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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9 (화)

구조조정 한시가 급한데… 결정된 건 하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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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이 본 문제점과 바람직한 방향

세계일보

유일호 경제팀이 부실기업 구조조정을 천명한 지 한 달여가 흘렀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15일(현지시간) 주요 20개국 재무장관회의 참석차 미국 워싱턴을 방문하는 도중 “(기업 구조조정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만큼 빨리 하겠다. 직접 챙기겠다”며 깜짝 발언을 했다. 당시만 해도 4·13 총선 마무리와 함께 고강도의 구조조정이 진행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이후 구조조정이 더디게 진행되고 있으며, 성과도 미미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구조조정을 통한 기업의 체질 개선방안과 산업 재편방향 등 큰 그림은 그리지 않은 채 재원 마련 논의에만 매달렸다는 게 비판의 주류였다.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는 쓴소리까지 나왔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17일 “실사를 통해 구조조정 강도를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 정하고 비용문제에 들어가야 순서가 맞는데, 양적완화 이야기를 너무 빨리 끄집어내 아직 구조조정은 시작도 못 하고 있다”며 “(구조조정을 통해) 뭘 줄여야 하는지 시나리오부터 짜야 한다”고 말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도 “이 상태로 지속되면 내년 대선 전에 끝낼 수 있을지 우려된다”며 “정책 방향성과 자금 조달문제에 대한 계획이 도출되지 않고 있어 시장의 불확실성을 높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구조조정 과정에서 파생할 수 있는 신용경색이나 추가 기업부실, 실업대책도 빨리 나와야 한다”고 덧붙였다.

오정근 건국대 금융정보기술(IT)학과 특임 교수는 “구조조정의 큰 그림이 벌써 나왔어야 했다”며 “‘컨트롤타워’는 누가 하고, 자금은 어떻게 조달하고, 실업대책은 어떻게 마련하고, 현장에서 집행하는 팀은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 등이 결정돼 하반기 들어 바로 들어가야 할 텐데 지연되고 있어 아쉬움이 크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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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기업 부실을 둘러싼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청사진 제시 어느 것도 돼 있지 않다”고 질타했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역시 “시간이 길어질수록 투입해야 하는 자금 지원 규모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 만큼 속도를 내야 한다”며 “문제 기업의 체질을 어떻게 개선하고, 누가 맡아서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문제로 논의의 중심이 한시라도 빨리 옮겨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번 구조조정의 최대 화두로 떠오른 국책은행 자본 확충과 관련해 ‘수혈’ 대상인 KDB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의 강도 높은 자구노력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빗발쳤다.

윤창현 공적자금관리위원회 민간위원장(서울시립대 교수)은 “국책은행이 성과연봉제 도입을 비롯한 자회사 매각, 방만한 운영 해소 등을 통해 내부를 정비해야만 지원된 자금의 회수 가능성이 커진다”고 밝혔다.

오정근 교수도 “국민이 납득할 만한 국책은행의 자구노력은 당연하다”며 “성과연봉제는 물론이고 조직과 인원 감축계획도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는 달리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한성대 무역학과 교수)은 “부실 기업에 대한 가장 큰 책임은 관료한테 있는데, 정부가 자본확충을 받으려면 성과연봉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국책은행을 압박하는 일은 이런 책임을 회피하려는 모습으로 비친다”며 “성과와 연관한 보수체계의 도입은 필요하지만 이를 구조조정과 결부시켜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국책은행 자본 확충에 한국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하는 문제에 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김석기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한은의 개입 여부는 지원규모 측정 후에 따라 결정될 수 있는 만큼 이 작업부터 먼저 해야 한다”면서 “(국책은행 자본 확충은) 정부 지출만으로 대응하기 힘들어 보이지만 당장 중앙은행이 나서야 할 때라고 보지 않는다”고 밝혔다. 김상조 소장도 “국책은행 자본 확충규모가 5조~10조원으로 추정되는데, 이 정도에 ‘최후의 수단’인 중앙은행을 끌고 들어가야 할 일은 아닌 것으로 본다”며 “국회에서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든지, 국채를 발행하든지, 정부보증 채권을 발행하든지 정부가 국회에 가서 해결하면 된다”고 말했다.

반면 윤창현 위원장은 “협치 관점에서 정부와 한은이 협의를 통해 먼저 한은 대출로 자본확충펀드를 작동시키고, 이후 문제는 재정으로 해결하는 단계별 ‘컨틴전시 플랜(비상계획)’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성태윤 교수는 “자본확충을 신속하게 추진하면서 자금을 충분히 확보하려면 정부 재정을 통한 출자와 한은의 발권력을 동원한 자본확충펀드를 결합하는 방안이 괜찮다”며 “재정에서 많은 자금을 조달하기는 어려운 만큼 10조원 이상으로 추정되는 재원의 상당부분은 중앙은행에서 나올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황계식·오현태·이우중·김라윤 기자 cul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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