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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9 (화)

조선업 구조조정 골치 RG, 책임은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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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선박 RG 절반 수은에 몰려…수은 "정책금융 역할위해 불가피했다" 반박]

선수금환급보증(RG)이 조선업 구조조정의 골칫거리로 지목되고 있다. 일각에선 국책은행이 RG를 무리하게 내줬다고 주장하지만 국책은행들은 정책금융 역할을 담당하기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반박한다.

RG는 선박이 계약대로 인도되지 못할 경우 선주에게 조선사가 받은 선수금을 대신 지급해주겠다는 보증이다. 조선사가 만든 선박이 무사히 선주에게 인도되면 RG는 금융기관의 회계장부에서 사라지기 때문에 일반 대출처럼 충당금 부담이 생길 위험은 적다.

머니투데이

문제는 한 조선사에 많게는 수조원씩 제공된 RG로 조선업 구조조정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이다. 조선사가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에 들어가면 RG를 제공한 금융기관이 선주가 조선사에 지급한 선수금을 대신 물어줘야 하기 때문이다. RG를 제공한 금융기관 입장에선 조선사를 계속 지원하는 유인이 생기게 된다.

예를들어 지난해말 STX조선 재실사 후 채권단이 4500억원을 추가 지원하기로 결정하자 한 채권은행 관계자는 “RG가 꺼질 때까지 지원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채권은행 중에서 수출입은행과 NH농협은행이 STX조선에 제공한 RG만 각각 6494억원, 4073억원이다.

대우조선해양도 비슷한 상황이다. 대우조선이 지난해 대규모 부실을 공개한 후 국책은행들은 4조2000억원을 수혈하기로 했다. 이같은 지원 결정을 내린 이유로 지역경제와 고용안정 유지를 내세웠지만 이면에는 채권은행이 들고 있는 대규모 RG가 적지 않는 영향을 미쳤다. 수출입은행(이하 수은)이 대우조선에 제공한 RG만 7조3589억원에 달한다. 이 RG가 다 소멸되기 전에 대우조선에 문제가 생기면 수은과 수은의 대주주인 정부가 받는 피해는 막대하다.

특히 조선업 구조조정이 화두로 떠오르며 문제가 제기되는 대목은 국책은행, 그 중에서도 수은으로 RG가 대거 쏠린 원인이 어디에 있느냐다. 수은의 선박 관련 보증은 11조3439억원이고 이 가운데 대부분이 RG다. 금융권에 따르면 전체 선박 RG의 50%를 수은이 내준 것으로 추산된다. KDB산업은행은 전체 선박 RG의 약 20~30%가량을 제공한 것으로 파악된다. 기타 금융기관 중에선 농협은행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 외 은행들은 RG가 거의 없다.

이와 관련해 일각에서는 국책은행이 무분별하게 RG를 제공하며 조선사의 저가 수주를 부추겼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시중은행에서 조선업황을 부정적으로 전망해 RG 제공을 자제한 반면 국책은행은 이같은 전망을 하지 못해 RG를 무분별하게 내줬다면 국책은행의 업황 전망 능력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냐”고 지적했다.

수은이 대출에 비해 상대적으로 취급하기 쉬운 RG로 여신을 확대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RG는 선박이 인도되기만 하면 보증 의무가 사라져 상대적으로 안전하게 수수료를 챙길 수 있는 알짜 수익원이다. 수은은 국내 조선사의 수주 경쟁력 강화를 명목으로 2012년에 RG 보증료율을 5bp(1bp=0.01%) 낮추기도 했다.

금융당국도 수은이 RG를 늘려온 경위를 조사할 계획이다. RG를 늘린 과정에 관리 소홀이나 민간 금융기관과의 경쟁 등 수은의 책임을 물을 만한 소지가 있는지 들여다보겠다는 얘기다. 하지만 수은은 “RG를 발급하지 않으면 조선사가 수주를 할 수 없는데 이는 조선사를 문을 닫게 하는 것”이라며 “시중은행들이 RG를 해주지 않아 수은이 마지막 보루 역할을 한 것”이라고 반박한다. 수은의 선박 관련 보증은 2013년 8조4180억원에서 2014년 8조7839억원, 지난해 말 11조3439억원으로 최근 3년간 매해 증가해 왔다. 이는 조선사간 수주 경쟁에 불이 붙었지만 시중은행들은 조선업황을 부정적으로 전망해 RG 발급을 꺼려 온 시기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조선업 지원 기조를 유지해 온 정부 방침상 국책은행인 수은이라도 RG 발급을 늘릴 수밖에 없었다는 입장이다. 한 전직 정부 관계자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수년간 수은 여신이 경기민감업종에 몰려 있어 포트폴리오 조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일각에서 제기됐지만 조선업계 등에서 지원을 계속해 달라고 목소리를 높여 정부가 조선·해운업 지원 방침을 유지했다”며 “수은의 포트폴리오 조정을 주장하는 목소리는 자연히 묻혀 버렸다”고 전했다.

권다희 기자 dawn27@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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