전제로 공적자금을 지원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이어 4항에는 "경영책임과 감독 책임을 부담할 자가 있을 때에는 관련 법령에 따라 지체 없이 손해배상의 청구 등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적시했다.

개별 기업과 채권 은행의 잘못을 무고한 국민에게 떠넘기는 만큼 잘못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매년 수만명의 자영업자들이 폐업으로 내몰리고 있지만 이들을 위한 정부의 구제장치는 없다. 대기업이고, 국가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이유로 기업의 부실을 국민에게 전가하는 만큼 부실 책임자들의 손실 분담은 가장 우선돼야할 전제 조건이다.

또 공적자금 규모는 최소화해서 국민 부담을 줄여야 할 의무가 있다.

<부실책임 전가>

공적자금 투입을 최소화하려면 무엇보다 부실의 규모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최근 정부가 추진하는 기업구조조정에서는 부실의 현황과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전혀 공개되지 않고 있다. 오직 일부 업종의 기업 부실이 심각하고 이로 인해 국책은행의 자산건전성이 악화돼 자본확충이 시급하다는 게 전부다.

그러면서 얼마인지 알 수 없지만 미래에 드러날 부실을 해소하기 위해 필요하다며 수조원의 공적자금 조성을 주장하고 있다. 재정이건 발권력이건 국민이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는 점에서 무책임한 발상이다.

더 큰 문제는 엄청난 규모의 국민 부담을 요구하면서 책임 소재와 손실분담 문제는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는 점이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구조조정을 담당하는 국책은행이 부실기업의 주채권은행인 상황에서 책임 규명과 손실분담 요구는 애초에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박 교수는 "채권은행으로서 돈을 빌려주고 채권을 관리하는 것과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창구로서의 국책은행은 전혀 다른 것'이라며 "지금 상황은 그 경계가 없어짐으로써 국책은행들이 채권은행으로서 채권 관리를 위해 경영을 감시하는 기능은 사라지고, 손실책임도 공적자금으로 떼워버리고 있다"고 지적한다.

즉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대우조선 해양 등의 기업 부실 문제는 기업의 잘못된 경영과 국책은행의 관리 잘못으로 발생했지만 오히려 책임을 져야할 국책은행을 통해 공적자금을 투입함으로서 책임 문제는 묻히게 된다는 것이다.

부실기업의 채권은행으로서 스스로 책임을 져야할 국책은행에 돈을 지원하고 구조조정을 담당하도록 하는 상황에서 책임 규명과 손실분담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애초에 무리다.

그나마 정공법 대로 공적자금을 재정으로 조달한다면 국회심의 과정에서 부실 규모와 책임 문제가 걸러질 여지가 있다.

하지만 정부와 한은은 발권력, 즉 돈을 찍어 국책은행의 자본을 확충해 주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고, '자본확충펀드'가 그 유력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발권력은 금융통화위원 7명의 과반수 의결로 결정되기 때문에 국회 심의나 동의가 필요없다. 이 경우 기업의 방만한 경영과 국책은행의 관리 잘못으로 발생한 수십조원의 부실을 묻지도 따져보지도 못하고 고스란히 국민이 부담하게 되는 것이다.

<자동차회사 GM의 사례>

글로벌금융위기 때 자동차 회사 GM을 상대로 미국 정부가 단행한 구조조정은 좋은 사례가 되고 있다.

GM에 공적자금을 투입하기에 앞서 기업청산을 하고, 새 회사를 만들어 주식을 정부가 사는 방식으로 구조조정을 했다. 공적자금을 투입한 채권은행은 고용과 자산을 승게하고, 사업구조도 재편했다.

이 방식은 투입된 공적자금의 규모와 향후 회수 가능한 금액을 정확히 추정할 수 있게 해준다.

뽄만 아니라 청산 과정에서 대주주와 주주의 손실이 가장 크기 때문에 공평한 손실 분담의 원칙이 지켜진다. 주주의 권리가 가장 후순위로 밀리고, 대주주는 경영권도 잃게 돼 손실이 가장 크다. 다음으로 채권의 일부만 회수 할 수 있는 채권은행이 많은 손실을 본다.

반면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채권은행 자금지원과 부채 탕감 방식은 애꿋은 국민이 가장 큰 책임을 지게 되고, 은행, 기업은 그 다음 순이다.

박상인 교수는 "정부의 구조조정 방식은 부실기업의 책임을 국민에게 떠넘기는 것으로, 과정을 불투명하게 만들어서 공적자금 투입의 효율성이나 책임소재 파악을 할 수 없도록 만든다"며 "책임지기를 싫어하는 관료들이 가장 선호하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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